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잡히면, 탄압이라 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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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30 ㅣ No.6689

 

'꼬투리 잡히면, 탄압이라 하면 되고'


- 잘못 하고도 우기고 남 공격

- 독선·부정의 논리 판치는 세태


 

   '국민가요'가 사라진 지 오래. 요즘 이것을 대체한 것은 이동통신서비스의 CM송, 이른바 '되고송'이다. '꽃미남 후배 점점 늘어나면 연기로 승부하면 되고',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견디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 같은 노랫말들이다. 노래처럼 인생이 쉽다면 좌절하는 연예인은 왜 나오고, 직장을 관두는 직장인은 왜 나올까마는, 어쨌든 광고주는 이 광고가 "긍정의 가치를 전파 한다"고 말한다. 노랫말이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걸 굳이 따질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 '긍정의 가치'는 CF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는 '싫으면 죽여 버리면 되고', '틀렸으면 우기면 되고' 같은 '독선의 가치' '부정의 가치'다.


   논점이 다른 신문을 반대하는 논리는 '보기 싫으면 폐간시키면 되고', 인터넷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보이는 사람을 대하는 논리는 '맘에 안 들면 알바로 신고하면 되고', 시위현장에서 발견한 기자를 폭행하는 논리는 '눈에 띄면 밟아버리면 되고' 식이다. 사실 이런 단세포적 반응에 '논리'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도 단어낭비다. '떼'로 덤비는 힘의 논리에 휘둘리는 나라는 '꼴'도 아니고, '꼬라지'라는 단어를 붙여야 합당하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일은 소위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코너에 몰리면, 정치탄압이라 우기면 되고' 전법이다.


   '촛불집회'(촛불로 시작해 몽둥이로 끝나는 시위를 언제까지 이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를 구성하는 주요 인자 중 하나였던 MBC 'PD수첩'에 대한 방송위 징계와 '아프리카 TV 대표'의 구속에 대한 반응이 바로 이런 경우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死因)을 두고 'PD수첩'이 일부 오역과 과장을 했다는 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우기는 일이야 그렇다 치고,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MBC보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럴 경우 전선(戰線)에서 밀리게 된다. 따라서 이를 문제 삼는 건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거나, 아예 '독재정권의 정치적 테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이 4월 29일의 시점에서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황을 내보냈다고 치자. 그런데 그에 반하는 증거가 나왔다면 그에 대해 '진실성'을 구성하는 요소를 공개적으로 비교, 분석하면 된다. 그걸 안 하면서, 못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발언일 뿐이다.


   더 슬픈 경우는 28일 보석으로 석방된 '나우콤 문용식 대표'를 둘러싼 '정치 탄압' 주장이다. 지난달 웹하드업체 대표 몇몇이 저작권법 침해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이 중에 나우콤이 있었다. 문제는 이 나우콤 서비스 중에 촛불집회를 생중계한 '아프리카TV'가 있었다는 것. 검찰은 "아프리카 TV 대표가 아니라 파일 불법 다운로드를 방조한 PD박스의 대표를 구속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매체와 네티즌은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을 쏟아냈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인터넷 광고까지 나타났다. 문씨는 80년대 김근태씨 와 더불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386 운동권으로, 이후 인터넷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PD박스가 불법을 조장한 게 아니라 물류 창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PD박스'가 한때 '인기 다운로드 사이트'였다는 사실을 유저들은 안다. 그의 표현대로 '창고'만 빌려줬다 해도 한 나라의 영화 산업이 거의 '거덜'나는 데 일조했다면,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두고 옆에서는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본인도 부인하지 않는 것은 너무 얼굴 두꺼운 일이다. 지금 현실의 '되고송'은 배운 자들의 '기만의 되고송'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정말 구질구질한 변주다.


▣ 박은주·엔터테인먼트부 부장 zee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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