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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멜 트럼펫 협주곡 내림 마장조 - Timofei Dokshitser, trumpet│音香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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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8-04-29 ㅣ No.9750

Concerto for Trumpet & Orchestra. in E♭major, WoO 1, S. 49
훔멜 트럼펫 협주곡 내림 마장조(E♭major)
Johann Nepomuk Hummel (1778 – 1837)
in E flat major, WoO 1, S. 49 - 전악장 연주
 
Trumpet Concerto in E or E ♭ major, WoO 1, S. 49
Composed by Timofei Dokshitser, trumpet, Conducted by Rudolf Barshai, 모스크바 쳄버 Orch
Audio CD (March 26, 1996) / Label: RCA
1. Allegro con Spirito
2. Andante
3. Rondo: Allegro
트럼펫 [trumpet] - 금속제의 관으로 된 금관악기
이 악기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며 BC 2000년경의 이집트의 그림에도 나타나 있다. 그 무렵에는 나무로 만든 것으로 직선 모양이었으며 민족이나 부족 사이에서 신호용으로 쓰이다가, 그후 금속으로 만들어 의식이나 싸움 등에도 쓰였다. 13세기경부터는 원통관에 나팔꽃 모양의 아가리가 달린 것이 만들어졌으며 15세기경부터 오늘날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처음에는 원통형으로 마우스 피스가 원뿔꼴이었으므로 원뿔관으로서의 배음(倍音)은 얻을 수 있었으나 정확하지는 못했다. 그후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커브를 이룬 원뿔꼴로 바뀌면서 올바른 배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내추럴 트럼펫이라고 불리어 팡파르 등에 쓰였다. 그후 밸브장치와 피스톤시스템 등이 발명되고 나서 오늘날과 같은 악기가 되어 그 용도도 넓어졌다.
밸브장치가 발명되기까지는 자연배음밖에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각 조(調)마다 각기 다른 악기가 만들어졌고 그 크기도 서로 달랐다. 밸브가 부착되고 나서도 각 조의 악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구성요소는 마우스 피스·마우스피스관·주관(主管)·밸브(피스톤)·나팔꽃관의 5부분으로 나뉘며 관은 한 번 감겨 있다. 전체의 관 길이에 의해 소리의 높낮음이 정해져 있고 이들 조의 배음을 얻을 수가 있다.
제1밸브를 사용하면 1음, 제2밸브는 반음, 제3밸브는 1음반으로 각 배음으로부터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밸브의 조합에 의해 음계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주로 B♭·C·E♭의 각 악기가 사용되며 관현악·취주악·재즈, 기타의 합주곡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 밖에도 소형으로 1옥타브가 높은 B♭관(피콜로 트럼펫)을 위시하여 각조의 관을 가진 악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음색은 밝고 날카로운 느낌이 주조(主調)이지만 연주법에 따라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도 낼 수 있어 독주면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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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 작곡가, 지휘자
작곡가 훔멜(Hummel)은 헝가리 태생.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하이든이나 베토벤, 슈베르트와 동시대에 빈(Vienna)에서 활약했던 음악가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질이 나타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빈에서는 모짜르트에게 인정을 받아 2년 간 배웠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살펴보면 당시 훔멜(Hummel)은 피아노의 거장으로서 또는 작곡가로서도 베토벤과 견줄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그는 근대적인 주법으로 피아노 음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 연주는 아름다운 음형적인 장식으로 인하여 극히 아름답고 부드러웠다고 합니다. 그의 피아노 음악의 양식은 쇼팽, 리스트 등에게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훔멜(Hummel)의 피아노 작품은 125곡을 상회하는데 7곡의 피아노 협주곡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의 피아노 독주곡 "론도 파보리 (Rondo favori in Eb, Op.11)"는 지금도 즐겨 연주되고 있는 명곡이라고 합니다.
1787년, 드레스덴에서 데뷔한 훔멜(Hummel)은 이후 여러 곳에서 연주 여행을 하였습니다. 1804~1811년, 하이든의 대리로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악장을 지낸 바 있으며 1816년, 시투트가르트의 궁정 악장, 1819년에는 바이마르의 궁정 악장에 임명되어 명성을 떨쳤으며 1837년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Timofei Dokshitser(티모페이 독쉬체르, 1921~2005)
구 소련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로 1921년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독쉬체르는 10세때 트럼펫을 시작하여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서는 타바코프에게 배웠다. 1941년, 전 소련 콩쿠르 1위, 1947년 프라하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면서명성을 쌓았고, 1945년부터는 볼쇼이 극장의 수석주자로 활동했다.
