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뜻한 묘지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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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cosma] 쪽지 캡슐

2007-09-13 ㅣ No.3803

이렇게 산뜻한 묘지가 있었나!    2007년 9월 13일 (목) 03:17   조선일보

 삶과 죽음은 좀체로 화해하지 않는다. 서울 태릉성당의 납골당 설치 문제는 주민들과
성도간의 돌팔매질로 번졌다. 입씨름은 ‘주민들의 수준이 높냐, 낮냐’ 두고 싸우는 코미디가 됐다.
경기도 하남시의 광역화장장 건설 문제는 ‘시장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삶이 죽음을 거부하는 데서 불거진 일들이다.


▲ 분당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그만큼 남서울공원묘지는 도심과 붙어있다. 말 그대로‘묘지’가‘공원’으로 될 수 있을까. 남서울공원묘지에선 그 가능성의 싹이 움트고 있다. /남서울공원묘지 제공
 


▲ 이 공원묘지엔 인기그룹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씨(1995년 사망)의 묘도 있다. 공원입구에는‘내 사랑 내 곁에’의 가수 김현식씨가 잠들어 있다. /조의준기자
 
 


그렇다면 아파트 숲 한복판에 공원묘지가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비싼 아파트들이 모여있는 성남시 분당에서. “아파트값 떨어진다” “무서워서 애들 키우기 겁난다” “빨리 이전하라!” 이런 말을 앞세운 시위로 난장판이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잘 꾸며진 오솔길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고, 계절이 바뀔 때면 꽃놀이 단풍놀이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분당의 남서울공원묘지가 바로 그렇다.

지난 12일 낮 남한산성과 이어지는 영장산 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이곳엔 매미소리와 산새소리가 가득했다. 걸어서 10분이면 아파트 단지와 연결되는 곳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묘지가 도심 속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두 손 꼭 잡고=여기에 가면 삶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가르쳐주는 소중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걸어서 10분쯤 산길을 타면 ‘소형 봉안묘(납골묘)’ 묘역에 이른다. 이곳은 자신들만의 개성있는 비석을 세울 수 있는 ‘신세대풍’ 묘역이다.

이중 한 비석 앞 잔디가 유독 여러 사람의 발길에 눌려있다. 3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자신이 세상에 온 그날, 그대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남편이 바치는 시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실과 인내의 베일에 가려 꽃다발 속의 이파리 하나만큼 밖에 드러나지 못했으니/ 어찌 이 사람 그리워 울지 않을 수 있으랴/ 병과 싸우기 7년, 징그럽게 들러붙는 고통을 호흡하면서도 끝내 웃음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우리 모두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이제 더욱 오래 사랑할 이름, ○○○”

이밖에 평생 고생을 한 어머니에게 바치는 자식들의 짧은 글귀와, 비석마다 새겨진 짧은 사연들이 감동을 준다. 이 묘역을 홍보하는 이종성씨는 “등산하던 분들도 가끔 와서 읽고 감동 받았다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산악자전거 단골 코스=남서울공원묘지는 이미 산악자전거(MTB) 동호회원들에겐 꽤나 알려진 곳이다. 도심에 붙어 있어 접근이 쉬울 뿐 아니라, 도로정비도 잘 돼 있어 산악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분당(만나교회)→남서울공원묘지(원적정사)→맹산 솔밭→거북쉼터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개발돼 있다.

봄이면 벚꽃놀이를 하는 사람으로 넘칠 정도다. 이날 성묘를 온 고모(여·67)씨는 “저희는 전라도 장흥에 있던 묘를 다 이쪽으로 이장해 왔다”며 “분당에 살다보니, 한 달에 한 두 번씩 아버님 어머님이 보고 싶을 때나 적적할 때 온다”고 말했다. 고씨는 “특히 여긴 봄이면 벚꽃이 어느 관광지 못지 않게 만발한다”며 “그땐 꽃놀이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묘지 인근에 있는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최상의 산책코스다. 전자부품연구원에서 일하는 한문영(여·48)씨도 “밥 먹고 점심 때는 항상 산책을 한다”며 “한 30분쯤 걷고 나면 몸도 가뿐하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함께 산책을 나온 강순옥(여·48)씨도 “봄에 벚꽃지고 나면 여기서 버찌 따먹다 입술을 검게 물들이기도 하고요, 겨울에 눈 온 뒤에 이곳을 걸으면 그렇게 분위기 있을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남서울공원묘지는 1972년 문을 열었다. 분당이 개발되기 전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데…. 먼저 생기고 나중에 생기고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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