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日本人 사제의 일본 가톨릭 교회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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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kspeter] 쪽지 캡슐

2000-05-11 ㅣ No.747

 

일본인 사제의 일본 가톨릭 교회 반성 :

 

회칙 인간생명(Humanae Vitae),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가?

 

 

일본 가톨릭 교회 가고시마 교구 사제

 

나리아이 요한 신부(Fr. John Nariai),

 

일본 인간생명 연구소(Humanae Vitae Institute) 설립자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교회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는가?

 

  30년전 7월 25일 성 야고보 축일을 맞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인간생명(Humanae Vitae)를 승인하셨다.  교회가 언제나 가르쳐 왔던 것, 즉 혼인의 일치적 의미와 출산적 의미를 결코 정당하게 분리할 수 없음을 그리스도의 권위로 재확인했던 것이다.  이 회칙은 낙태와 불임수술과 피임의 근원적 사악함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낙태 수술과 피임의 수단을 빌어 생명을 ’부정’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부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바오로 6세: 비오 11세의 회칙 ’정결한 혼인’의 교회 정통 가르침을 재확인한 회칙 인간생명을 쓰셨다.  이로써 바오로 6세는 교회 안팎으로 엄청난 ’반대받는 표적’이 되셨다.  뛰어난 학덕을 지닌 분이셨으며, 가난을 사랑하여 재속 프란치스칸(OFS)으로서 사셨던 분이기도 하셨다.)

 

  전세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 주교들은 회칙 인간생명을 제대로 받아들였는가?  주교와 사제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않을진대 어떻게 신자들이 이를 실천하기를 바라는가?  결혼을 말하자면 이렇다.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은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지도 실천되지도 않고 있다.  설사 가르쳐 진다해도 충분하지 않다.  이는 비관적 결론이지만 여러분과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물론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동의하여 결단의 마음으로 그를 지지하는 용기있는 주교와 사제와 평신도가 비록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많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소수 집단인가 아니면 남겨진 사람들인가?  이들이 누구이건 하느님의 눈에는, 때가 이르러 반대자들이 자취를 감출 때 ― 결국 반대자들은 자녀를 아주 적은 수만을 갖거나 전혀 갖지 않게 될 것이다 ― 다시금 가톨릭 신자들을 일으켜 세울 충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서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셨다.  회칙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음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나는 이 두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의 문화에 속해 있음에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항구에서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로 필리핀 선원들이 일하는 배를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곤 한다.  지난해 부활 대축일의 이야기이다.  미사를 마치자 선장이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였다.  물론 나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점심을 먹는 동안 비번이었던 선원들이 내 앞에 앉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들은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나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 이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선원A : 신부님, 저는 늘 아들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내리 여섯명의 딸을 낳더군요.  마지막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비록 4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아내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성탄절에 아들 녀석이 태어났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지요.  한데, 본당 신부님께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셔서 우리는 다른 이름을 궁리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란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고 신부니께 말씀을 드렸어요.  하지만 신부님은 여전히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예수와 그리스도를 합친 ’예수-그리’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을 했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문제는 바로 이거였는데, 문제는 어쨋든 해결이 된 셈이지요.  지금 예수-그리는 6살이고 자라서 사제가 되고 싶어하지요.  이게 바로 제 문제입니다, 신부님.

 

  선원B : 신부님, 저도 문제가 있어요.  저는 딸아이를 갖고 싶어하는데 아내는 사내녀석을 넷이나 낳았어요.  오늘 아침에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옆집 새댁이 여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글쎄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대요.  아내의 말을 듣자 막내 아이가 "그래요 아빠, 저 아기 우리가 키워요.  너무 귀여워요."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어요.  신부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원C : 신부님, 저는 13형제 중에 막내입니다.  두 형제는 마이애미에 살고 있지요.  하지만 휴가를 받아서 지금은 모두 출가한 11형제를 일일이 다 인사를 할라치면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요.  특히 조카들은 제가 선물을 사오기만을 고대하거든요.  어떻게 할까요, 신부님.

 

  여러분들은 선원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털어 놓은 이야기를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문제라고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대가족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문제들이다.  대가족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값지게 만들고 생명을 소중하게 만든다.

 

  1997년 10월 1∼3일, 가족에 관한 신학적 사목회의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참석한 가운데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열렸다.  백 오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어떻게 보면 이 회의는 대가족들의 잔치였다.  일본 나고야의 노무라 주교는 세 자녀를 둔 어느 가족과 함께 참석하였다.  노무라 주교의 눈에는 세 자녀를 둔 그 가정이 대가족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러했다.  ’노무라 주교님은 이상도 하시지.  주위를 제대로 살펴 보셨다면 열 자녀 아니 열 두 자녀를 가진 가톨릭 신자 가정이 있었을텐데.  왜 그런 대가족을 동반하시지 않은걸까?  세 자녀는 좋은 가정이 되기 위한 최소의 수가 아닌가.  세 자녀를 둔 가정을 동반하고 이 회의에 참석하신 것은 뭔가 잘못됐어.’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대로 여성과 남성을 만드셨다.  하느님은 복을 내려 주시며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6-28)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사르치신 것이고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최소한 두 자녀를 가지라고 말한다.  여러분들은 여성이 언제 가장 아름답고 성적 매력이 있는지 아는가?  젊었을 때?  결혼식날?  아니다.  여성은 두 자녀를 가졌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왜 그런가?  하느님께서는 아내가 두 자녀를 가졌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도록 격려요인을 주셨음에 틀림이 없다.  몇 년 전 일본 훗가이도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선교사에게 내 지론을 말한 바 있다.  그는 별로 내 이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분의 얼굴은 미소조차 띠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굳은 얼굴로 그 프랑스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리아이 신부님, 결혼하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물론 하지 않았지요.  나는 사제이니까요."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혼인을 하지 않으셨다면, 신부님께서 어느 가족이 두 번째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할 권리는 없지요.  만일 둘째 아이를 가지는데서 생기는 모든 비용을 책임진다면 또 모를까요.  혼인한 부부가 자녀수를 결정해야 될 일이지요.  우리 사제들은 몇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 선교사의 말은 죽음의 문화의 전형이다.  그런데 국제 생명운동(Human Life International)스티븐 모셔(Steven Mosher)씨는 나의 지론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여섯 아이를 낳았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고 반박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문화이다.  

 

  새로 임명된 지 알마 안된 어느 주교는 언젠가 한번 회칙 인간생명이 교회의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나에게 역설한 적이 있다.  단지 회칙 인간생명교황 바오로 6세의 사적인 의견이라는 것이다.  그 주교의 말에 따르면, 신자들은 사제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답을 얻는데 피임(contraception)을 할지 안할지는 신자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음이 바로 성숙의 징후라는 것이다.  그 주교는 현재 상황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요즘 로마 교황청은 주교를 임명하기 전에 제대로 감독하고 있는가?  더욱이 회칙 인간생명을 아예 지지하지 않거나 혹은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본 가톨릭 교회의 지도부와 그외 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어떠한가?  나는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른다.  여러분이 내가 떠나기 전에 말해주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 주교의 사고방식은 죽음의 문화의 전형이다.  우리 함께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그래서 이들의 맹목성이 치유되어 신앙의 눈으로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하자.

