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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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115/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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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10-14 ㅣ No.4845

 

 

                      사제관 일기 115  

 

 

엄청난 지축의 흔들림....

그야말로 끔찍한 악몽이었습니다. 지난밤은....

강도 7은 족히 넘었을 법한 강진이 깊은 밤 괌 전역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미 몇 차례의 지진은 겪었지만, 이번같이 강한 지진은 처음이었습니다.

몸조차 가눌 길 없는 흔들림...

그 짧은 촌각이 천년처럼 느껴져 전율에 떨어야 했습니다.

......

죽음 앞에 초연한 듯 살아왔건만,

파자마바람으로 뛰쳐나온 꼴하며, 여진의 두려움에 밤잠을 설친 꼴이

하도 우서워 홀로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가 섬뜩해 바깥만 맴돌던 모습도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죽음 앞에 그렇게 자신있는 척 살아왔음에도,

이렇게 살겠다고 비겁히 발악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죄가 많아서일 겁니다.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다 닦고 가야겠기에 죽음이 두려운 것 같습니다.

.....

그러고 보니, 살면서 참 죄를 많이 짓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도 여럿 있고,

아집과 교만의 죄도 숱하게 저질러왔습니다.

크고 작게 지은 죄, 알게 모르게 지은 죄까지....

모르면서 짓는 죄도 많은데, 알면서 지어온 죄까지 합한다면,

아직은 죽을 꿈조차 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신부를 마치 날개 없는 천사쯤으로....

실상 신부만큼 죄 거리가 많은 이도 없는데 말입니다.

구원의 길은 낱낱이 알고 있지만, 그 길을 살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많기에

어쩌면 그 모자람이 모두 죄가 될 것 같습니다.

.....

죽음 앞에 더 당당해지고 용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죽음을 찬미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바르게 살고, 더 합당히 살아, 맑은 영혼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거두어가실 목숨의 날 수를 셈해 넣는 일.....

결코 가벼히 여길 수 없을 하루의 작업이기에

오늘의 분량을 셈하며 하루의 죽음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잠이 이승의 마지막 잠이 될 수도 있기에,

하루의 삶을 좀더 정직히 셈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진보다 더 무서운 당신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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