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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향하여 ♬ ~ 48/49처 황무실 성지 / 배나드리 성지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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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3-06-02 ㅣ No.102669


시간을 보니 6시가 안되었다. "할배요, 여기까지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다음에 한번더 

어스럼 적막동산 그땅에도......(2021.09.15  첫 번째)


시간을 보니 6시가 안되었다. 

"할배요, 여기까지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다음에 한번더 당진을

와야 될것같은데 한군데 정도는 더 가도 될것 같지요?" 하자마자

또 달린다. 황무실 성지가 있는 10분거리의 같은 합덕읍 석우리 길을....


산둘레 조그만 땅을 단장하여 소박하게 만들은 황무실 성지땅엔

무명순교자 현양비가 새겨진 길다란 돌간판이 세워져있고,

그곁에 우리 예수님 우리를 기다리며 서 계신다.

"여기 까지 왔구나! " 하시면서....


짧은 거리와 공간에 갖추어진 십사처를 어둠이 살짝 내려앉는 시간에도

바치고선 아무도 없는 황량한 주차장을 빠져나와 욕심을 부려본다.


       

"할배요 , 어차피 왔는데 기냥 가는데 까지 가보입시더.."

궁합이 맞는 할배는 또 달려간다.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원머리 성지를 향하여~~ 



두 번째 순례길.....2023.05.06

 

충청도 내포 지방은 조선 천주교 초창기부터 마무리 박해 때까지 신앙의 요람지로서 많은 신자와 순교자들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 지하 공동체가 있었던 곳이다. 면천의 황무실 교우촌도 역시 오래된 교우촌으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곳이다. 주문모 신부를 자기 집에 모신 적이 있는 순교자 이보현은 이곳 황무실 

출신이다.


지금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황무실 교우촌의 순교자는 박해 시에 순교한 송 안토니오를 비롯한 9명 외에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무명 순교자로서 내포 지방 산야에 잠들고 있다.

다만 그곳을 사목 중심지로 해서 활동했던 성직자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만 남아 있다.


알려진 황무실 출신 순교자로는 병인년 공주에서 교수형을 당한 송 안토니오를 비롯하여,

병인년 해미에서 순교한 신 베드로, 신 아우구스티노, 정묘년 해미에서 순교한 표 안드레아,

무진년 5월 30일 해미에서 생매장 당한 방 마리아와 역시 해미에서 순교한 그의 시어머니 박 바르바라,

같은 해 공주에서 순교한 조군서 등이 있다.


첫번째 순례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순례길 역시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는 5시 8분에 도착했다.

이곳 또한 어마무시하게 불어대는 바람의 위력앞에 준비해간 판쵸의 덕을 톡톡이 보았다.

비만 가려주는 줄 여겼던 도톰한 판쵸는 이번 순례길에 단연코 일등공신?의 고마운 의복이다.

거추장 스럽다고 절대로 안입겠다고 인상써대던 할배도

"야~ 그것 참 따듯하네... 진작 입을걸...."


순교자 현양비앞에 잠깐 머리숙여 조배하고, 빠뜨릴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또 걸어간다.




조금씩 다듬어져 가고있는 언덕의 작은 성지엔 오늘도 기우는 어스럼속에

외로운 십자가의 길위...

그날의 사람들만 함께 걸으며 원통절통 쳐대는 아픈 가슴의

멍울들위로 ...

날려버리라고 울부짖는 폭풍의 작은 언덕만이 쓸쓸하다.































 

그렇구말구~내목숨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2021.10.14 첫 번째)


 

 

하기사 고양시 우리동네엔 종일을 비가 쏟아져 내린다더 만서도..

할배의 예측대로 오늘 충청도 땅에선 여태껏 비를 만나지 못했는데...

남아있는 예산의 인언민 배나드리성지와 예산성당의 아름다움을

순례하고 가야 되는데....

 

이왕지사 왔으니 감곡매괴성지 때처럼 비옷입고 우산쓰고라도

다녀가야지... 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나니 눈이빤짝... 기운이 살아남을 다행스러하며

성지마당 공용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데 세상에~ 빗줄기가 약해지고있다니...

