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제관 일기108/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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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9-01 ㅣ No.4493

            사제관 일기 108  

 

특강이 한달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의준비로 수시로 날밤을 새우다보니, 코피도 수 차례나 흘립니다.

신자들은 자주 특강을 요구하지만, 사실 저는 몹시 힘이 듭니다.

강의준비도 그렇지만, 말한다는 것 자체부터 솔직히 싫습니다.

 

원래가 나서서 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편입니다.

말수가 없는 편인데, 사제다 보니 싫어도 해야 합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치고 말처럼 사는 이가 없고,

말 많은 사람 치고 속 깊은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다들 겉만 요란하고 무성할 뿐, 속은 텅하니 비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저마다 똑똑한 사람뿐이고,

어디를 가도 화려한 말 잔치로만 꾸며지고 있습니다.

 

물론 입으로만 살고 있는 제 모습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한몫 거드는 사람이고,

그들과 같은 축에 끼어있습니다.

.......

오늘도 강의를 끝내고 사제관으로 돌아옵니다.

불현듯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도 떳떳치가 않고,

신자들 앞에 당당한 모습도 주님 앞에서는 초라해지고 마는.....

하여, 오늘밤도 역시 당신 앞에서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항시 말씀처럼 살지 못함이 죄스러웠거늘,

오늘도 가르침과 삶이 달라 죄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신자들에게는 바로 살라 가르치건만, 정작은 그릇 살고 있으니,

제가 바로 오늘의 바리사이임을 새삼 고백합니다.

....

긴 술을 달고, 성구로 치장한 화려한 옷을 입었다던 바리사이....

허나, 주님의 눈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내면을 향하셨습니다.

속일 수도 속여서도 아니 될 당신의 눈이 저를 향해 온 밤을 번뜩이십니다.

화려한 겉만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가꾸어온 노력들.....

그러나, 당신은 이 밤, 제 속을 들여다보시며 고개를 저으십니다.

....  

성서 속의 바리사이가 어떤 모습일까 그리 궁금했거늘

바깥에서만 찾아온 이 어리석음이여.....

실상 이 모습이 그 모습이거늘 왜 이리도 깨우침이 더뎠는지.....

하여, 신자들에게도 바로 제가 오늘의 바리사이라며,

제 말씀은 취해도 행동만은 본받지 말라 일렀습니다.

....

앎을 버리고 삶을 붙들라 이르건만,

앎만큼 삶이 못 따르기에 한 사제의 밤은 오늘도 초라해질 뿐입니다.

욕심이라면, 잘못 살지 않고 제대로 살고 싶은 그 한 가지뿐인데,

그 마저도 채우지 못해 나날이 부족한 삶입니다.

....

바리사이...

백번을 넘어 들어도 제게 꼭 맞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말과 행실이 따로 노는 바리사이지만,

품행과 덕목으로 옷입은 참 바리사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입보다는 몸을 더 놀리고, 말 수보다 행동의 수를 더많이 늘려,

말로서 행동을 빛낼 바리사이중의 참바리사이, 사제중의 참사제가 되겠습니다.

.......

                                 괌한인성당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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