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2003년 1월 15일 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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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숙 [lalee] 쪽지 캡슐

2013-01-17 ㅣ No.1796

함께 걷는 평화의 길
평화의 인사드립니다.

3만 배 절기도 5일째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일상으로 하루가 바쁜 주민들이 틈틈이 시간을 내어 절 기도에 함께 합니다. 제주시민사회 단체에서도 이 기도에 함께 연대합니다. 오늘부터 경찰관 승진 시험이 있어 이번 주 경찰은 오지 않는 다고합니다. 경찰이 없으면 강정 해군기지 사업장에도 공사차량 출입이 어렵습니다. 지킴이들과 주민들이 온전히 3만 배 절기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없으면 단 한 대의 공사차량도 출입이 어려운 국가사업강정은 제주 올레길 7코스입니다. 많은 올레꾼들도 지나가고 미사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서울 공무원 노동조합에서 강정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연대의 힘을 모아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연중 1 주간 화요일 11시 미사
김정욱 (예수회)신부님-주례, 김현조(한국 순교 복자 수도회)신부님-강론.  

평화롭지 않은 상황들을 평화롭게 보는 평화의 마음부터 갖자.

강정에 평화를 고대하고 정의를 고대하지만 혼란과 불의가 기세등등하고 어둠만 짙어가는 것 같습니다. 강정과 더불어 이 사회가 대선 이후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더 많아 졌고, 절규하다가 자신의 존재를 태워버리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극단을 맛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이 낀다는 말처럼 상황이 최악으로 보이지만 새벽이 열리기 전 짙은 어둠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청나라 2대 왕인 홍타시라는 사람의 일입니다. 명나라와 최후의 일전을 앞둔 아침, 그의 밥상 다리가 갑자기 부러졌습니다. 그 바람에 상 위에 있던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이 모두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홍타시는 아침을 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홍타시는 그 순간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됐다! 이 싸움에선 우리가 이겼다. 오늘 부터는 이런 나무 소반이 아니라 명나라 궁중에서 쓰는 금 소반에 밥을 먹으리라는 하늘의 뜻이요 계시다.’ 의기충천한 홍타시와 그의 군대는 필승의 신념으로 명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자칫 불길하게 여길 수 있는 징후를 희망적으로 해석한 홍타시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미리 예단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설령 우리가 예측한대로 진행되더라도 절망할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평화는 우리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아무리 험하게 돌아가도 우리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우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이 평화롭지 않고 또 평화롭지 않은 마음으로 평화를 이룩하려 한다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또다시 우리 마음에는 새로운 갈등과 우리를 화딱지 나게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이 겸손하고 평화로워져야 합니다. 성질이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십니다.(시편 34, 19) 그럴 때에 주님의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고린 12:9)는 말씀 따라 우리의 평화로운 마음에서 당신 전능하신 힘을 발휘하실 것이고 이곳에 평화를 이룩하실 것입니다.

몇 년 전 휴가 때 부모님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작은 일로 다투셨습니다. 저는 어머님 뜻에 공감하며 어머님 편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더 거세게 화내셨고 다툼에서 생긴 흥분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운전 중에 영성강의 두 분께 도움이 되라고 영성강의 태입을 틀었습니다. ‘이 내용은 아버지가 들으셔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백밀러(실제용어:real view mirror)로 뒤를 보니 아버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번엔 어머니 들으시면 좋게다 싶은 말씀이 들려 어머니를 봤는데, 어머니는 졸고 계셨고 대신 아버지께서 당신 주장과 맞아 만족해하시는 모습으로 경청하시고 계셨습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다투시는 것도 아직 건강하시다는 증거다 싶어 관조하듯 바라보고 두 분이 다투시더라도 평화롭게 대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분이 오히려 바로 조용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로웠기 때문에 그 영향을 두 분께 전달해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에 집착하면서 섯불리 다툼이나 분쟁을 막으려하지 말고 우선 내가 평화로워야 하고 내가 기도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혼란, 다툼 그리고 분노와 불의마저도 먼저 평화로운 마음으로 품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평화는 욕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교훈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제자들은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물었으나예수님을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루카 9, 51~56) 불가타 성경에서 예로니모는 성경원전에 없는 그러나 예수님께서 꾸중으로 하셨으리라 생각되는 말씀을 첨부합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을 평화를 이룩하려고 집착하시거나 평화를 욕심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평화 자체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무리들이 당신을 붙잡아갈 때 그들을 칼로 막으려던 사람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 52)고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죽음의 칼을 들이대는 이들에게 분노 대신용서의 향기로 그들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 34)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 역시 저들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벼락을 때려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저들을 사랑으로 평화로운 마음으로 품어 봅시다. 눈앞에 보이는 저 전경과 의경들부터 평화롭게 품어야 저 거대한 힘의 세력 속으로 평화가 침투됩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분노와 투쟁으로 마음이 채워지면 오히려 평화의 길은 멀어집니다. 결국 평화를 이루는 것은 어떠한 것도 평화롭게 보는 평화로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물질과 권력을 찾는 욕망이 한이 없어서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얻었다 잃으면 상실이 크고 절망이 큰 것처럼 행복과 평화에 대한 욕망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집착으로 행복을 찾지만 여전히 목마르고 평화를 구하지만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이 욕망의 자리에 먼저 하느님의 평화 하느님의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마르 1, 21~28) 그분의 거룩한 마음이 더러운 영을 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제자들도 더러운 영을 쫓으려 했습니다만 실패합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낼 거룩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루카 9, 40~41) 평화가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의 단편선의 바보이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마귀들은 욕심이 있는 이반의 형들은 망하게 했지만 이반만은 너무 착하고 바보 같았기 때문에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반이 공주와 결혼해 왕국을 이루지만 그 왕국의 백성들도 이반과 비슷하게 바보같이 착하고 순박하여 마귀의 꾐으로 동원되어 약탈하는 적국 병사들에게 무엇이든 다 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백성들의 태도에 군인들은 마침내 맥이 빠져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바보 이반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 악마들은 도망칩니다.

새롭게 이곳에 평화를 심기 위해 또한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라는 더러운 영의 집단을 쫓아내기 위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평화를 갈구하고 평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기 이전에 먼저 저희 자신들이 평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미가 예언자는 세상 평화의 출발점이 되는 메시아 예수님을 이미 그 옛날에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을 위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미카 5, 3~4)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 되도록 합시다.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자
이웃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간직하며
강정 생명평화 미사
월요일 오전 11시 오후 4시,
화요일 ~일요일 오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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