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문제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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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점순 [graces] 쪽지 캡슐

2000-06-15 ㅣ No.839

 나주 문제를 생각해 본다

 

(다음은 1998년 2월호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교도권과 양심의 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집에 모셔진 성모상에서 눈물과 향유가 흘러나온다면 우리는 그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우리가 영하는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고 나직한 성모님의 말씀이 들려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을 비밀에 부치고 세상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외부에 알려야 할까?

 

  해결되어야 할 의문들

 

  또 이런 현상을 알게 된 교회는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를 알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까? 아니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혀 보려고 깊은 관심과 성의 있는 조사를 하여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존경과 사랑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할까?

신자는 의문이 있어도 교도권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따라야 할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부에 숨겨진 양심의 소리를 표출해야 할까?

  우리는 나주 성모메시지와 관련된 보도를 접하면서 이런 의문들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광주 윤 공희 대주교는 1998년 1월 1일 발표한 공지에서 교도권을 발동, 나주 성모 메시지는 사적계시가 아니며 여러 현상들은 신앙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표징들이며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 있다는 이유로 나주 성모상에 관한 비디오, 책자 등의 제작 배포와 집회의 금지를 촉구했다.

  ’나주 성모 메시지’를 전해왔던 윤 율리아는 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나주 성모상과 관련하여 많은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은 ’나주의 여러 현상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 있다’는 설명이 분명치 않은 윤 대주교의 공지를 쉽게 이해할 수없어 혼란에 빠져 있다.

 

  갈등하는 신자들

 

  가톨릭 다이제스트는 내심에 잠겨 있는 의문의 소리와 교도권을 따라야 하는 신자의 자격 사이에서 갈등하는 글을 접하고서 기사화 여부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교회가 어떤 이유와 근거로 나주의 일들을 부정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윤 대주교의 공지의 핵심사항을 게재하기로 한다.

또 대주교의 공지 곳곳에 신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시키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과 양심의 소리에 거역하면서 교회의 명에 따르는 신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교회의 일치에 역행된다는 생각, 또한 혼란에 빠진 신자들이 대주교의 결정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교회가 아는 것이야말로 성교회의 일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 또 교회는 신자들이 어떠한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알아내어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합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외국에서 보내온 어느 신자의 글을 간추려 싣기로 한다.

 

  뒷받침되어야 할 설명들

 

  이번 공지에서 신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성모상에서 흘러 내렸다는 눈물과 피눈물, 향유에 대한 진위와 그런 현상들의 의미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나주 조사위원회는 그런 현상이 있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첫째 임무였고 그런 현상이 있었을 경우 그 의미를 밝혀 주고 그런 현상이 없었을 경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조작했는지를 밝혔어야 했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밝힌 후 ’나주 메시지’는 이런 이유로 하느님의 일과 관련 없다고 공지했어야 했다.

  더구나 공지의 지적대로 초능력에 의한 현상이 있었다면 그 현상은 무엇이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밝혔어야 했다. 윤 대주교는 이런 의문점들을 전혀 밝혀주지 않은 채 막연히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 있으므로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주의 여러 현상들을 목격했던 수많은 신부, 수녀, 신자들은 이번 공지를 대하고 교회의 결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당혹해 하고 있다.

  더구나 윤 대주교는 메시지가 모방, 표절되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지 않고 있다. 또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직접 주신 권리로서 그 누구도 이를 침해해서는 안됨에도 이번 공지는 교회 내라는 장소적 금지의 한계를 넘어 교회 밖은 물론 사적인 장소에서까지 이를 금함으로써 이런 천부의 권리를 교도권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을 남긴다.

 

  아름다운 결실로 승화할 수 있기를

 

  공지에서는 나주 성모 메시지가 윤 율리아의 개인적 체험이나 묵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면서도 모방과 표절, 조작과 허위로 단정하는 모순을 스스로 범하고 있다. 교회가 증거 없는 추정만으로 자녀와 남편이 있는 한 촌부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아픈 일이다.

  또한 윤 율리아가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여러 기이한 현상들이 계속되고 있다면 교회는 그녀를 비난하기보다는 마땅히 그녀도 수긍할 수 있도록 여러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해석해 주고 그녀의 영적 혼란도 치유해 주는 성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세속의 사법기관도 피의자 인권 침해를 우려하여 엄격한 수사를 거쳐 증거를 확보한 후에도 범행을 발표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이번 공지로 평범한 가정 주부인 윤 율리아와 공지에 지적한 그녀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성직자들의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어디서 되찾아져야 하는지 답답하다.

  교도권이라는 이름으로 사제가 한 신자의 인권을 무시해 버리지 않았는지 심히 걱정된다. 그럼에도 이 공지를 본 어느 누구도 그런 문제에 관해 아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아무거나 담아도 넘치지 않는 큰그릇이 되어야 할 가톨릭 교회가 한 촌부의 성모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단호하게 교도권을 발동하고 신자들의 입과 귀를 막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주 메시지’에 대한 조그마한 논의까지도 담아낼 수 없다면 가톨릭 교회는 닫혀 버린 곳이 아닐까? 이 혼란을 아름다운 결실로 승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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