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039를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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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daram77] 쪽지 캡슐

2000-09-02 ㅣ No.1047

조정제님의 글을 읽고..많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가장 이해할수 없는 일은 " 어떤 비판적 견해를 보이면 " 시종일관,  " 애덕이니, 사랑이니, 또 시작이니,

하시면서 그만하고 가서 사랑하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세상일이나 교회일이든  신선적으로만 되어지지 않는다는데 그러한 권고에 맹점이 있어보입니다.>

 

정말로 맹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님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고백하시지 않습니까.  강생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시지 않습니까.  몸소 인간의 육체를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인간의 삶을 살아가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성령과 하나이시라는 고백은,  하느님이 몸소 우리의 직접적이고 역사적인 삶 속에 개입해 오신다는 신앙고백이 아닙니까.

 

사랑의 권고가 '신선적'인 것으로만 들리십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따로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총명했던 사도 바오로가 주님 앞에서 '거룩한 바보'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비판적인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지역교회는 그 자체만이 '완전한 교회'가 아니며,  삼위일체로부터 기원하여 다시 삼위일체로 돌아가는 여정중에 있는 교회이고, 따라서 비판과 정화를 통해 항상 쇄신되어야 합니다..(semper reformanda라고 한다더군요..^^)

 

하지만 그 비판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라는 우상(그것이 정의 일 수도 있고..또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겠지요..)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의 사랑을 잊고 있을 때에, 우리는 과감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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