 

  나는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회칙 인간생명을 아는지 많이 물어본다.  그 회칙을 안다고 대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언젠가 어느 신부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말씀하고 계신 ’인간생명’이 대체 무엇입니까?"  나는 그 신부님의 무지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신부님은 도쿄에서 온 능력있는 설교자로 정평이 나 있는 분으로 우리 교구의 신자들을 위해 초청이 된 터였다.  나는 그 신부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교황 바오로 6세 : 여러분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당하셨던 혹독한 수난을 알고 계십니까?

 

  1966년 말, 내가 사제 서품되기 전에 설교학의 일환으로 교수와 신학 대학생을 대상으로 만찬 강론을 해야 했다.  주어진 주제는 교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황을 따르겠다고, 설사 주교가 교황의 의견과 일치를 보이지 않더라도 교황을 따르겠다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말했다.  교황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고 가르침의 오류를 범할 수 없는 반면에 주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고 계시던 주임 사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언급한 것에 대해 꾸짖으셨다.  교황과 주교는 언제나 하나이고 주임 사제 당신도 이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씀하였다.  주임 사제는 심지어 내가 사제직 소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시며 나를 쫓아 내겠다고 경고까지 하셨다.  이 일로 나는 사제로 임명되기까지 서너 달이 지연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일본의 주교회의는 로마에 서신을 보냈다.  그 서신은 가정에 관해 교황청에서 실시한 조사에 대한 응답이었다.  교황청 가정위원회는 가정과 인구와 출생률의 문제를 고려하기 위하여 교황 요한 23세가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세워졌다.  이 위원회는 교황 바오로 6세 때에도 계속 되었고 추기경, 주교, 인구 전문가, 의사, 부부도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 주교회의가 보낸 서신의 사본을 한 장 얻을 수 있었다.  그 서신은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라틴어로 잘 쓰여져 있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서신에서 일본 주교들은 낙태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낙태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도덕적으로 옳은 인공 피임을 이들은 추천했다.  콘돔과 피임약의 사용이 합당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외에도 주기적 금욕을 필요로 하는 자연가족계획을 일본 주교들은 반대했다.  이들의 주장은 일본의 주택이 협소하기 때문에 일본 부부들에게 금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여러분은 알겠는가?  내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즉, 집이 너무나 비좁기 때문에 부부가 다른 방에서 잘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부부들은 하나같이 웃었고 혼인생활은 전혀 이와 다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본의 주교들은 가정에 관한 교황회의의 보고서에 동의했다.  하느님에게서 왕관을 벗겨 인간에게 그 왕관을 씌운 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들 주교단은 몇몇 주교를 제외하고 정통 가톨릭이 아님이 드러났다.  이들의 사고는 회칙 인간생명이 발표된 이후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교황의 말을 경청하고 복종할 만큼의 신앙이 없었던 것이다.  교황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고 가르침 상의 오류가 결코 있을 수 없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어떤 가톨릭 신학자도 "피임은 선행(善行)이다"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피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은 언제나 분명했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이런 입장은 모든 비가톨릭 종파도 공통으로 믿는 바인데, 1930년 8월 14일 영국 성공회가 람베츠 회의에서 부부가 중대한 이유로 인공적으로 피임을 할 수 있다고 승인을 하면서 피임에 대한 이견이 생겼다.  같은 해 12월 31일 교황 비오 11세는 혼인에 관한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을 발표하여 피임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하셨다.  이 회칙은 이전보다 더 한층 배우자간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명확한 어조로 피임을 비난했다.

 

  "자연을 본질적으로 거스르는 어떠한 이유도 그 이유가 아무리 중대하다 할지라도 자연스럽다거나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부부간의 사랑이 자연적으로 아이를 갖게 하므로 그 능력을 고의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자연적 힘을 좌절케 하여 죄를 짓게 되고 수치스럽고 사악한 행위를 범하게 된다."

 

  영국 성공회의 입장은 혼인에 관한 회칙이 발표되고 워싱턴 포스트지와 같은 언론사와 개신교 종파들의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비록 성공회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교회 내부에 있기는 했지만 대규모의 반대 물결은 제 시기를 좀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람베츠 회의의 결과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임에 관한 현대의 논쟁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1930년 이전부터 즉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피임을 지지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부모님들이 계셨음에 우리 모두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려야 할 것이다.

 

  새로 발명된 피임약이 선을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혼돈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프로게스테론계 피임약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미국 가톨릭 신자 의사 존 록은 그가 한 일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확신했다.  1963년 그는 자신이 발명한 피임약을 옹호하는 책을 저술하였다.  책 제목은 "출생률 통제를 둘러싼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어느 가톨릭 의사의 제안"이었다.  물론 존 린치 신부와 같이 이 책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신학자들도 많았다.  존 린치 신부는 "그 책은 허울좋은 논리와 비합리적인 감정주의, 반(半)쪽 진리, 오류"로 가득차 있다고 비난했다.  불행히도 존 린치 신부는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일부 신학자들은 의사 록의 편을 들었고 신앙심 깊은 사람들에게 반(半)쪽 진리와 오류를 보였다.  다수의 주교들은 신학자들의 의견을 고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그릇된 의견을 따랐다.  주교들은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 전문가나 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전문가들이 종종 지옥의 사신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주교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교들의 임무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후계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일 것이다.

 

  자연적으로 교황청 가정위원회는 권위적인 힘을 가졌다기보다는 자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초기에 교황청 가정위원회는 산아조절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1966년이 되어 산아조절을 강하게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다다수의 의견"이 아니겠는가.  교황청 가정위원회의에는 일본에서 참여한 두 분이 있었는데 한 분은 고 사사키 신부이고 다른 한분은 모리구치 박사였다.  두 사람은 다른 의견을 보였다.  사사키 신부는 피임을 반대했고 모리구치 박사는 피임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피임을 찬성하면서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교황이어서 교황이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반대자는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혼인한 신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이용하기를 거부하는 교황의 결정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교회 교도권은 결코 그 권위를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에 따르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신학자이며 피임에 관한 교황 바오로 6세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견에 반대한 버나드 헤링 신부가 금세기 최고의 윤리 신학자라고 한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교구에는 구원주의자 독일인 선교사들이 몇몇 있는데 이들은 헤링 신부로부터 윤리신학을 배웠다.  내가 헤링 신부를 비판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데 이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 뮌헨의 줄리어스 도프너 추기경은 1968년 6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보고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66년경 줄리어스 토프너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혼인에 관한 교황 회칙 ’정결한 혼인’이 오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교회 교도권이 한번 실수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부부들, 특히 혼인한 여성들에게 배워서 교회 교도권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희생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말을 한 추기경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5일 전인 1976년 7월 19일 독일 국영 텔레비젼 방송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어 이렇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교황의 말이 옳았음을 나는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이 용서를 하시고 인간이 용서를 한다할지라도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독일의 낮은 출생률을 한번 보라.  독일은 피임과 낙태로 죽어가고 있다.  비단 그렇게 죽어가는 나라가 독일만은 아니지만, 거의 예외없이 모든 선진국은 낮은 출생률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 역시, 평균 자녀수가 1.39명과 1.7명으로 예외가 아니다.  일본과 한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다.  많은 저명한 학자들이 현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절대로 말하기를 금기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출생률이 낮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구성장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제의 강력한 수단이다.  인력은 땅이나 자원 이상으로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는 ’인간자본과 가정에 관한 조약’이라는 글을 통해 인력에 관한 강한 주장을 편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은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창세기 1:38)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여러분에게 교황 바오로 6세에 관한 이야기 ― 비록 확인된 바는 없지만 ―를 들려 주고 싶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피임약이 단지 월경주기를 조절한다는 말을 믿고 피임의 중립성을 선포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 의사들로부터 피임약의 정체, 특히 피임약이 낙태의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가 기만당했어"라고 말씀하시며 방을 이리저리 초조하게 거니셨다고 한다.  이 일화는 확인이 되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성령의 인도를 직접 받아 교황청 가정 자문회의와 전세계 사람들의 대다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옳은 결정으로 내린 것임을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내 친구인 안쏘니 짐머만 신부로부터 들었는데 지금은 작고한, 피임약을 반대했던 의사 허버트 라드너 박사를 통해 안쏘니 짐머만 신부가 확인을 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문제를 단호하게 결말을 짓고 반대의견을 잠재우려 했다.(회칙 인간생명 제 6항)  거센 반대에도 교황 바오로 6세는 결단의 입장을 고수했다.  임종 직전인 1978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에 바오로 6세는 강론에서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이 옳음을 반복하여 설명하면서 "나는 진리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 안팎의 반대자들은 교황에게 너무나 큰 압력을 가했다.  교황의 측근인 월터 애보트 신부는 가톨릭 월드 리포트 7월호에서 1973년부터 교황 바오로 6세가 눈에 띄게 쇠진했다는 글을 적었다.  바오로 6세가 얼마나 많은 압력을 받고 있었는지 이를 예증하는 사례를 말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애보트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브라질 주교회의가 정기 사도좌 방문을 위해 로마를 방문하여 교황님과 모임을 가졌는데 교황님은 혼인과 피임에 관한 당신의 가르침이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목소리를 통렬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지으시면서 우셨습니다."

