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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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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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7-02 ㅣ No.148009

 

(부르심을 받은 성 마태오'(카라바조)

2021년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두 명의 기업 대표가 있는데 이들의

경영 방식은 정반대인 것으로

늘 대조되었습니다불경기 때 대처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었지요.

한 대표는 불경기에는 인원을 줄이거나

현행 유지를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불경기니까.”

다른 대표는 불경기가 되면 오히려

인원을 많이 뽑습니다.

그 이유 역시 간단합니다.

불경기니까.”

불경기에는 더 좋은 직원을 합리적인

연봉으로 채용할 수 있기에 이때 더 회사를

확장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더 잘 나가는 회사일까요?

두 기업 모두 잘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각 대표가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괴한 선택이라 해도 남들도 이해할만한

합리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

긍정의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남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 경우는 절대 잘 될 수가

없습니다남의 철학을 따라 하는 것이니

여기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따라서

특별한 변수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동 특히 팔레스티나에서 식사는

사람들 사이의 일치를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 준수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알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세리와 죄인

멸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종하는 것조차

피했습니다더구나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 곧 부정한 자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다른 많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중요한 규정을 의도적으로 깨드리십니다.

그들이 봐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사랑이 아닌 규정의 준수만을 외쳤던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꾸짖음이었습니다그들이 만약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면,

주님을 이해할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로써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잘못된 철학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모든 인간의 문제에는

깔끔하고 간단한 대답이 있지만

그 답은 항상 그르다.

(헨리 루이스 멩켄).

즐거운 신앙생활

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10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감기고 그래서

10시를 전후해서 침실로 향합니다.

잠을 꾹 참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해도

눈꺼풀이 감기면서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선후배 신부를 만나서

술 한 잔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계를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10시가 훨씬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혀 졸리지 않았습니다.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지면서

더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만약 그 신부들이 반갑지 않고,

그 자리가 즐겁지 않았다면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즐기니 이제까지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의무감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신앙생활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맙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늘 지루하고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시길.

성 마태오를 부르심(헨드리크 테르브뤼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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