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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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경 [uncleamen] 쪽지 캡슐

2000-08-25 ㅣ No.1022

 1017번의 최혜경님의 그동안의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먼저 순수한,아니 순진한 자매님의 마음에 사랑의 우리 주님께서 평화의 은총을 누르고 흔들어 차고 넘치게 내려 주시어 길이 머물기를 빌고 바랍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주님께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반세기만에 남북의 이산가족이 만났습니다.

 " 주님, 어떻게 50년만에야 만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럴수도 있지, 만나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아주 많이 있단다".

 

 우리는 미사성제때는 말할것도 없고 자주, 많이 주의 기도를 합니다.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라고 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용서하니 저희 죄,곧 내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였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이었던지를 불문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한방울과 피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흘리고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의 뜻이지 않습니까?  용서와 회개없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선한 우리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는 그 빛을 잃어버린 공허한 나무조각에 불과합니다.

 모고해와 모영성체가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 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에 평화를 소유한다고 할까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신비주의나 기복신앙이 아닌 부활에 대한 확신과 함께 평화를 소망하는 것이지요.    미사성제때 집전사제가 "내 평화를 두고가며 너희에게 내 평화를 주노라"고 선포하는 것은 주님의 공동체가, 즉 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평화롭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제의 실수(?)로 말미암아 현재 평화가 조각이 난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ㅇ ㅇ 가 싫어서","ㅇ ㅇ 미워서 지옥가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신부님과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의견이 신부님으로부터 받아 들여졌는데 그 일이 잘못되면 그 탓이 우리에게 돌아오지만 신부님의 뜻을 따랐을 때는 잘 되든, 잘못 되든 그 모든 것은 주님의 전적인 소관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많은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한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 먹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며 그 어떤 것으로든지 상처를 받지 않는 비결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도 철학이 필요합니다. 원칙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 신앙안에서 상처받지 않는 달란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가장 믿었던, 또는 존경했던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제도 우리와 같은 나약한 존재라는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는 좋은 것입니다. 차라리 주임신부님의 그 권위를 인정한다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지만 냉정과 너그러움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신부님을 지향하고 주의 기도를 아주 많이 봉헌해 보셔요. 주님의 성령께서 평화를 가져 다 주실 것을 믿습니다.

 바오로서간을 봉독하시면서 고요히 묵상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뿐이며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의 영역이며 주관사항 이랍니다.

 사제에 관한 일은 천주교 신자인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지 토론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 본당의 신부님이 이러저러한데 기도를 많이 해 달라"고 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립 3,20). 아멘.

                                                 아멘아저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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