 

  같은 호 보고서에는 교황직의 역사와 교황의 업적을 매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메달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경쟁하여 작품을 내놓으면 교황은 메달에 적합한 문양을 친히 골라 승인한다.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도발적인 문양을 선택했다.  메달의 앞면에는 피곤에 지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주교장(主敎杖: crosier)에 기댄 교황 바오로 6세의 모습이 담겨있다.  몸을 지탱하려 크로이저를 두 손으로 잡고 있지도 않은 모습이다.  한 손은 축성을 하기 위해 약간 들려져 있는 모습이다.  메달의 뒷면은 발가벗은 남자가 말을 타고 있는 문양이다.  디자이너의 문양은 야생마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움직임의 동작에 약한 선을 많이 사용하였다.  말은 거세게 날뛰고 있고 말을 탄 남자는 떨어질 위험에 처한 모습니다.  두 인물상은 모든 사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 수호천사이다.  불쌍한 교황님!  지금 돌이켜 보건대 교황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같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현 교황 성하 역시 회칙 인간생명과 생명의 복음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교회 정통 가르침을 반대하는 많은 신학자들의 공격을 받고 괴로와 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거짓된 자유인가, 아니면 까따꼼바 속에서라도 신앙의 진리애 대한 수호인가?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시다.  예를 들어보면,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룩을 방문하여 젊은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개신교 생명 운동가인 지그프라이드 언스트 박사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교황을 발전의 길에 오르게 하기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에 둘러 싸여 교황은 난처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 교황을 지켜 보아야 하는 것이 무척 안쓰러웠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계셨어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기르 몇 분 마침내 교황은 묵주를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답을 대신하셨지요."  젊은이들은 교황이 도덕률을 바꾸어 피임과 불임수술을 허락하기를 원했다.  교황이 자연법과 하느님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언스트 박사는 마음의 정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역설한다.  젊은이들에게 묵주를 주어 순결하신 동정녀 마리아께 기도를 드리게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일 듯하다.  말을 덧붙이자면 언스트 박사는 교황의 가르침을 더 효과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개신교 신자로 남아있다.

 

  교황 바오로 6세를 떠올리면 성령의 인도와 회칙 인간생명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또한 원죄로 말미암아 반대를 하는 신학자들의 연약한 지성과 자유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많은 주교회의나 개개의 주교들은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결국에는 "우리는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부부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둡시다."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12 나라의 주교회의가 복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캐나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이 12나라에 속한다.  오스트리아는 나중에 반대 입장은 약간 누그려뜨렸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는 그 당시 주교들이 네덜란드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다행히도 네덜란드 주교들은 곧 인도네시아 주교들로 교체되었다.

 

  캐나다 주교들은 회칙 인간생명을 수정하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캐나다 주교들은 발표한 성명서가 반대를 일으킬 것을 암시한 듯하다.  성명서 26절에서 가톨릭 신자는 "양심으로" 피임을 하고 불임수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주교들이 발표한 성명서는 다른 주교회의의 전형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본 주교회의도 캐나다 주교들의 선례를 따랐다.  두 주교회의가 얼마나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지 여러분은 아마 놀랄 것이다.  흥미롭게도 토론토의 로만 다니락 신부는 회칙 인간생명 30주년을 맞아 캐나다 전역의 주교들을 초청하여 회칙 인간생명을 거부하는 캐나다의 입장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상세한 내용은 캐나다 "가톨릭 인사이드(Catholic Inside)" 7/8월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컨대 로만 다니락 신부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요즘에는 말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다른 주교회의는 공식적으로 회칙 인간생명에 순종할 것임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백퍼센터 순종했는가?  불행히도 답은 ’아니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많은 주교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대교구 샤퍼 대주교, OFM,Cap)

 

  그럼에도 미국에는 신앙심 깊고 선한, 생명운동을 하는 주교들이 많이 있다.  콜로라도주 덴버 교구찰스 샤퍼 대주교가 주목할 만하다.  회칙 인간생명 선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훌륭한 사목서한을 띄워 보냈다.  찰스 샤퍼 대주교는 회칙에 담긴 바오로 6세의 절박한 예언을 강조했고 그 가르침이 어떻게 금새 현실로 이루어졌는지 잘 보여 주었다.  그의 분석은 통찰력이 있어 편지출간 즉시 ’옵세르바또레 로마노’지에 실리기도 했다.  이 사목서한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사목서한 가운데 일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회칙 인간생명은 짐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회칙 인간생명은 진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희생합니다.  서로에게 자신을 줍니다.  서로를 완전하게 소유하고 소유되기 위해 사랑에 빠집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혼인한 부부간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은 배우자들이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의도하십니다.  혼인한 부부간의 사랑을 통해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이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품안으로 찾아들기를 의도하십니다."  이 서한을 구해서 읽고 연구해 보라.  찰스 샤퍼 대주교의 사목서한은 미국의 가톨릭 교회가 전세계 가톨릭 교회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현재 일본은 회칙 인간생명을 반대하는 나라로 꼽히고 있지는 않지만 1968년 일본 주교회의 성명서에는 너무 많은 가정이 조건으로 첨가되어 있다.  내가 지금 인용하는 말을 잘 귀기울여 들어 보라.  "어떤 사람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선의를 가졌지만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해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이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격리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깊이 쌓고 교회의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성체를 받으라고 조언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최악의 경우 파국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주교가 피임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잘못을 고친다는 굳은 마음의 서약을 받지 않고도 성사를 주고 성체를 주어도 된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이 일은 일본 주교들이 일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지 않은가.  사실,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마르틴 루터는 한때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용감하게 죄를 짓고 더욱 굳게 신뢰하십시오(Pecca fortiter, et confide fortius).  불행히도 일본의 우리 주교들은 마르틴 루터처럼 행동을 했다.  일본의 가톨릭 인구는 전혀 늘고 있지 않다.  오래 전부터 43만에서 가톨릭 인구는 성장을 멈추었고 조금 과장을 하자면 신학대학은 텅 비어 있다.  혁혁한 조치가 필요하다.  일본의 교회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을진대 어떻게 일본의 교회가 하느님께서 더 많은 세례와 사제를 내리실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일본의 교회는 비록 이단이 아닐지언정 부분적으로만 가톨릭이다.

