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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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신학교 간 싸움꾼 / 장영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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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자 [pink45] 쪽지 캡슐

2007-08-13 ㅣ No.29394

 
 
 
 
 
8월 둘째주 연중 제 19주일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루카 12-32-48)
 
 
                                        신학교 간 싸움꾼
 
                                                                         글: 장영일(대구 효목성당 주임신부)
 
고등학교 때 기숙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내가 기숙사 면학 분위기를 해칠까봐 학교에서는 즉시 결정을 못해서 한 달 뒤에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복도를 지날 때면 후배들이 나에게 걸려 맞지 않으려고 재빨리 교실로 들어갈 정도였느니..... .
 
 
어느 날 기숙사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완장 찬 규율부장이 이유도 없이 기숙사 학생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선생님들도 그의 행패를 제지하지 못하는 어깨 중의 어깨였다.
 
그 녀석과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기숙사생들에게
"이런 행패를 학교에서 해결해줘야지. 점심 먹고 아무도 학교 가지 마라." 고 선동했다.
 
수업을 빼먹어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매를 맞았지만 선생님들의 대책으로 다음날부터는 모두 편하게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어떤 연유로 고3 때는 친구들이 나를 급장으로 뽑아주었다.
기가 막힌 담임선생님은 재선거를 하도록 했지만 친구들은 또 나를 뽑아주었다.
옆 반 아이들의 등쌀을 한 몸으로 막아주는 내 싸움 솜씨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
입원해 4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을 놀면서 세상에서 제일 큰 벌은 아무것도 안하고 노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육신이 힘을 잃으면서 비로소 내가 세상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내게 본당부제님이 신학교를 권유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울컥하면 참을성 없이 싸움질하던 내가 신학교 입학원서를 냈으니 본당의 젊은이들은 술렁거렸다.
 
한 학기를 마치고 얌전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도 저마다
"신학교가 참 좋은 곳인가 보다." 고 한마디씩 했다.
 
 
겨우 몸을 추스를 때쯤 군에 입대해 거의 죽을 만큼 고생했다.
복학 후 축구를 하다가 이번에는 다리를 다쳤다.
 
의사의 오진으로 2년이 지난 뒤에야 무릎관절 수술을 하게 되었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이후로 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100미터를 12초 이내로 달리던 운동선수 체질을 접어야 했다.
한 시간도 걷기 힘들 만큼 걷는 것조차도 내게는 큰 짐이 되어버렸다.
 
 
고3 때 머리를 다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신학교를 갔고,
다리를 다쳐 고통 속에 비로소 가만히 앉아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요즘 한 달도 넘게 몸이 아파 평일미사도 겨우 바칠 만큼 고통을 받고 있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교우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본당 일을 못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또 깨닫게 해주실까?
고통 속에서 건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겠다.
 
 
                      ㅡ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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