그의 음반을 살펴보면 거의 구 소련의 멜로디아 레이블에서 나온 것으로, 유명 클래식곡을 트럼펫으로 편곡한 것이 대부분이다. 역시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곡, 연주한 것이 멋지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 중 네아폴리탄 춤곡에서는 명료한 트럼펫 소리가 인상적이며, 글라주노프의 소품의 경우에는 우수에 젖은 선율을 음영 짙게 드리우고 있다. 독쉬체르는 뛰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호쾌하고 품위있는 소리를 지니고 있어 현존하는 트럼펫 주자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5 ~ 84년, 볼쇼이극장 트럼펫 독주자겸 지휘자. 2005년 3월 16일 영면.
     
트럼펫 [trumpet] - (프)trompette (독)trompete.
컵 모양의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대어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
음악인류학자들은 금관으로 만든 트럼펫뿐 아니라 뿔·고둥껍질·갈대·나무 등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입술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기만 하면 모두 트럼펫으로 분류한다.
BC 2000년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최초의 금속 트럼펫은 1~2개의 음만을 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의식용 또는 군대용 악기였다. 그후 다양한 형태의 군대용, 때로는 신호용 악기로 사용하다가(예를 들면 그리스의 살핑크스[salpinx]는 곧게 뻗은 형태이고, 로마의 튜바[tuba]도 비슷한 모양이지만 로마의 리투우스[lituus]는 벨[나팔]의 끝부분이 밖으로 뻗어 있음), 중세에 이르러 음악용 악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의 형태로는 16~18세기의 자연 트럼펫과 밸브 발명(1815경) 이후의 현대식 밸브 트럼펫이 있다. 밸브 트럼펫은 주로 B♭ 악기로 조율하는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끝에 나팔꽃 모양의 벨이 달린 원통형 관을 사용하되, 대개 마우스피스 쪽으로 가면서 관을 점점 가늘게 하여 소리에 융통성을 더했다. 벨 쪽의 굴곡 부분에는 튜닝 슬라이드가 붙어 있다. 음역은 높은음자리표 아래 F#음부터 시작해서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매우 높은 음들을 낼 수 있다. 트럼펫 음악의 기보는 실제 음보다 장2도 높여 적는다.
마우스피스는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관현악단 연주자들은 대개 넓고 깊은 마우스피스를 선호하는 반면, 댄스 밴드와 재즈 연주자들은 높은 음역에서 커다란 세기의 지속음을 연주하기 쉽도록 좁고 얇은 마우스피스를 선호한다. 소리의 성질은 벨에 약음기를 집어넣어 변화시킬 수 있고, 약음기는 나무로 만든 원뿔형과 그밖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가 있다. B♭조 이외의 조로 된 악기도 많이 쓰였다. D조로 조율된 '피콜로' 트럼펫은 바흐 트럼펫이라고도 부르며, 1890년경 벨기에의 악기 제작자 빅토르 마이용이 높은 음역을 요구하는 바흐나 헨델의 트럼펫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고안했다. 그밖에도 이전의 E♭조 트럼펫과 C조 트럼펫, F조와 높은 B♭조로 된 피콜로 트럼펫, B♭조로 된 베이스 트럼펫 등이 있다. 자연 트럼펫(밸브가 없는 트럼펫)이 낼 수 있는 음은 다음과 같이 자연 배음열 위의 음들이다(c'는 가온 C음을 나타냄).
(c) g c′ e′ g′ (B♭′) c˝ d˝
(2) 3 4 5 6 7 8 9
e˝ (f#˝) g˝ (a˝) (B♭˝) b˝ c′˝
10 11 12 13 14 15 16
제2배음은 낼 수 없고, 제7배음도 음계상 정확한 B♭음을 내지 못한다. 제11·13·14배음들도 마찬가지로 정확한 음높이를 내지 못하지만, 기술적으로 연주하면 제11배음은 F나 F#, 제13배음은 A나 G#을 낼 수 있다. 현대식 밸브 트럼펫은 대체로 이 배음열 중 2번째 음에서 12번째 음까지를 사용하고, 밸브를 누르면 관의 길이가 늘어나 반음계(한 옥타브를 12음으로 나눈 음계)의 사이음들(즉 반음들)을 낸다.