 

  1968년에 발표된 성명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자가 아닌 남성과 혼인한 가톨릭 신자 여성들에게 보인 주교들의 측은한 마음을 칭송한다.  하지만 그런 동정심은 신앙인들로 하여금 영생을 잃게 만든다.  주교들은 자연법과 하느님법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교들은 바로 자연법을, 하느님법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일고 다를 바 없다.  피임은 낙태 뿐만 아니라 이혼, 십대임신, 미혼모, 청소년 범죄, 마약, 폭력범죄, 패륜범죄 등을 초래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심심찮게 발발하고 있지 않은가.

 

  피임은 본질적으로 사악한 행위이다.  선의와 피치 못할 상황도 피임을 좋은 행위로 바꾸지 못한다.  언젠가 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여성으로부터 피임을 반대하는 강한 주장을 듣게 되었는데 여러분과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남성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면 남성은 성불구가 된다.  반면 여성은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더라도 임신이 가능하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부인은 세 번째 아이를 가진 후에야 오르가즘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그녀는 첫 몇 년동안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지만 혼인 첫 날부터 행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부인은 성생활에서 자신이 남편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는 데에 오르가즘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친분이 오래된 다른 여성은 지금 전혀 행복하지 않다.  혼인해서 자녀를 하나를 낳았다.  그 부인의 남편은 자녀 하나로 만족을 하고 있다.  부인의 남편은 콘돔을 일방적으로 사용하여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으로부터 빼앗아 부부생활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두 없애 버렸다.  부인의 사랑은 미움과 실망으로 변해 버렸다고 나에게 귀뜸했다.  여성의 성과 남성의 성은 매우 다르다.  주교들이 이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인간이 자식을 많이 낳아서 번성하라고 하셨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승낙을 해 주셨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신다.  이 관계는 또한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존재한다.  남편과 아내가 임신을 받아들일 때 이들은 서로에게 "예"라고 응답하는 것과 같다.  피임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해요"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성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몸의 언어는 너무나 정직하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으며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아기를 원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과 나를 부정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피임을 종용하는 사회에 이혼율이 높은 것은 놀랄 일아 아니지 않은가.  미국과 일본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있는 교구에서도 종종 낙태와 이혼의 사례를 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제와 주교가 피임을 방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 주교회의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희석하고 왜곡하여 성명서를 발표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당시는 내가 임명된 지 일년이 채 안되었던 때였다.  나는 주교회의의 성명 발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도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태만죄를 범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죄인다.  후에 나는 국제 생명운동(Human Life International)과 인연이 되어 현실을 똑바로 보게 되어 반대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1996년 정통 저널인 "바티칸의 길"에 기고를 하기 시작했다.  첫 기고한 글에서 나는 일본 주교회의가 발표한 성명서를 라틴어 원문으로 일부 일본어 번역을 첨가하여 실었다.  그리고 1968년에 일본 주교가 발표한 성명서도 실었는데 그 성명서는 일본의 가톨릭 교리문답의 일부이다.  이 성명서는 신 가톨릭 백과사전 제 2권에 인용이 되어 있다.  작년 어느 일본 주교는 용감히도 성명서가 실린 백과사전으로 교황에게 선사했다.  많은 사제들은 비신자와 혼인한 신자 여성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고 말한 주교들의 성명서를 지지했다.  측은의 마음 그 자체는 미덕이지만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다.

 

  몇 년전 나는 지금은 바티칸에서 일하고 계신 후미오 하마오 대주교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1968년 일본 주교들의 성명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후미오 하마오 대주교는 나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불편했을 것이다.  1968년 당시 그는 주교였으므로 그 치명적인 성명서를 발표한 데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성명서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오키나와의 이시가미 주교는 나에게 물었다.  "나리아이 신부, 대다수의 주교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이 질문은 마치 다수가 진리가 무엇인지조차 결정한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나는 대부분의 주교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주교는 이렇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지 1968년 성명서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설명하는 것으론 결코 충분치 않다.  그리고 그 성명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회칙 인간생명과 일본 주교회의의 성명서는 중대한 점에 대해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어느 일본 주교는 가톨릭 신자 산파가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도와주는 일을 하도록 허락한다.  가톨릭 신자가 낙태 수술실에 있음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와 낙태 산모에게 영적 선을 베푼다는 구실로 말이다.  그 주교가 한 일은 옳지 않다.  본질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있어서 우리는 결코 공식적으로 협조해서는 안된다.  이는 윤리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이다.  교토에 사는 어느 신자 의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낙태 수술을 집도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받고 일요일에는 성체를 받는다.  지금은 은퇴한 교토 주교와 이 신자 의사는 아주 절친한 사이라고 전해진다.  고인이 된 훗카이도의 토미자 주교는 회칙 인간생명을 노골적으로 반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일본에서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독일을 여행하던 중에는 이곳 저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칙 인간생명을 반박하는 말을 하였다.  이 이야기는 구원주의 사제인 요단 함마 신부가 독일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신문에서 읽었다며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내가 속한 교구의 바오로 이토나가 주교는 우리는 이미 교황과 일체이기 때문에 의견을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나는 주교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단지 나와 그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말임을 잘 알고 있다.  매달 교구 사제모임에서 피임의 사악성을 강론에서 이야기했는지 다시 한번 바오로 이토나 주교에게 물었다.  그는 나의 질문에 놀라서 답을 하지 않고 침묵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나리아이 신부가 피임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것같으니 직접 신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일개 사제가 아닌가.  사제가 동료 사제에게 특히 연장자인 사제에게 말을 하는 것은 결코 효과적이지 못하다.  물론 내 말을 경청하고 동의하는 사제도 있지만 대다수는 말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거나 다음의 기회로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안쏘니 짐머만 신부늬 생명운동 서적 "생명 문제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번역하여 교회서점에서 판매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다음날 나는 얼마나 많이 책이 판대되었는지 보고 싶어 교회서점을 찾았다.  스무 권의 책 모두 재고없이 모두 팔린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본당 신부가 그 책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책을 모두 사무실에 숨겼다고 한다.  어느 동료는 나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그러나 말을 하는 것처럼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회칙 인간생명이 가르치는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교리교육이나 강론, 신자들과의 대화에서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본당 신부 역시 비신자가 혼인에 관한 기본 교육을 마치기만 하면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기본 교육에 자연가족계획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본당 신부는 자연가족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언젠가 교황께서 "자연가족계획"을 모르는 신학생과 사제는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나는 기억한다.

