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노래 1] : 16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이 곳에.
길지? 역시나 웹진 [음악취향Y]에 실은 이번달 첫번째 글이다. 최초로 국내반을 적은 셈이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내반인 ['O'-正.反.合]이나 발라드의 황제 어쩌고 이런 신보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난 내가 알고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한다. 아무튼 원문[http://cafe.naver.com/musicy/210]을 존중하며 이미지와 문단의 편집이 조금 다름을 알려드린다.
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으로 우중충했던 06년 10월 9일, 한글날의 뉴스 특보로 하루는 채워졌다. 방에 들어서니 도착한 [겨레의 노래 1] '16년만의 재발매본'이 반갑기 그지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서글퍼졌다. 발매 당시엔 LP와 테이프로만 나왔다고 하니 CD본으로는 처음으로 생명력을 얻은 본 음반이다. 당시에는 없었던 몇몇 사진 자료가 부클릿에 추가되었고, 더불어 이 가사가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남이나 북이나 그 어디 살아도 다같이 정다운 형제들 아니련가 동이나 서이나 그 어디 살아도 다같이 그리운 자매들 아니련가 산도 높고 물도 맑은 아름다운 고려산천 내 나라 내 사랑아 산도 높고 물도 맑은 아름다운 고려산천 내 나라 내 사랑아
7번 곡 '고려산천 내 사랑'의 가사이다. 서태지가 꿈꾸던 '해동성국 발해'도, 통일조국의 새 이름을 걱정하는 순진한 우국지사의 고민마저 사치스럽게 만드는 우리의 하루는 그저 위기감이다. 주가 폭등.UN 발의.Nuclear launch detected. 이 무시무시한 21세기에 우리가 이렇듯 살고 있다.
객관적 사실
1990년 당시, 창간 2주년을 맞이한 [한겨레신문]이 80년대의 상업주의적 대중음악과 선을 긋고 '겨레'와 '통일'이라는 일관된 주제 안에 '겨레의 노래'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 일환으로 음악 감독 김민기의 지휘 아래 나온 것이 음반 [겨레의 노래] '1집'이었다.
발간물로는 [우리의 가락, 우리의 노래 겨레의 노래 제1권](한겨레출판사)이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발간되었고, 이와 연계된 앨범은 송창식, 서유석, 전인권, 장필순, 김학남, 최영섭 등의 당대의 음악인들은 물론 최진영, 노영심 같은 젊은 음악인들까지 껴안은 모습으로 LP와 테이프로 나왔었다. 이 '1차 사업'은 당년도 서울 공연(8월 18일~19일)을 필두로 30회의 순회 공연에 이은 총체공연물을 선보이는 의욕적인 기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듬해 그리고 이후로도 2차 사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전래동요, 독립군가, 해방공간에서의 연변가, 노동가요, 김민기의 노래극까지 껴안은 의욕적인 시도가 빛났던 [겨레의 노래 1] 발매 이후, 본작은 90년대 초반 학번들의 전설같은 앨범으로 남았지만 이제 그들의 흥얼거림 속에서도 어느새 잊혀진 상태가 되었다.(그 덕분에 1집에 선정된 곡에 대한 불만이 2집에서 보완되리라 믿었던 일부의 기대감도 어쩔수없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주관적 경험
너무 늦게 만났었다. 95년 선배형 방에 자주 놀러가던 후배가 이 음반으로 얻은 감동은 그 전에 형과 이야기했던 이승환의 [HUMAN]이나 전람회 데뷔반과는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씩씩한 행진곡 풍 속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저 철망 걷고 올라가자 이 통일의 땅에' 가자며 일으켜세우기도 하고, 맑고 강직한 톤의 김광석과는 달리 전인권이 초로한 퇴역군인의 목소리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이 기이한 감동은 분명 다른 음반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푸른 바탕에 박힌 '겨레의 노래 1'라는 노란 글자는 쉽게 잊혀질 수 없었다. 그렇게 잊혀지다가도 미련이 되어 남다 지난 여름엔 아예 이런 글(http://trex.egloos.com/2473115)을 적기도 했었다. 그런데 참 기적같은 기분이다. (언제나 그랬듯)뒤적거리던 인터넷 서핑의 한 순간에 이 앨범의 재발매 소식을 접하는 기분이란. 그렇게 이 음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시, 06년 10월 9일
리마스터링의 수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겨레의 노래 1]의 사운드는 요즘 앨범들처럼 귀에 밀착되는 감보단 저 멀쩌기서 공명하는 듯 떨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앨범 본연이 가진 '노래모음집'의 느슨하면서도 절실한 고리의 존재감, 개별 곡들이 가진 정직한 정서는 굳건하다. 지금이 2006년의 어느 가을날이라는 시공간적 차이 밖엔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딱한 음반의 운명이었지만 태생 덕에 "이것도 운동권 쪽 아니냐?"는 당토 않은 혐의를 입기도 했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입과 눈을 보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개울로 너울로 마침내 이루듯 이 한몸 겨레의 물줄기 되리라'라는 아이들의 합창을 다시 되돌려주며 "이런 것도 운동입니까?"리고 반문하는 수 밖엔. 또는, 흡사 김창완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기분을 주는 임준철의 3번곡 '꽃들'이 주는 명징한 호소력으로 답하는 수 밖에 없을 성 싶다.