"반석 아부지~ 참말로 와이카노~ 우리아부지 못말리겠네요.

이라믄 우찌 갚으라꼬..."


홍성과 예산을 넘나들며 이번에 달려가는 길은 배나드리 인언민 순교성인이

잠들어 계시는 질퍽질퍽 차가 빠지는 누런 평야길이다.


이런 좁다랗고, 푹푹 빠지는 길로 우찌 가라고 네비는 한참을 돌고 돌게 만드누나~!

야~가 아까처럼 갑자기 정신나갔나 싶어 휴대폰 네이버길로 안내받아 따라가는 길도

역시나 엉망진창의 늪지대 비슷한 꼬불탕 길이다.


굿뉴스에 등재되어 있는 배나드리길을 찍고 갔더니 주소도 없고 길도없는 허허벌판을

또 헤매게 하더니 인언민~에 기재되어있는 주소를 찍고 갔더니 이리도 온들판 쌀밭들을

돌고 돌게 하더라.... 아이고,,,, 힘들어..!!


 

인언민 마르티노순교자가 잠들어 있는 성지는 십자가모양으로 쭉~ 띠를 두르고

심어져 누워있는 나무들의 특이한 형상과 그 가운데 우리 인언민 할아버지 또 당당하게

그날의 믿음을 증거하며 우리를 반긴다.

처음엔...이름이.. 외국인 평신도 순교자인가? 갸우뚱했는데... 순수혈통의 이땅의 분이시다.


     


"할배요~~ 여그를 찾아온다고 식겁했네요.." 어리광스런 푸념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지금은 간신히 멈춰주고 있는 빗줄기를 피해 또 달려가야할 예산 성당을 향하여

부지런히 뒤돌아 나오다.... "엉? 스템프는 오데있지?"



이제 구름이 잔뜩끼어 흐려있는 하늘사이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으려나?

5시가 넘어 도착한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 예산성당 역시도 오래전 성처럼 근사하다.


합덕성당, 공세리 성당과 같은 색상과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 같아 또한 친근감과 함께

정겨운데 주일의 오후 성당문은 또 굳게 잠겨 하느님 일찌감치 잠자리에라도 드셨나 보다.



두 번째 순례길.....2023.05.06

 

 

 

배나드리는 예산군 삽교읍 동남쪽 삽교천 가에 위치한 마을로 도리라고도 불렸다.

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에 밀물 때면 사방에 물이 차 섬이 되어 배를 타고 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61년 봄 경상도에서 발생한 박해의 영향이 배나드리에도 미쳤다.

내포 지방 출신 신자들이 경상도에 피신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1817년 10월 배나드리에서 20-30명 가량의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중 민 첨지 베드로와 그의 형수 안나,

송 첨지 요셉, 손연욱 요셉, 민숙간 등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손연욱의 부친 손여심은 오랫동안 해미 옥에 갇혀 있다가 10년 뒤인 1827년에 순교하였다.


배나드리 인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순교자는 인언민 마르티노 복자이다.




그는 1737년 충청도 덕산 주래(삽교읍 용동리)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 천주교 신앙을 배우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여 살다가 1739년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청주를 거쳐 해미로 이송되어 1800년 1월 9일 63세로 순교하였다.

그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황무실 다음으로 찾아온 배나드리에 도착한 5시 37분의 시간에도 어! 추워를 연발한 정도로

바람은 쉬지않고 몰아쳐 댄다. 좀 전까지도 그쳤던 비까지 또 합세해서 최악의 순례길에

방훼꾼으로 우리를 난감케 하도다.....ㅠㅜ



새로이 찾아온 시골동네 작은 마을한 귀퉁이에 아담한 주차장과 함께 화장실까지

근사하게 꾸며져 있는모습이 고맙고 정겹기까지 하다.




울타리안 저만치 인언민 마르티노 할배는 여즉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십자가 높이 들고

"그렇구 ~ 말구 ~♬~ 노래부르며 천국길 서두른다.




"에구~ 못말리는 할배요... 아무리 천국길 서두르더라도 비가 이리도 오는데

쪼매 쉬었다가라도 가지요...!!



 



                     + 주님! 오늘도 본향을 향하여 가는 길,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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