 

  가톨릭 의사협회는 1989년 일본 유전학회장 세이치 마츠모토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을 열었다.  회칙 인간생명이 발표된 1968년 가톨릭 의사협회장이었던 케이오 대학의 고(故) 미우라 박사는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요청받았다.  기자회견에서 미우라 박사는 회칙 인간생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갈 즈음에 어느 기자가 "미우라 박사님, 개인적으로 회칙 인간생명을 지지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미우라 박사의 답은 ’아니오’였다.  이 말을 듣던 기자들은 모두 일어나 기자 회견실을 떠나 버렸다.  결국 자신조차 믿지 않았던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한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일 교황과 일본 주교들이 일체라면 주교들은 피임의 사악성르 강조했을 것이다.  주교와 사제를 통해 피임의 사악성을 신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낙태율이 훨씬 감소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가태 심리와 피임 심리가 같은 나무에 달린 모양이 다른 열매임을 잘 알 것이다.  대부분의 낙태는 피임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은 낙태를 전혀 하지 않거나 아주 드물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가사키 소재 오브진 대학의 한 교수는 나가사키 지방에 사는 가톨릭 여성의 낙태율을 신자 학생에게 맡겨 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조산학을 공부하는 그 학생은 의무감에 가득차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는 기대를 크게 빗나갔다.  나가사키 지방에 사는 신자들 가운데 피임과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조사를 실시한 학생이 다니는 본당의 신부가 이 사싱을 알고는 비밀에 붙이도록 부탁을 했지만 비밀은 이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자 오사카 소재 에이치 대학의 노부요시 마츠모토 신부는 세례 후원자를 포함한 가톨릭 신자 여성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노부요시 마츠모토 신부가 실시한 조사의 결과는 조산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실시한 그것과 동일하게 나왔다.  일본의 주교들은 이 결과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여성의 25%가 낙태를 경험한 것에 반해 신자 여성의 15%가 낙태를 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10%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의 주교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메시지를 희석시키지 않고 왜곡하지 않은 채로 받아들였더라면 일본 가톨릭 신자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0.3%, 즉 43만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가톨릭 인구가 급증하여 선교사와 재정이 일본으로 수없이 유입되었음을 기억해 보라.  많은 선교사와 재정은 효과적으로 사용되오 1950년대까지 가톨릭의 인구가 증가했다.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에도 많은 신학대학이 있었다.  더 많은 입학생을 대비하여 도쿄에 많은 건물이 세워졌지만 이 경향은 1960년이 되면서 입학생의 감소와 함께 멈추었다.  세례 뿐만 아니라 성소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성소를 원한다면 교황의 교도권을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주교는 회칙이 단지 교황의 사적인 의견이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중요하고 전통적인 가르침이 회칙에서 반복되어 설명되어도 이는 교황의 권위로 선언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목헌장(Lumen Gentium, 25항)은 "자주 반복하여"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요건이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까지 정결한 혼인(Casti Conubii), 인간생명(Humanae Vitae),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의 가르침을 사십 번이나 재확인 하셨다.  물론 교황도 회칙을 쓰면서 실수를 한다거나 오판을 할 수는 있지만 회칙 인간생명의 경우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회칙 ’정결한 혼인’을 쓰신 비오11세)

 

 

  어느 날 동료 사제는 내게 말했다.  "모든 부부들이 피임을 하고 있고 또 하느님은 결국 용서를 해주실 것이니 피임은 용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한 사제와 자리를 함께 할 때 나는 피임의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또 어떤 사제는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콘돔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생명 문제에 관해서 기탄없이 의견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의견을 말하려 할 때마다 언제나 내 입을 막고 의견을 무시하려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동료 사제들이다.  회칙 인간생명은 1968년 일본 주교들이 발표한 성명서 덕분에 일본에서는 죽은 사목교서가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당시에 활동을 하던 주교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 주교들이 정말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머리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이 지옥으로 갔을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쉽게 구원받을 수 있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님을 나는 확신한다.  일본에서 피임이 본질적으로 사악하다는 것을 교리교육에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일본 주교회의의 공식 교리교육에 도전을 해야만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고시마 교구에 있는 수녀님 여섯 분은 신자 모임을 해체해야 했다.  이유는 신자 모임을 인계받을 수 있는 젊은 수녀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고시마 교구를 떠나는 수녀님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희석하고 왜곡한 일본 주교들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태어나는 아기가 적으면 수녀의 성소를 받는 사람도 적을 것이도 아기가 많이 태어나면 그만큼 수녀의 성소를 받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직 소명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번 내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신학대학을 둘러보는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신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보고 한국 교회가 남편감 청년 부족현상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수녀원 3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는 내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 수녀원 기념행사를 하면 대개 수녀들의 가족을 모두 초청하는데 내가 방문한 수녀원에서는 가족들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수녀원은 본원 수녀들과 대구지방 근교에서 모인 다른 수녀회의 수녀들로 복도까지 가득 메워져 있다.  하느님은 한국교회에 매우 흡족하심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교회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실 것이다.  이 말이 여러분의 귀에 대담하게 들릴지 모르나 세례와 성소와 본당의 성장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유쾌함과 불쾌함을 확실히 보여주는 징표이다.  이런 내 의견을 교구 주교님에게 말했더니 주교님은 벌컥 화를 냈다.

 

  회칙 인간생명을 반대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나는 1968년 일본 주교회의의 성명서를 철회하는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충분한 수의 서명을 받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 교회의 현실을 설명하고 서명해줄 것을 요청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편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해요." "성령께 먼저 기도를 드려야 해요."  "서명할 수 없어요." 등의 이유를 대며 꽁무니를 빼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그저 평화롭게 ― 설사 그것이 거짓 평화일지라도 ― 살기를 우너한다.  신자들이 과거에 피임을 했거나 혹은 현재에도 피임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계 연예인들의 반응은 흥미롭다.  필리핀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생명 운동가인 듯 하다.  내가 일본의 주교들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것을 이들에게 말했을 때 어느 여성은 "말도 안돼요.  일본 주교들이 교황님을 반대하다니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비신자들에게까지 서명을 받으려 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나보다.  중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은 "나리아이 신부님, 나는 신부님의 용기를 좋아해요.  나리아이 신부는 일본의 마르틴 루터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여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나는 웃었다.  나는 반혁명가이다.  일본의 주교들이 회칙 인간생명에 반대를 하는 한 나는 반혁명가로 남을 것이다.

 

  회칙 인간생명을 지지하는 일본 주교들의 힘이 없으면 피임 사고방식은 일본에 계속 머무를 것이고 커나갈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기로 한다.  요코하마에 사는 켄고 고바야시 신부는 "일본에 사는 철새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으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낙태와 피임에 관해 그리고 콘돔을 사용하여 에이즈를 막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 책의 갈피에는 낙태와 피임에 관한 설명은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정보를 나열했을 뿐이다"라고 적힌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어느 브라질 사람은 고바야시 신부의 책을 이렇게 논평했다.  "일본 교회는 우리같은 외국인들이 멸종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항의를 했고 짐머만 신부는 고바야시 신부가 펴낸 책에 대한 보고서를 ’신앙성 교리 위원회’의 장관인 라징거 추기경에게 보냈다.  고바야시 신부는 낙태와 피임에 관한 설명이 생략된 판을 다시 펴냈지만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충고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첫 번째 판은 매진이 되어 회수되지 못했다.  두 번째 판은 이제 요꼬하마의 주교와 일본 주교회의의 축복을 받고 공식적인 명분 아래 판매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판을 읽고 오류를 발견하여 고바야시 신부에게 직접 항의를 했다.  잘 성장하고 건강을 지키려면 균형잡힌 음식 섭취가 필요하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김치만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밥도 먹고 고기와 생선 야채도 먹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믿고 싫어하는 것 ― 회칙 인간생명과 같은 ― 은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앙을, 사제직을 송두리째 잃게 될 것이다.  고바야시 신부가 이제 더 이상 신부라고 불리지 않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닐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주교와 사제와 신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다.  교회는 가르침을 주고 우리는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신앙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부분적으로만 가톨릭 신자일 수 있는가?  부분적으로만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믿는 사람은 이단이다.  이들의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고 기껏해야 영적인 좀비가 되지 않겠는가?

