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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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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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용 [pmy0526] 쪽지 캡슐

2023-08-10 ㅣ No.102955

천상으로 떠나려는 그와 준비 안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지금  초점 잃은 눈은

멍하니 허공만 쳐다 보고 있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전신을 찍어 누르지만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어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은 살을 에이 듯  아프고 눈물은 뿌옇게 앞을 가린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운명일 망정 이승에서의 삶이 길어야 두 달이라는 선고를 받은 그는,

삶이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 앞에 이렇게 떠나야 한다는 걸 체념하고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아님 이렇게 가기엔 너무 억울하니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빌며 매달렸을까?

체념을 했든 애원을 했든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 없는 그와 무슨 일 있느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을 마주하지만 이별을 생각하면서 하릴없이 감정을 숨겨야 하는 아내는  참으로 고통스럽겠다.

 

나는 지난날 백혈병이라는 통보를 듣는 수간 너무 황당해 분노에 차 대성 통곡을 토해 냈었다.

그리고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 치를 떨며 하느님을  버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와는 사십 여 년을 이웃해 붙어 살면서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원수처럼 지내

미운 정 고운 정이 한 덩어리가 된 까닭에 그에게 향한 연민과 애처러움이 한없이 온 몸을 짓누른다.

부모가 있으면서도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족을 위해선 혼신을 다해 살아왔지만 

피붙이에게서 조차 인정받지 못한 그는 술을 벗 삼아 외로움 속에 갇혀 살았다.

왜 그의 여리고 순수하기만 했던 심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힐난과 책망만 했을까?

이제 와서 그에게 했던 일들을 후회하고 넋두리 하며 자신을 질책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성한 이들에게 두 달이라는 기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타 들어가는 촛불처럼 생명이 사그라지는 그에게는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살 수 없는

하루하루 일분 일초가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아직 두 달이 남았다. 

"하느님께서 가장 합당한 것을 주실 거란 굳은 믿음으로 십자가에 쌓인 고통을  받아 안는다. 그를 천상 낙원으로 부르실지 기적을 보이실지 주님께 무한한 신뢰를 드리며 뜻을 기다린다."는 그의 아내의 믿음에 또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래 아직 희망의 끈은 놓지 말자 다짐하며 두 손을 모은다.

 

추신: 이글을 읽으신 분들께 환자를 위해 주모경 한번씩만 바쳐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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