가장 오래된 트럼펫은 60㎝ 정도 되는 곧은 관을 가졌고, 거의 2m에 달하는 곧은 모양의 관이 있는 중세의 뷔진은 오랫동안 왕의 화려한 행렬에 사용되었다 (→ 뷔진). 관의 길이가 늘어나면 그만큼 자연배음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지만, 음역은 연주자가 입술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변한다. 1400년경의 트럼펫은 관의 길이가 너무 길어 연주와 악기의 이동을 위해 관을 S형으로 만들 정도였고, 1500년경에는 오늘날처럼 고리 모양의 길고 구불구불한 관을 가진 트럼펫이 나왔다. 1600년경에는 궁정과 길드 트럼펫 연주자들이 케틀 드럼의 반주로 이제까지보다 더 높은 클라리노(clarino) 음역에서 선율을 연주했다. 클라리노(3옥타브 이상의 높은 배음렬의 음들을 내는 기교적인 트럼펫 연주 또는 연주법)의 음역에서는 자연배음들만 가지고도 장음계의 모든 음을 낼 수 있다(따라서 높은 음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연주할 수 있음). 자연 트럼펫은 마우스피스 근처의 본관에 별도로 끼워 쓰는 구부러진 변조관을 사용하면서부터 조(調)를 바꿀 수 있었다(변조관을 붙여 연주하면 늘어난 길이만큼 음높이가 낮아져 어떤 조로도 배음렬의 음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됨). 바흐 시절에는 관현악단용 트럼펫에 D조 변조관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18세기말이 되면서 작곡가들은 점차 F조에서 낮은 B♭조까지로 된 변조관을 많이 사용했다. 사회적·음악적 변화로 인해 클라리노 연주는 쇠퇴했고, 관현악단의 관현악 부분은 주로 클라리노 이하의 연주하기 쉬운 음역들로 작곡되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음악가들은 자연 배음렬 이외의 음들을 연주하기 위해 관의 일부를 미끄러지게 하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고(미끄러지는 부분을 슬라이드라고 하는데, 슬라이드로 관의 길이를 조절하면 밸브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자연 배음렬 위의 음높이들을 조절할 수 있음), 이것은 트롬본의 슬라이드 원리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바흐 음악에는 간혹 마우스파이프라는 슬라이드가 달린 독일 트럼펫인 트롬바다티라르시(tromba da tirarsi)가 사용되었다. 또한 영국의 플랫트럼펫(flat trumpet : 1695경)은 마우스피스 근처의 관 위쪽에 굽은 형태의 슬라이드가 붙어 있었고, 이것은 19세기 영국 관현악단에서 종종 슬라이드 트럼펫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한편 1801년 이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는 손가락구멍 위에 키[件]가 덮인 트럼펫이 유행했다. 1828년경 독일에는 밸브 트럼펫이 등장했고 이것은 대개 F조로 조율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연주자들은 관현악단의 트럼펫 악기로 코넷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밸브 트럼펫이 다소 늦게 수용되었다. 20세기에 와서는 크기가 더 작은 B♭조 트럼펫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
     
     
Johann Nepomuk Hummel(1778~1837)
훔멜은 1778년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서 활발히 활동한 음악가이다. 당시 피아노의 최고의 거장으로 존경을 받았었고, 작곡에 있어서도 베토벤과 견줄만한 수재였다. 모차르트, 클라멘티, 알프레히츠베르거, 하이든, 실리에르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모차르트는 훔멜을 크게 인정하여 그로 인해 유럽 순회 여행을 하게 되기도 하였다.
훗날 하이든의 후속으로 에스트로하지후작의 악장을, 슈튜트가르트와 바이마르의 궁정 악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은 절묘한 기교가 특징이고, 멜로디에서의 풍부함, 화성법과 대위법에서의 교묘함이 그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주요한 작품으로는 피아노 독주곡 <마음에 드는 론도 op.11>, <트럼펫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등이 있다.