 

  성 바오로 수녀회는 프랑스 예수회 장 마리 모레티 신부가 저술한 책(Progress des Sciences et Reflexion Chertienne)을 출판했다.  장 마리 모레티 신부의 책은 피임과 낙태의 부분에서 교황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출판 기획을 담당한 사람에게 항의를 했다.  동료 짐머만 신부는 수녀우너장에게 그 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지적했다.  하지만 책은 아직도 팔리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외적인 상황을 용납하여 피임과 낙태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교구의 주교는 모레티 신부의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동료 사제들에게 모두 한 권씩을 돌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 주교회의 공식 신문인 가톨릭 신문은 어떠한가?  가톨릭 신문은 개발도상국 나라의 여성들이 인공적으로 피임하는 것이 옳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쓴 사람은 요꼬하마 교구의 요시꼬 하가 여사인데 카이로에서 열린 유엔 인구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요시꼬 하가 여사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사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또한 필리핀의 예이즈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그룹의 남성 회원이 쓴 기사도 실렸다.  이 기사에는 오로라 박사가 한 말이 직접 인용되어 있다.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을 반대하는 주교는 돌머리를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사 기고가는 자신의 논점을 강화하기 위해 오로라 박사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 자신의 의견을 아니다.  에이즈 예방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혼인 전에는 순결을 지키고 혼인 후에는 배우자에게 충실하는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간단한 해결책을 따른다면 20년 내지 30년 후에는 에이즈 환자가 없어질 것이다.  위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기사를 가톨릭 신문에 싣게 한 어떤 책임자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신문을 구독한다.  다른 대안의 신문이 없고 또 악의 세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문을 구독하던 것을 중단한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일본 교회의 악의 세력이 일본 가톨릭 주교회의라고 생각을 하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도쿄의 Schoot Fathers가 출판하는 ’복음’이라는 잡지가 있다.  ’복음’ 잡지에서 나는 마사코 야마찌 수녀가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마사코 야마찌 수녀가 강연과 전화상담을 통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을 홍보한 것에 관한 글이었다.  마사코 야마찌 수녀가 활동을 할 때는 분명 가톨릭 교회의 이름을 걸고 마치 자신의 의견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인 것 같이 행사한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진리를 들어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무슨 메시지를 받고 있는가?  ’복음’ 잡지는 견본으로 내게 보내진 것이었다.  가톨릭 출판물은 백 퍼센트 가톨릭이어야 한다.  일말의 거짓말이나 정통성이 결여되는 사적인 의견이 담겨 있을 경우에느 그 글이 담긴 책 전체가 오염이 된다.  비판의 눈으로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은 교회로부터 비롯되는 영적 양식 뿐만 아니라 독소 역시 받아들을 것이다.

 

  유엔과 선진국의 언론과 정부는 인구폭발, 환경 공해와 파괴, 식량 부족, 여성 인권(낙태)에 대해 말을 한다.  비평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세뇌를 당한 상태이다.  일본의 주교회의 역시 세상의 편을 드는 것같다.  인구폭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불필요한 아기들도 너무 많고, 소용이 없는 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 나라 저 나라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인구성장을 견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느님이 계획하셨고 인간을 통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  부모는 하느님과 더불어 공동 창조주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자식을 낳아 번성하기를 바라신 것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장려함을 비추어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느님에 의해 영원으로 계획되어진 사람들은 세상을 맞아서 인류에게 재산이 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  일본 주교회의 어느 공식 문서에는 "인구폭발"을 막기 위해 일본의 주교들이 구체적인 일을 맡아야 할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를 읽은 나는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인구폭발"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자연가족계획을 홍보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설사 그렇더라도 인구 조절의 목적으로 자연가족계획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가톨릭적이지 않은 방법이 아니던가.  많은 선진국의 인구는 현재 격감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아기가 태어나고 있고 노령인구의 수명이 길어져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양로원 시설이 절박하게 필요하고 있고 유치원은 문을 닫거나 원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독일의 경우 종합병원에서 산모병동은 폐쇄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기가 없는데 산부인과 의사나 산부인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본에는 연금제도가 있다.  일본의 연금제도는 젊은 노동자층이 노인층의 연금을 재정지원한다.  노인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젊은 노동자가 많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연금제도는 30년이 되지 않아 그 기능이 마비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고 연금의 액수를 줄인다거나 69세가 될 때까지 월 연금수당을 물게 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노동인구가 줄고 그만큼 소득이 줄기 때문에 소득세 수세액도 줄어들어 이를 메꾸기 위해 소비세가 도입되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본인은 천년 후에 멸종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일인은 300년 후에 멸종될 것이다.  폴 맑스 신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는 7천명이 살고 있었다.  현재 그 도시 인구는 3천명이고 내가 5년전 이 이야기를 들을 당시 평균 연령이 75세였다.  그 도시에 아기를 가진 어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오게 되었다.  부인은 아기를 안고 시내로 나갔는데 이내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었다.  노인네들은 십년동안이나 아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인이 아기를 안고 시내에 나갈 때마다 교통 경찰관에게 길을 막는 사람이 없도록 부탁을 해야 했다.  농담이 결코 아니다.  주교들이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의 인구폭발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교들이 인구폭발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증지의 개발도상국의 인구 폭발을 막는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일본의 주교들은 인종 차별주의자들이다.  인종차별 역시 가톨릭의 정신에 어긋난다.  나는 일본의 주교들을 옹호하고 싶지만 내가 그들과 인종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 주교회의가 인구 폭발 예방책을 언급했을 때 아마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무책임하고 무지한 발언이 아닌가.  미국의 경제는 유럽에서 이주한 젊은 이주민의 인구와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와 더불어 발전했다.  우연히도 개신교 아기보다 가톨릭 아기가 더 많았는데 이로 인해 록펠러같은 인구 통제가들은 경종을 울렸고 산아제한 운동을 촉발시켰다.  일부 사제들은 미국이 가톨릭 국가가 될 것이고 가톨릭 인구의 성장이 자연 출생률과 같아질 것이라고 자신에 찬 말을 했던 때도 있었다.  일본의 전후 경제 역시 충분한 인력 자원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은 더 이상 군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는 노예수출로 많은 소중한 인력을 잃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성장하기 힘들 것이다.  개발 도상국에게 경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잘 먹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야망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개발 도상국이 산아제한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해 공책과 연필, 선생님, 장학금을 보내는 것이 어떤가?  개발 도상국은 산아제한이나 콘돔, 피임기구, 피임약, 성교육 자료 등의 쓰레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과 유엔, 유네세프 등 국제연합 산하기관은 개발 도상국의 재정 지원과 산아제한 정책을 연계시켜 불필요한 물자를 개발 도상국에 보내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1968년 7월 25일에 발표된 생명의 메시지, 회칙 인간생명을 좀더 일찍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했다.  지난 7월 나는 필리핀을 방문했는데 23일 24일 이틀에 걸펴 회칙 인간생명에 대해 강론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회칙 인간생명 30주년이 되는 7월 25일 회칙 인간생명을 축하하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었고 주임사제는 회칙 인간생명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아마 필리핀에는 태어나는 아기가 많아서 회칙 인간생명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가톨릭 출판계에서도 지난 7월 바오로 6세와 회칙 인간생명에 관한 글을 싣지 않았다.  아마 신문과 잡지 편집장들이 바오로 6세의 회칙의 존재를 몰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문제가 아닌가.  혹은 회칙 인간생명의 존재를 알고 있긴 했어도 그 주제를 언급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이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도 아니면 일본의 주교회의 명령에 따라 편집장들이 절대 회칙을 언급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교들은 죄인이다.  가톨릭 월드 리포트와 뉴 옥스퍼드 리뷰, 가톨릭 인싸이트와 같은 일부 미국 잡지는 회칙 인간생명을 언급하는 기사를 실었다.  또한 회칙 인간생명을 옹호하는, 영어로 출판된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책으로는 자넷 스미츠 박사의 "회칙 인간생명 : 한 세대가 지나서", "회칙 인간생명은 왜 옳은가?", 로마노 아메리오의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Iota Unum’, 지그 프리이트 박사의 ’회칙 인간생명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등 그외 국제 생명운동(Human Life International)이 출판한 책이 다수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에는 회칙 인간생명을 지지하는 책이나 책자가 거의 없다.  짐머만 신부가 쓴 ’생명 문제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이란 책을 내가 일본어로 번역을 하여 출판이 되었지만 애초에 신학교에서 윤리신학 코스의 부교재로 사용하려던 의도와는 달리 신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실패에 그쳤다.  3년 전에 나는 두 모교 신학교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물론 회칙 인간생명과 그 회 생명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두 신학교에서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는 신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부님, 저희는 교황님을 비판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 왔는데 아직까지 교황청의 편에 서서 일하시는 신부님같은 분이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심 이들이 과장된 말을 하고 있기를 바랬다.

