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주님이 선택한 종" - 7.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스크랩 인쇄

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0-07-17 ㅣ No.5739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17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미카2,1-5 마태12,14-21

 

 

 

 

 

"주님이 선택한 종"

 

 

 

행복은 욕망의 절제에 달려 있습니다.

상대적 욕망을 조절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절제한 탐욕이 불행의 근원입니다.

탐욕과 무지, 교만은 악한 삼형제입니다.

탐욕에 마음의 눈이 가려질 때, 저절로 뒤따르는 무지와 교만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그대로 통합니다.

무욕과 지혜, 겸손입니다.

전자가 악한 삼형제라면

후자는 하느님만을 찾는 이들이 지니는 착한 삼형제입니다.

 

“불행하여라,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

 

예언자 미카가 불행을 선언하는 악인들은

바로 탐욕과 무지, 교만의 악한 삼형제에 포로 된 이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반복되는 인간현실입니다.

불의한 빈부의 양극화로 인해

얼마나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요.

어느 분의 통찰에도 공감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욕망으로 나눌 때 행복지수가 나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욕망이 많으면

  행복지수가 낮아 불행감을 느끼고

  가진 것이 적어도 욕망이 적으면

  행복지수가 높아 행복감을 느낍니다.

  생존과 관련된 절대적 욕망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상대적 욕망은 사회화되는 것입니다.

  이 상대적 욕망에 제동을 걸면 걸수록 행복해 집니다.”

 

이 상대적 욕망의 자연스런 제동을 위해 영성생활입니다.

영혼이 충만할 때 저절로 해소되는 욕망입니다.

무절제한 탐욕은 치유 받아야 할 상처 받은 욕망이요

이래서 끊임없는 영성훈련의 필요성입니다.

 

“애타는 영혼을 흐뭇하게 하시고, 굶주린 영혼을 복으로 채우셨도다.”

 

아침 성무일도 시 시편 한 구절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 영혼을 흐뭇하게 하시고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영혼의 치유에 하느님과 더불어 제2성경인 자연의 도움도 절대적입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저는 원래 자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끝없이 이어지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

  어느 순간 내재해 있던 갈등과 상처, 미움과 증오, 원한과 집착이

  다 사라져 버리더군요.

  제가 이 길을 걸으면서 체중이 6kg쯤 줄었는데

  단순히 몸의 비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비계도

  함께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사람들 백 마디 천 마디 위로보다

   파도소리가 내 마음을 씻어줬고

   꽃과 구름이 나를 위로해줬습니다.

   그런 후에야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피조물 자연입니다.

우리 수도원에는 수려한 배경의 불암산이 큰 축복입니다.

불암산이나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늘 평화로이 공존합니다.

언젠가 저녁 불암산을 보며 쓴 짤막한 시입니다.

 

“저녁 불암산, 참 고요하다. 깊다. 크다.”

 

마음이 고요하고 깊고 큰 사람이 성인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바로 그러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깊고 큰 사람이 될 때 저절로 절제되는 욕망이요

바로 이게 우리 영성생활의 목표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이들을 당신 종으로 삼으시어

당신의 영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그대로 복음의 예수님을,

또 당신을 충실히 따르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이 택한 종에 대해 그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마음이 고요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말씀처럼 고요한 중에 소리 없이 할 일 다 하시는 주님이시며

이런 주님을 체험해갈 때 저절로 마음이 고요한 사람입니다.

 

둘째, 마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자비의 깊이이자 지혜의 깊이를 뜻합니다.

진정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마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말씀처럼 주변에 대한 섬세하고 자상한 배려를 지닌

자비와 지혜의 사람이 진정 깊은 사람입니다.

 

셋째, 마음이 큰 사람입니다.

마음이 큰 사람은 빛나는 희망이신 주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세상 보이는 것들이 아닌

늘 생생히 현존하신 주님께 희망을 걸고 살 때 큰 사람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중 시편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 앉히사,

  바다의 물결이 잔잔해지니,

  잔잔해져 좋아라 날뛰는 그들을 희망의 포구로 이끄셨도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이 택한 종인 우리를 희망의 포구로 이끄시고

당신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어

고요하고 깊은 자비의 사람,

당신께 희망을 둔 큰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61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