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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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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자 [choans40] 쪽지 캡슐

2015-11-23 ㅣ No.193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

 

저는 1965년 교직(초등교사)에 있을 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완강히 반대를 하였지만(의사.파일롯트.고등교사 줄줄이)이미 제눈에는 콩깍지가 덮여 있는

상태였고 열렬한 사랑끝에 속잔치까지 치뤘습니다. 시댁은 홀어머니가 계셨고 육대 독자집안에  시집

가 아들 셋을 낳았으니. 어머님께서는 제가 며느리가 아니라 완전 공주로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6.25 후유증으로 많이들 힘들었는데 저는 진사댁 여섯째 딸이라고 몸종까지 딸려서 시집을 갔습니다. 남들이 보리밥 먹을 때 저는 흰 쌀밥을 먹었고, 남들이 돼지고기를 먹을 때 저는 쇠고기를

먹었으며 남들이 꽁치를 먹을 때 저는 도미와 민어등 좋은 것은 다 먹으며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살았습니다.

 

1984년에 남편(요셉)과 저(아녜스)와 둘째아들(마티아) 셋째아들(마태오)이 세례명을 받고 미아3동 성당에서 영세를 하였으며 85년에 견진성사를 네식구가 받았으며 그 다음에 시어머님도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갖고 영세하셨습니다. 어머니는 2년 후에 하느님 곁으로 선종하셨습니다.

 

1988년에 집을 팔고 나대지 이백평에 빌딩 두 채를 지었는데 업자를 잘못 만나 사기치는 바람에 실패하고 수억이 넘는 부채를 안고 문정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은 도 장학관에서 초등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저는 통근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91년 자원사직을 하고 기간제교사 간병인 등 이것저것 몸사리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빚 갚으려고요. 남편도 정년퇴직 하셨지만 빚청산 관계로 연금 하나 없이 퇴직하였지요. 지금도 죄송합니다.

 

88년 3월에 맏아들을 결혼시켜 10년 동안은 데리고 살다가 분가하여 손주와 늦둥이 손녀를 낳고 10년을 살았는데 며느리가 2009년 1월 초에 뜻하지 않은 뇌종양이 와서 수술을 하고 1년 6개월만에 44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21살 손주와 6살짜리 손녀를 남긴 채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그때 아들은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아무 것도 없는 빈털이가 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주님께서 길게 끌지 않고 빨리 며느리를 데려가셔서 남은 식구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마티아는 95년 결혼하면서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가서 건축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10년 동안 공부를 하였습니다. 석사 졸업 3개월 앞두고 삼성 제일 기획이라는 큰 회사에 스카웃이 되어서 너무 잘

되었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가 2000년도 아기를 유산하면서부터 우울증, 향수병 등으로

아팠고 그 후 유산을 세번이나 하면서 몸이 완전히 망가졌나 봅니다. 장 절제 수술도 몇번을 받았으며  지금은 희귀병인데 베체트병이랍니다.

 

"어머니 10월부터는 보험이 적용 돼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체트병에 효과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유사한 병이 호전된 경우도 있다니 희망을 걸어봅니다. 어머님 환절기에 몸 조심 하시고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지석씨 출장에서 돌아오면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혜진아 고맙다. 치료 잘 받고 항상 네 몸 건강관리에 힘쓰기 바란다. 너는 김씨 가문에 고귀한

며느리이니까 사랑한다. 혜진아, 잘지내라~."

 

셋째 아들 마태오는 96년 10월에 결혼하여 손녀와 손자를 낳고 지금 20년째입니다. 며느리는 무남독녀인데 음식 솜씨도 좋고 제사음식과 김치는 작년까지만 해도 쭉 해왔습니다. 작년 12월말 경 며느리가 "어머니 지현씨가 저하고 이혼하자네요. 소희가 고3이니까 서류정리는 내년에 하제요." 이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 또 무슨 좋은 것을 더 주려고 이러십니까? 추석 전 날 막내 아들이 "엄마, 아버지하고 아이들 데리고 밑으로 내려오세요." 하더니 요리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유통업을 하고 있었는데 큰형과 자기 처가 큰 손해를 입혔나 봅니다. "엄마, 난 형 그 집에 사는 한 엄마집에 안 가요..." 참,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합니까? 하느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 주님 뜻대로 하세요.

 

얼마 전 궁금하여 남편과 저는 막내아들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며느리가 데리고 있고 아들은 자기 혼자 생활을 하더군요. 무슨 말 끝에 "그래, 어떻게 되었니?"했더니 "엄마, 이혼서류 끝냈어요. 이제 남남이에요." 어이가 없었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잘 지내라."하고 왔지요. 하느님 이럴 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 또한 주님꼐서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들 셋 다 결혼 시킨 다음엔 간병인도 안하고 성당에 돌아와 구역반장, 성모회, 성가대, 재가노인회장, 엠마우스회장, 사랑의도시락 주관, 안나회 서기를 맡는 등 정말 하느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2011년 2월에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님께서 저희 성당에 부임해 오셨는데 제가 엠마우스 봉사회장을 할 때 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저를 참 사랑해 주셨고 '왕언니'라는 명칭까지 붙여주셨습니다.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너무 좋았고 화살기도의 위력이 너무나 저에게 큰 은총입니다.

11년 8월에 떨리는 마음으로 봉헌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하느님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라는 당신의 감미로운 이름으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내맡김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뜻으로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맡긴 영혼이 된 뒤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온전히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툭하면 과거의 제 잘못 얘기를 들추는 것이 정말로 미웠고 화가 났는데 지금은 나를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데리고 살아준 영택(영감택이)이가 고맙고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이제 내 아들들의 아픈 상처들을 이 엄마가 내맡김의

화살기도로 싸매주고 싶습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믿고 한없이 바라고 너무너무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76이라는 이 나이에 주님께서는 망설여왔던 이 글을 쓰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기도하고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도 하느님이 천국으로 불러 주실 겁니다. 악착같이 사랑을 하며 살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이끌어 주소서!

사랑하는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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