 

(’회칙 인간생명 : 한세대가 지나서’를 저술한 자넷 스미츠 박사, 조카 켈리와 함께)

 

  국제 생명운동(HLI)이 펴내는 문헌을 보면 인공피임과 치명적인 후유증을 묘사하기 위해 미끄러운 경사에 추락하다(Slippery Slope)’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같은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엉뚱한 단추구멍에 단추 넣기’라고 표현한다.  주교는 Cassock을 입는데 cassock에는 단추가 많이 달려 있다.  첫 단추에 제 구멍을 넣지 못하면 마지막 단추는 자연히 넣을 구멍이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때가 바로 일본의 주교회의가 회칙 인간생명의 의미를 희석하고 왜곡했을 때인 것같다.  급기야 주교들은 산아제한을 지지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물론 주교들도 때때로 낙태를 반대하는 말을 한다.  괜찮다, 하지만 나는 주교들에게 말한다.  "주교님, 당신들은 낙태를 반대하는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1968년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낙태를 해도 된다는 성명서를 내지 않았습니까?"  나가사키의 가나메 시마모토 대주교와 다른 두 주교는 내가 계속 이와 같이 말할 것을 부탁했다.  그외 주교들은 나를 무시해도 내가 기고하는 글을 주교들이 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잡지 최근호에서 편집장은 나의 글을 탈락시켰다.  그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주교님, 여러분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강행을 항의하셨습니다.  그렇게 항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교님들의 의견을 환영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는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깝지 않아서 항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굳이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피임을 반대하는 항의를, 피임약 판매를 금지하는 항의를 하지는 않습니까?  그 이유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대중의 반대가 있을 것을 주교님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옳은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양심의 가시가 되지 않고 있다.  짜지 않은 소금과 같다.  이제 내가 직접 잡지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일 여러분들은 존 빌링스 박사와 에벌린 빌링스 박사가 강연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3년전 가톨릭 가정센터에서 일하시는 신라일 신부님은 이분들을 일본에 두 번째로 초청하여 강연을 열었는데 그때 내가 통역을 맡아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한 기억이 있다.  존 빌링스 박사와 에벌린 빌링스 박사의 강연을 네 도시에서 진행되었고 각 도시의 주교들도 후원을 해주리라 다짐을 했으며 우리가 교회 건물을 강당을 사용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주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극히 적은 수의 사제들만이 참석했다.  간단히 말하면 주교들의 협조아래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의미이다.

 

  올해 지난 3월 일본의 복지부가 인공 피임약 및 기구에 관한 금지령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짐머만 신부는 미국에서 피임약 반대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로이드 듀플란티스 주니어 박사를 섭외하여 일본의 주요 네 도시에서 강연을 할 것을 주선했다.  이번에도 나는 강연을 후원하고 통역했는데 통역가로 무대 위에서 로이드 박사 옆에 나타나진 못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주교들 가운데 그리 많은 호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연의 모든 비용은 생명운동가인 가톨릭 신자 의사가 부담했다.  하느님이 부담하셨다.  이번에도 역시 주교들의 협조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로이드 듀플란티스 박사는 정부 복지부를 방문하여 의약품 안전부 부장을 만났다.  의약품 안전부 부장은 로이드 박사에게 미국에서 할 일이 더 많을텐데 일본까지 방문을 할 여유가 있었냐며 첫 질문을 했다.  이 얼마나 무례한 질문인가!  나중에 부장은 미니필이 스테로이드성이 아니냐는 자신의 물음에 로이드 박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좀더 예의를 갖추어 로이드 박사의 말을 경청했다.  어떤 피임약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런 무지한 사람이 정부 복지부의 의약품 안전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어찌 아찔한 경우가 아닌가.

 

