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는 여기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아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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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6-06-09 ㅣ No.2787

"독자기고"
제목   기고 : 마리아를 신격화 하는 천주교회와 컬리리디아니즘(Collyridianism) 1
글쓴이 관리자 E-mail 번호 78
날짜 2006-06-07 조회수 4 추천수 0

마리아숭배 초기교회 사이비 집단에서 비롯



컬리리디아니즘의 주요 교리 천주교에 들어와

무염시태·몽소승천 등 마리아숭배 교리로 발전



2004년 9월 어느날 미국 야후(yahoo.com)에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정말 우연하고도 기적적으로 이상한 영문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미국 EWTN(Eternal World Television Network·Global Catholic Network)에서 나온 기사였다. 당시 즉석에서 대충 번역을 해보니 4~5세기에 아라비아 근방에서 성모 마리아(이하 동정녀 마리아로 통일함)를 “신”으로 흠숭(Latria, Worship)했던 사이비 이단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영어로는 collyridians로 표기하고 있고 나중에 그 어원을 알아보니 헬라어 Κολλυριs 또는 Κολλυριδεs에서 이 영어가 나왔는데 이들이 하도 희안하게 성찬식의 빵을 먹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위 헬라어들의 뜻은 영어로 Bread, Cake이다. 그런데 이 집단의 주장이나 행태를 증언하고 있는 것은 4~5세기 동방교부 살라미스의 주교(감독)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403년 사망)이다. 그는 그의 저서 파나리온(Panarion, Medicine box)에서 이 집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초대 교회부터 그의 당대까지 존재해 온 총 80가지의 사이비 이단설들이 총망라되어 기록되어져 있다. 이 사이비 이단에 관한 기록은 파나리온 79에 있는데, 파나리온 78에는 Antidicomarianitism이란 사이비 이단에 대하여 증언이 되고 있다.
이 collyridianism을 유일하게 언급한 교회사학자는 프로테스탄트의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뿐이다. 이 위대한 미국의 교회사학자는 그의 교회사 3권 7장 81절에서 이것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약점이라면 그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는 천주교회에서 파문당한 한스 큉 신부조차 이를 모르고 있다. 그 증거는 1천 페이지가 넘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본질과 역사”에 일절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이비 이단 집단의 주요한 교리들이 천주교회에 고스란히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그것을 확실하게 규명한 것은 천주교회의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의 교리이다. 이 무염시태의 교리는 1854년 교황 비오(Pius) 9세가 천주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그런데 이 집단의 무염시태는 동정녀 마리아가 주 예수님처럼 또한 한 동정녀로부터 탄생했다는 것이나, 천주교회의 그것은 동정녀 마리아가 주 예수님의 선행구속은총에 힘입어 잉태와 동시에 원죄로부터 자유로와졌다는 것이다. 이 점이 서로 다른 것이나 그녀가 원죄에서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
천주교회는 이 교리를 비오 9세가 당시 주교들과 신학자들로 하여금 토론과 협의를 거치게 한 후 교리로 선포했다고 주장해 오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으로 그것의 핵심사항의 뒷 배경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천주교회는 이것을 과거에도 감추었고, 현재도 감추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 감추려 들 것이다.
이 교리의 감추어진 뒷 배경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성직자(추기경들 + 대주교들 + 주교들 + 신부들)들과 신자들의 청원서이고 그 다음 하나는 1830년의 소위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는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Apparition) 사건이다. 무염시태의 교리를 천주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해 달라는 청원서들은 장장 231년 동안 끈질기게 교황들에게 전달되었고 결국 비오 9세 때 그 찬란하고 황홀한 빛을 보게 되었다. “기적의 메달” 발현은 1830년 7월18일 밤 11시 반경 프랑스 파리의 “사랑의 딸회” 본원 수녀원 성당에서 수련자 수녀 가타리나 라부레(당시 23세)에게 동정녀 마리아가 처음 발현한 사건을 말한다. 그해 11월 27일 저녁 5시 반경 가타리나 수녀는 마리아의 발현을 두번째로 체험하는데 그때 마리아는 자신이 원죄없이 잉태되었다고 밝힌다. 1832년 파리의 대주교 드 랑케는 이 사건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한 후 교황청에 긍정적인 보고를 올린다. 183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그레고리) 16세는 이 발현을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리고 1847년 “문제의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가 가타리나 수녀에게 “마리아의 어린이 군대”를 설립할 것을 요청한 것에 대하여 인준했다.
이와같이 이것이 비오 9세에 의하여 선포된 그 교리의 감추어진 당대의 뒷 배경이다. 즉, “문제의 인물” 교황 비오 9세는 공적 계시(성경 +성전 : 전승 : Tradition)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험한 사적 계시”에 근거해서 이 교리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 이 교리에 대하여 다루어 오고 있는 국내외의 수많은 교회사학자들 중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고대교부들 중 유일하게 시리아인 에프렘(379년 사망)이 무염시태를 인정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를 비롯한 동서방의 모든 정통교부들은 그들이 무염시태 그 자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동정녀 마리아의 신앙과 인격의 완전함은 모두 언급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천주교회의 어용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오늘날로 말하면 과학자에 가까움)가 이 교리를 부정한 반면에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쯔빙글리는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필자도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cafe.daum.net/antinaju 우리 카페인데 여기에 이 글의 모든 출처가 있음.


이용섭(979aaa) (2006/06/08) : 1회에 원고지 13매라는 제한이 있고 위 글에는 원고와는 달리 일부 삭제와 수정이 있심다. 제목도 제가 뽑은 게 아님다. 이 제목으로는 연속 4회가 나갈 것이고 교열과 교정도 4회분을 다 보았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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