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기획] 새로운 장묘문화를 고민할 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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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cosma] 쪽지 캡슐

2007-11-21 ㅣ No.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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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기획] 새로운 장묘문화를 고민할 때<하>

 

화장장 친환경적으로 조성하고 추모문화 교육도 강화해야... 아울러 묘지와 관련한 환경문제도 새롭게 인식해야...성당은 삶과 죽음 함께하는 연대적 전례공간화해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2004년 9월 원주교구 정신지체장애시설 살레시오의 집(원장 이동훈 신부)은 조촐하지만 새로운 장례를 치렀다. 충북 제천시 일반 화장장에서 화장한 고 박철구(하상 바오로)씨의 유골분을 시설 내 정원 주목 아래 나무함 채 매장함으로써 교회 추모문화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다. 이같은 '나무 무덤' 장례는 2005년에도 정원 내 소나무 아래에서도 치러졌고, 국내에는 '정원형 수목장'으로 소개됐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살지 않은 것처럼 죽는' 현대인에게 이 수목장은 신선한 장묘문화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화장장과 봉안시설을 '혐오시설'로 낙인을 찍으려는 시대에 새 추모문화를 고민하며 국외 사례와 대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살핀다.


 
▲ 2005년 6월 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정원에서 고 홍근우 요셉씨의 수목장을 마무리 한 뒤 이동훈 원장 신부가 소나무 앞에 땅을 파서 십자가를 세우고 있다. 사진제공=살레시오의 집
 
 
   # 이땅의 새로운 추모문화는 어떻게

   오도된 풍수지리 관습과 일부 사회지도층의 호화 분묘, 허례허식과 장삿속으로 가득한 장의 서비스, 화장ㆍ장묘시설을 혐오하는 국민의식 등 우리 추모문화는 개선 여지가 너무나도 크다. 비록 화장률(2006년 56.5%)이 매장률을 앞질렀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매장의식'은 아직 뿌리가 깊어 국토는 묘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을 전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시도에서는 묘지를 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매장문화는 이제 설자리가 없다. 가뜩이나 국토 가용면적이 부족한 상황에서 망자를 위해 해마다 여의도 면적(840만㎡) 만큼 땅을 할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모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법률적으로는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추모의 의미를 선도하는 추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가칭)로 개정, △추모시설 설치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규정 △봉안시설 설치 및 사용 기간 규정 △유골분을 산이나 강에 뿌리는 산골(散骨) 규정 △장례식장 영업 및 근거 규정 △사설 화장장 및 봉안시설 허가 규정 등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기존 공동묘지를 재정비, 봉안시설을 설치하고 남는 부지는 공원화하며 공공시설이나 대학, 종교시설 등의 봉안시설 설치를 권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각 시ㆍ도별 장묘문화 중ㆍ장기 정책 및 종합계획을 수립, 추모문화를 새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화장장이나 봉안시설을 친환경적으로 조성 운영하는 것은 당연히 선결과제다.

 추모문화 교육 강화 또한 시급하다. 초ㆍ중ㆍ고 교육에 죽음 및 화장장ㆍ봉안시설 체험, 호스피스 봉사 등 죽음 교육과정을 넣어 생명의 소중함을 교육하는 반면교사로 삼고, 생사의례학과와 같은 전공과정을 대학에 신설하며, 사회 일반에서도 종교계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추모문화 캠페인 및 교육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동훈(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총무) 신부는 "장묘문화 대안 중 하나인 수목장은 환경 파괴를 막을 뿐 아니라 하느님 창조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신자들에게 생태영성을 심어주는 합당한 선택"이며 "장묘문화에서도 환경 문제를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공간, 추모문화시설
   