  로이드 듀플란티스 박사는 우리에게 호주 약사인 존 윌키스가 지은 ’피임약과 그외약을 위한 소비자 안내서’란 책을 선사했다.  이 책은 피임약에 관한 최근 정보를 담고 있다.  피임약 부작용에 대한 모든 자료가 이 책에 담겨있다.  나는 피임약을 다루고 있는 1∼4장을 번역했고 출판 준비작업이 완료된 상태이다.  책의 초안을 주요 신문사와 일본 복지부 부장들 그리고 주교들에게 보냈다.  히라타 박사는 교구 주교에게 내년 2월에 있을 일본 주교회의에서 피임약 사용반대를 철폐하지 않도록 탄원서를 보내도록 부탁했다.  히라타 박사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이유는 주교회의 일정이 이미 가득 짜여져 있기 때문이라 했다.  히라타 박사는 자신이 직접 탄원서의 초안을 만들어 주교들에게 주었는데 주교들은 내용을 수정하여 서명했다.  히라타 박사의 끈질긴 요구에 밀려 교구 주교는 가정사목위원장인 시마모토 대주교를 만나 일본 주교회의에서 피임약 반대를 위한 탄원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교들은 "우리가 의학 전문가도 아니어서 결국 성고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많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교들은 의학 전무가인 일본 복음연구센터의 다케히코 신부를 고문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케히코 신부는 피임약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가톨릭 의사협회를 접혹하여 상담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톨릭 의사협회는 낙태를 찬성하는 의사들이 주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임약의 부작용은 주지하고 있지 않았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주교들은 히라타 박사에게 윌키스의 저서 번역판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은 없었고 언제라도 피임약 사용반대가 철폐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월 3일 신문의 한쪽 귀퉁이에 작게 기사가 실렸다.  당분가 피임약 사용금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피임약 사용 금지령을 없애려는 압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선진국 가운데 일본만큼 피임약을 많이 사용하고 임신을 피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나라도 드물다.  모든 방송 언론매체도 피임약의 사용을 찬성한다.  우리는 피임약 사용반대 싸움에 혼자이고 이 싸움에서 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피임약 사용금지 철폐를 연기한 이유는 환경공해의 위험을 주장하는 환경단체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피임약 사용을 반대하는 것은 태아와 여성 자신에 피임약이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은 피임약을 사용하고 3∼4개월이 지난 후에 돌발적인 배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임신을 100% 방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환경 운동가들과 복지부는 피임약을 사용하는 여성들의 소변에 의해 강과 바다가 환경 호르몬으로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듣고 나는 처음에는 기뻤지만 실망과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4월 나는 국제 생명운동(HLI)이 주최하는 세계대회에 참석하여 독일의 식수에 환경 호르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경 운동가들은 때로 우리의 동맹군이 될 수 있다.  피임약의 배후에는 커다란 제약회사가 있다.  제약회사는 대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의 재정지원자이고 정부의 복지부는 그런 대학에서 피임약의 안전성을 연구하는 연구원을 모집한다.  불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주교들은 내가 윌키스의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주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내 이름이 윌키스의 책 번역가로 알려지면 주교들 사이에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다.  좋은 사제는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 진리의 말이 주교들의 귀를 거슬리게 한다해도,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일본 주교회의가 1968년도 성명서를 폐기하지 않는 한 일본의 주교와 교황은 일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주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지만 사실 내가 하녹 있는 일이 진정 주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교들이 진리를 볼 수 있도록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서 나는 친구를 잃었다.  특히 1968년도 성명서를 취소할 것을 주교들에게 부탁하는 서명운동을 돕기를 거절한 사람들 가운데 친구를 잃었다.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피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periti 가운데 한사람인 로마노 아메리오 교수의 건전하고도 반가운 비판을 한번 들어보자.  "교황 바오로 6세의 특징은 교황직의 성격을 지도에서 훈계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그분의 일하시는 스타일은 의무를 부과하는 통찰력 있는 법의 분야를, 준수해야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서도 규칙을 만드는 지시적 법의 분야로 넓혔다.  교회 행정은 시야의 반을 잃었다.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의 손이 미치는 범위를 반으로 줄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가?  로마노 아메리오 교수는 교황이 반대자들을 심하게 문책했어야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교황이 심하게 문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자들이 교황의 관대함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교리적 오류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류를 반박하고 그 오류가 왜 설득력이 없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둘째, 오류를 범하는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  즉 교회의 권위와 직책으로부터 물러나게 해야 한다.  만일 교황이 이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회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썼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리라 … 그 결과로 권위와 복종에 대한 좁혀진 생각이 어떤 저항도 없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이와 상응한 자유의 개념과 개방적인 토론이 넓혀진 것이다."  요약하면 "교황님, 부디 반대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고 만일 이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고 반대하는 주교를 은퇴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짧은 교황직무를 맡았지만,

교회 가르침 수호에 충실한 주님의 종이었다.)

 

  교회권위의 실추와 일관되지 않은 행동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짧은 교황직에 있을 당시 만든 제안서를 보면 알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회의 기강을 보존하는 것이 나의 의도입니다."라고 했다.  1983년 7월 미국 알링턴에서 열렸던 "신앙으로 결합된 가톨릭 신자"라는 회의에서 성직자 장관인 오디 추기경은 말한다.  "오늘날 많은 가톨릭 교사들이 자신이 믿고자 하는 일부 depositum fidei만을 가르치고 나머지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원죄, 성체의 현존, 도덕적 의무의 절대성, 베드로의 지옥과 탁월함과 같은 교리들이 신학자와 강론하는 주교와 학자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거부되고 있습니다."  오디 추기경은 왜 교황이,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수년동안 공격하고 동성애의 합법성을 가르친 찰스 쿠란 신부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징계하지 않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물음에 오디 추기경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교회는 더 이상 징계를 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잘못을 한 사람들을 설득하기를 희망합니다 … 교회는 불복종으로 인하여 더 큰 추문을 야기하는 것을 피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어느 정도의 잘못을 용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극복되었을 때 잘못을 한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기를 희망합니다."

 

(교황 요한 23세,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평화로운 미소로 사랑받는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위대한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조연설에서 교황 요한 23세는 혁신적인 내용을 선언했다.  "실수는 그 자체로 수정의 수단을 가지고 있어 실수를 고치는 과정을 도울 필요가 없다.  실수를 하도록 놔두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실수는 스스로 수정될 것이다."  자비와 용납이 동일시되고 탐닉은 혹독함에 우선하고 성직자 사회의 공동선이 오용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간과되고 있다.  교회에 어울리는 강임함의 정신이 상실되었다.  일상의 교도권을 통해 교황과 교회 일치회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잘못 판단된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자들을 용납하는 가운데 많은 영혼을 잃게 되고 엄청난 해악이 교회에 가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일본 주교회의에 교황청 대사 앤드류 카류가 참석했다.  교구 주교는 관내의 한 주교가 지난 해 출시된 성 베드로 동전을 보내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당사자 주교는 얼굴이 붉어진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안타까웠고 실망하였다.  베드로의 동전이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책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전세계적으로 주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해당 주교가 백퍼센트 생명 수호 운동에 동의하는지 교황 대사들이 확인하는 것이 어떠한가.  적어도 일본의 현실은 다르다.  미국의 경우에도 전 교황 대사 장 자도는 자유분방한 사제를 계속해서 주교단에 임명하였다.  이것이 바로 로마노 아메리고 교수가 의미하는 바가 아닌가.  교황은 주교를 지명하고 주교의 직책을 박탈하고 책망하고 가르치고 힘을 강화할 수 있는 권한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가?  물론 교황 혼자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추기경과 대사와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다.  이 체계가 그 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교황 바오로 6세가 회칙 인간생명을 발표하기 전에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반대하는 추기경과 주교, 사제, 신학자, 그리스도 신자들로 둘러싸였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극심히도 지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당시 지지의 목소리를 강하지 않고 많지 않았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최선을 다하셨고 그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이란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린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행히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더 강한 성품을 지녀서 현재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이전 어느 교황보다 잘 대처하고 있다.  나는 일본 교회를 위해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를 번역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번역을 하는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명료성과 강인함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칙 인간생명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주교를 임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회는 마치 커다란 배와 같아 그 진로를 빠르고 쉽게 고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순종의 고집을 가진 수련 사제들을 걸러낼 수 있도록 현재의 체계와 방법이 다시 고려되어야 한다.  주교를 위한 기도, 특히 교황님을 위한 기도도 절박하게 필요하다.  또한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위해 단연코 일어설 수 있는 우리의 용기가 필요하다.  혼인한 사람이라면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하고 주교와 사제들은 생명 문제에 관해 충실하고 용기있고 박식해져야 할 것이다.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여 영생을 얻고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가운데 무한한 행복을 얻는다.  필요하다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일본 주교회의를 비난하는 가혹한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주교들의 등 뒤에서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말한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일본 주교들에게 공식석상에서 이미 말을 했거나 지면으로 알린 것이 .  주교들은 지금까지 이런 나의 의견을 무시했다.  나의 입을 막기 위해선 주교들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희석하고 왜곡하는 1968년도 일본 주교회의의 성명서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진리의 말을 하는 것은 주교들의 심기를 편안히 해주기 위해 침묵하고 맹신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일단 주교가 되면 평생 잘 먹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린 의견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회칙 인간생명에서 예견했던 모든 일이 실현되었다.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특히 주교와 신학자가 회칙 인간생명의 가르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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