앨범 대다수의 곡은 이렇듯 드센 사조나 의식을 드러내는 쪽보단 소박한 호소력에 기대는 편이다. 특히나 가수 본인이 "목적 의식이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는 최진영의 4번곡 '이 세상에'는 기존 가요 못잖은 발라드 감각을 돋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가수 본인의 솔로 음반이 발라드가 주조를 이루는 작품이었고, 몇몇 부분에서 가수의 신념과 목적 부분에서 본 음반 작업과 충돌했음을 토로하긴 했지만 앨범 내에서는 의외의 대중적인 지점을 획득함으로써 본작 자체의 의미를 남긴 셈이 되었다.
어떻게보면 일반 청자들이 제일 걱정(?)했을지도 모를 노찾사의 5번곡 '이태원 이야기'도 실은 듣기에도 재미난, 재치가 빛나는 곡이다. 목적성 보다는 어린 아이를 화자로 내세운 가사 덕에 오밀조밀하고 간명하게 진행하는 맛을 선사하다 나중에 '할 말은 하는' 여운을 남기는 능숙한 수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품.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의 '유명한 버전'이 주던 여운과 격려의 정서보다는 보다 처연한 애상과 상념이 주조를 이루는 기분을 선사한다.
다시 들으니 새로운 감동을 주는 곡은 8번 트랙 '내 고향'. 김소정 할머니가 부르는 독립군가의 회고적인 고즈늑한 톤과 후반부에 나오는 서유석씨의 목소리가 주는 호소력이 제대로 접합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이 곡을 감싸는 앞과 뒤의 곡들은 각각 소프라노와 테너의 목소리와 관현악단을 빌린 호방한 기운을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서도 넓은 대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인', '조선족', '조센', '고려사람'간의 아득한 거리감을 상기시키는 어떤 현실적 애절함도 내재해 있다.
그 애절함과 안타까움을 위무해주는 듯한 장필순의 - 때론 스산하지만 - 따스한 '자장가'가 이어지고, 노영심과 어린이들은 '고리'에서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사랑의 고리로 잇고 산다면 세계가 한마음이 될 수 있겠지 정다운 한식구가 될 수 있겠지
이 곡으로 인해 '광장'의 희열감을 '새로운 세대'로 이어주자는 이 시리즈의 비전을 조심스럽게 제시한 듯 하다.(물론 아시다시피 그 비전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연되고 있는 듯 하다.) 어느덧 마지막 곡까지 다다른 앨범의 마무리는 '영원한 음악청년' 김민기를 위한 장이다.
잠시 시간을 최근으로 돌려보자. 2004년 정재일의 프로듀싱으로 재탄생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 : Light of a Factory] 앨범 덕에 우리 세대 또는 우리보다 어린 세대들도 '이 세상 어딘가에'의 절박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소은, 이승렬 등의 목소리로 한층 거듭난 현대의 '이 세상 어딘가에'는 확실히 더 거대해졌고 감동의 휘날레로 적절한 장치였다.
본작의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2004년의 사운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호소력의 여분을 청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결국 이 노래(들)는 듣기 위한 노래만이 아니라 모두가 친숙하게 흥얼거리며 가슴 안에 담고 불러야 할 노래임을 다시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그 끊어질뻔한 생명력이 16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연장됨에 작은 축복을 하는 바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제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온다 너무나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글 출처 : 렉시즘 : ReX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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