   미국 뉴욕주 어씨닝 메리놀외방전교회 본부. 대성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본부 한가운데에 푸른 초지가 펼쳐진다. 평생을 해외에서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 묘역이다. 관의 크기 만큼 땅을 파서 묻은 평장(平葬) 형태의 선교사묘역은 묘지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통공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미국은 이처럼 전통적으로 평장을 선호, 주변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묘지 면적도 줄이는 효과를 거둔다. 최근엔 미국 대학들은 교정에 교수나 교직원의 유해를 안치하는 봉안당 설치를 늘려 새로운 추모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미 뉴욕주 어씨닝 메리놀외방전교회 본부 교회묘지.
전 세계에서 선교에 헌신하다 선종한 선교사들의 유해는 평장 형태로 묻혀 마치 공원처럼 푸른 초지에서 산 자와 함께하며 통공을 통해 연대성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말 메리놀회 본부 묘지에서 선종한 평양교구 선교사들 묘지에 성수를 뿌리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인종이 다양한 만큼 세계 장묘문화 또한 다종 다양하다. 시신을 흙에 묻는 매장(埋葬, 혹은 토장)에서 유해에 고열을 가해 기화시키는 화장(火葬), 바다에 유골분을 뿌리는 해장(海葬), 독수리 같은 새에 시신을 보시하는 천장(天葬), 시신을 똑바로 세워 매장하는 입장(立葬)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매장 관습이 있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묘지난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묘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연간 평균 사망자 수가 200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은 풍수지리사상의 원조답게 엄청난 땅(1956년 10만3000㎢)이 묘지로 변하자 '장묘 혁명'을 시작했다. 매장제를 법으로 금지하고 화장을 실시, 그 비율이 99%에 이르고 있고 최근엔 장례관리 법규를 제정, 묏자리 확보를 규제하고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해장을 실시하는 한편 수목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본 또한 '왕 이외에는 모두 화장한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도심 주택가 한 복판에 화장ㆍ봉안 시설을 두는 건 보편적 현상이고, 여기서 고인을 보내는 고별예식을 거행하고 화장 뒤 유골을 수습해 봉안시설에 둔다. 다이옥신 발생 우려가 큰 화장장이 시 외곽으로 추방되지 않은 것은 친환경적 첨단 화장시설 덕택으로, 화장률은 98%에 이른다.

 영국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2002년 기준 화장률이 각각 72%, 75%, 65% 정도로 화장과 매장 방식을 병행하고 있으나 평장 방식이어서 봉분 방식보다는 훨씬 더 묘를 많이 쓸 수 있다. 독일이나 스위스 등은 최근 산림에 자라는 나무 밑에 유골분을 묻는 수목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 죽음과 봉안시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부활의 문이며(위령감사송1), 사랑의 계시이자 성사인 그리스도의 죽음에의 참여이며(로마 6,8), 통공에 의해 부활로 향한 연대(「장례예식서」 지침 1항)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교의적, 관습적 이유로 매장을 권해왔다. 화장은 불교 장묘문화라는 선입견도 한몫했다. 그래서 교회법도 장묘문화와 관련, 성당 내 시신 매장 금지규정(1242조)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화장과 봉안 형태로 장묘문화가 바뀌고 교회묘지 또한 만장되면서 매장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교회법 또한 성당 내 납골 봉안에 대해 금지하는 규정을 갖고 있지 않고 유럽 성당들도 유해를 모신 경우가 많아 성당을 산 자와 죽은 이의 통공을 통한 연대성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성당이나 그 부지 내에 봉안당을 설치함으로써 성당을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연대적 전례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과 그 부지 내 봉안당을 설치 운영할 경우 교회 규범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성당 부지 내 봉안당의 거룩한 성격을 보호하고 올바르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전례 규정을 시급히 개별교회법으로 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 자만의 공간인 듯한 성당. 그러나 죽음 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다. 성당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통공을 통해 연대성 안에서 만나는 공간이며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공간이다. 성당을 죽음과 삶을 함께 묵상할 수 있는 전례적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이는 새로운 추모문화을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할 교회에 맡겨진 또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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