요한 네포무크 훔멜은 1778년 11월 14일 브라티슬라바(현 슬로바키아 공화국 수도. 당시엔 빈의 위성도시 였다)에서 태어나, 1837년 10월 17일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훗날 작곡가와 지휘자로 활약했지만 젊었을 때는 피아노의 명인으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베토벤보다 8세 연하이면서도 베토벤과 피아노 경연을 벌였던 일은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그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던 알브레히츠베르거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1804년부터 1811년까지 헝가리의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에스테르하치궁에서 악궁으로 일했다. 그 후 빈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또는 작곡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던 그는 1819년 바이마르 궁정극장의 지휘자로 부임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작곡가로서의 훔멜은 피아노 곡뿐만 아니라 극음악, 교회음악, 실내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협주곡 중 그 자신이 연주할 목적으로 쓰여진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생전에 널리 연주되고 있었지만, 트럼펫의 명인 바이딩거를 위해 작곡했던 트럼펫 협주곡과 바순 협주곡은 출판되지 않은 채 묻혀 있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영국 도서관에 보관되어온 이 바순 협주곡의 자필 악보를 살펴보면 그리스바허에게 헌정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바순 협주곡의 솔로 파트중 여러 곳이 훗날 작곡자 자신에 의해 수정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바순 연주자로서의 그리스바허는 그 연주역량이 트럼펫 연주자인 바이딩거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훔멜이 이 바순 협주곡을 헌정했던 그리스바허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진 않지만, 아마도 라이문트 그리스바허(Raimund Griesbacher;1751-1818)가 아닐까 추정된다. 1776년부터 1778년까지 하이든이 악장으로 있었던 에스테르하치의 궁정악단에서 활약했고 그 후에는 빈에서 클라리넷과 바셋호른의 연주자로도 활동했던 그는 바순 연주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클라리넷, 바셋호른, 바순 등 악기의 연주자로서 보다는 그 악기의 제조자로서 더욱 명성을 날렸고, 1800년에는 빈 궁정의 악기제조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가 제조한 수많은 클라리넷과 바셋호른과 함께 하나의 바순도 아직 남아 있다.
훔멜이 작곡한 바순 협주곡은 18세기적인 고전주의 양식으로 쓰여진 선율이 풍부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고 첫 악장은 4분음표의 예리한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제2주제와 훨씬 더 서정적인 제1주제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교적으로는 대가적인 기교의 과시를 요구하는 악구가 많은데 연주가들에게는 연주기량을 시험받는 고비가 전악장에 산재해 있다. 카덴짜는 없지만 솔로 파트가 불연속적인 옥타브로 클라이막스를 이루면서 화려하고 눈부신 기교를 구사하게 된다. 느린 중간 악장은 B플랫 장조로 된 감명깊은 Romanza이다. 그리고 피날레의 론도 악장에서는 8분의 6박자의 순탄한 주제가 그 보다 휠씬 더 화려한 성격의 에피소드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티모페이 독시체르(Timofei Dokshitser, 트럼펫)
1921년, 우크라이나에서 출생. 군악대 학교, 굴라주노프 음악원, 그네신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특히 그네신 음악원에서 미하일 타바코프(1877~1956)를 만나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의 전기를 잡는다. 오뎃사 음악원 출신인 타바코프는 근대 러시아 금관음악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거장으로 모스크바 음악원과 그네신 음악원에서 많은 후진들을 키웠는데, 그의 음악인생의 황혼녘에 독시체르를 만났다. 이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한 축복이었다. 독시체르는 그로부터 트럼펫 연주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타바코프는 이 걸출한 제자를 만남으로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음악적인 입지가 확고해지는 계기를 갖게된 것이었다. 잘난 스승을 만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난 제자를 만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두 사람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봄,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소련방위군 오케스트라의 수석주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입단한지 얼마되지 않아 독일군이 침공해 왔고, 오케스트라는 병원, 군대가 전장으로 출발해 가는 철도역, 때로는 전장의 한 가운데서 연주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6월에 있은 승전 퍼레이드 때도 이들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독시체르는 이 해가 참 좋은 해였다. 그네신 음악원에 세 번째로 다시 들어가게 된데다가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입단이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1945년부터 1984년까지 40여년간의 긴세월 독시체르는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로 활동했고, 1950년대부터는 지휘자로서의 경력도 쌓기 시작했다. 독시체르의 초절기교와 스마트한 표현력은 수많은 작곡가들을 감동시켰고, 그 결과 하차투리안, 바인베르크, 페쉬킨 같은 작곡가들이 트럼펫 협주곡을 작곡해서 독시체르에게 헌정했다.
트럼펫을 위한 오리지널 작품은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바로크 시대엔 트럼펫을 위한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작곡됐지만,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가 떨어지는 이 악기를 위해서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경우가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 독시체르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편곡솜씨가 뛰어난 전문가들에게 위촉해서 이미 널리 연주되고 있는 다른 악기들을 위한 작품들을 트럼펫 연주용으로 편곡하는 작업에 매달렸고 그 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독시체르가 활동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냉전시대의 한 가운데였다. 따라서 그의 활동영역도 소련을 중심으로 삼은 동구권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시체르라는 이름이 당시 서방음악계에도 꽤 알려졌던 것은 그가 뛰어난 트럼피터라는 사실말고도 레퍼토리의 확대를 위해서 그가 기울였던 일련의 노력과 그 결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서방음악계에도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서방음악계는 모리스 앙드레(Maurice Andre)라는 걸출한 트럼피터가 군계일학의 존재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지만, 레퍼토리의 확장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독시체르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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