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뜨겁고도 찬란한 저녁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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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12-10-08 ㅣ No.1574

             뜨겁고도 찬란한 저녁놀을 위하여






오늘은 10월 8일, 월요일이다. 오전에 이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다시 서울을 갈 예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서울에 가는 일은 이미 내 생활 고정판에 명확하게 새겨진 중요 행사다. 지난 7월 2일부터 시작된 일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월요일엔 서울을 가지만, 지난 주 월요일(1일)은 쉬었다. 추석 연휴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한 주를 거르고, 2주 만에 다시 서울을 가게 되니, 무척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지난 9월 17일에는 태풍 ‘산바’ 때문에 ‘대한문미사’를 지내지 못했지만, 나는 태풍 속에서도 서울을 갔고, 미사 대신 여러 신부님, 수녀님, 형제자매들과 함께 대한문 처마 밑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10월 1일 월요일은 바로 추석 다음날이어서 신부님들이 ‘대한문미사’를 하루 쉬기로 결정하여 나도 집에서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 대한문 처마 밑의 묵주기도 / 9월 17일에는 태풍 '산바' 때문에 미사를 지내지 못하고, 대한문 처마 밑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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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주 월요일 서울에 가는 일은 원래  2010년 11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다음해 11월까지 꼬박 일 년을 월요일마다 서울을 가곤 했다. 그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사를 지냈다. ‘4대강 댐 헐어내어 모든 강에 생명을 되찾고, 남북화해 되살려서 온 누리에 평화를 가져오고, 민주정부 수립하여 만민에게 인권이 회복되기를 지향’하는 생명‧평화미사이며 시국기도회였다.

그런 여의도 거리미사를 접고 7개월 동안 쉬었다가 올해 7월 2일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하여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4대강, 제주 구럼비, 그리고 오늘을 생각하는 월요미사’가 시작되니, 내 생활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됐다. 처음 ‘대한문미사’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내가 다시금 우리나라를 위해, 생명과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위해 고생 속에서도 뜨겁게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 대한문 처마 밑의 묵주기도 / 9월 17일에는 태풍 '산바' 때문에 미사를 지내지 못하고 대한문 처마 밑에서 묵주기도만 바쳤지만, 변함없이 뜨겁고도 절절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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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는 내 하루 일과의 순서와 시간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연세 89세이신 모친과 점심식사를 하고, 서둘러 설거지를 한다. 홍삼 엑기스와 드링크를 혼합한 다음 컵에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 넣는다. 매일 저녁식사 후 1시간쯤에 하는 일을 월요일에는 낮에 한다. 저녁에 그것을 노모께 드리는 일은, 월요일만큼은 아내 몫이다.

홍경천차도 한 잔 사기주전자에 담아 가스레인지에 데워(전자레인지는 유독성을 의심하여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노모께 드린다. 여느 날보다 1시간가량 일찍 드리는 셈이다. 저녁 9시쯤 노친이 잠드시기 전에 바이오 기공수와 마늘 환을 드리는 일도 월요일만큼은 아내가 대신 해준다. 아내도 저녁에 홍경천차 마시는 일을, 월요일만큼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 2시 20분쯤 집을 나선다. 차를 가지고 서산으로 간다. 서산터미널 근처, 서산 동문성당 총회장이 운영하는 음식점 마당에 차를 놓고 터미널로 걸어간다. 3분 정도의 거리다. 그리고 3시 발 강남고속터미널 행 일반버스에 오른다.

내가 우등버스를 기피하고 일반버스를 타는 것은 국가유공자(상이등급 6급)이기에 30% 요금 할인을 받기 때문이다. 우등버스를 타면 요금도 비싸지, 할인도 해주지 않지,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셈이다. 국가유공자는 우등버스를 탈 자격이 없다는 말일 것도 같다.

굳이 서산까지 내 차를 가지고 가서 버스를 타는 이유는, 덕수궁 ‘대한문미사’를 지내고 지하철을 타고 강남터미널로 가면 태안으로 가는 버스는 없기 때문이다. 태안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8시다. 8시 40분 발 서산 행 버스는 일반버스인데, 그 버스를 타면 요금을 이중으로 손해 보지도 않고, 11시 이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다.



▲ 대한문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들 / 7월 2일부터 시작된 매주 월요일 저녁의 대한문미사에는 대개 2,3백 명씩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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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할 때는 주변 주차 조건이 괜찮아서 여러 번 내 차를 가지고 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야간 운전고생은 점점 힘들어진다. 연료비 부담도 크다. 그래서 서산문화회관 광장에다 차를 놓고 15분 거리인 버스 터미널을 걸어가고, 또 오밤중에 혼자 쓸쓸히 걸어오곤 했다.

그런데 ‘대한문미사’ 참례 두 달째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서산에서 유명한 ‘00갈비’라는 음식점의 사장이 동문성당 총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께 부탁을 드려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그 음식점 마당에 월요일 오후마다 내 차를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ㅈ무리’ 때문에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한다는 생각을 조금은 덜하게 됐다. 매주 월요일 오후 차를 놓을 때마다 내 저서에 사인을 하여 한 권씩 선물하면서 동문성당 총회장 부부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가 적(籍)을 두고 있는 태안성당에 50‧60대 노장들로 구성된 ‘석두회’라는 친목단체가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다. 나는 그 모임에 일 년 내내 결석을 했고, 올해도 7월부터는 매번 결석이다. 계속적인 내 결석 이유를 회원들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나를 따라 나서는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석두’라는 단체 이름을 ‘황석두 루까’ 성인을 생각해서 내가 지었는데, 모두들 ‘錫斗’ 성인을 따르기 보다는 ‘石頭’를 추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주님의 기도’를 노래하는 사제들 / 매주 월요일 저녁의 '대한문미사'에는 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대개 30명 안팎의 사제들이 참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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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내 노친은 내가 매주 월요일 서울에 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을 하느냐고 성화를 부리시곤 했다. 내년이면 아흔이 되시는 노친은 2009년 폐암말기에다가 골수암으로 골반이 골절되는 등 고생이 많으셨는데도 정신은 말짱하시다. 아들 덕분에 병고를 이기고 살아났고 다시 걷게 되었다고 내게 감사하면서도, 내 가슴구조와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다.

그런 노친이 최근 출간된 내 목적시집 <불씨>를 3일 동안 다 읽고는 이제는 도리어 월요일마다 서울에 늦지 않도록 빨리 가라고 채근을 하신다. 얼마나 놀랍고도 신기한 일인지 모른다. 노친이 내 시집 한 권을 다 읽으신 것도 고맙고, 내가 매주 월요일 서울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는 것에 이해를 해주시는 것도 고맙다. 그거야말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서 요즘은 매주 월요일 서울 가는 일이 좀 더 수월해졌다.

나는 오늘 석양 무렵의 세월을 살고 있다. 어느덧 저녁놀이 내 어깨 위로 얼비치고 있다. 나는 평생 동안 태양빛을 손에 움켜쥐지는 못했지만, 뜨겁고도 찬란한 놀빛을 내 어깨 위에 담뿍 올려놓고 싶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뜨겁게 민주주의의 부활을 염원하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뜨겁고 찬란한 내 저녁놀을 소망하며 서울을 가고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달려간다.


12.10.08 11:03l최종 업데이트 12.10.08 11:03l지요하(sim-o)
태그 : 대한문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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