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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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20 ㅣ No.6466

괴담

 

[100여 년 전부터 민간에 ‘목자(木子)가 망하고 전읍(奠邑)이 일어난다’는 참언(讖言)이 있었다. 여립이 요승 의연(義衍)과 모의, 이를 옥판에 새긴 후 지리산 석굴에 간직했다. 의연이 다른 승려들과 함께 산을 유람하다가 지리산에 이르러 “보기(寶氣)가 있다”며 같이 가서 옥판을 찾아내 여립에게 주었다.
 
여립은 패거리에게 은밀히 보여주고 누설하지 말라고 했다. 의연은 운봉 사람인데 요동에서 왔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만나면 넌지시 “요동에 있을 때 조선을 바라보니 왕기가 있었는데, 조선에 와서 살펴보니 전주 동문 밖에 있었다”고 넌지시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선조 22년(1589년) 정여립(鄭汝立) 모반 사건의 준비 과정이다. ‘이(李)씨 왕조가 몰락하고, 정(鄭)씨 왕조가 일어난다’는 참언과 ‘전주왕기설(全州王氣說)’이 어떻게 퍼져 나갔을지 눈에 선하다. 당시 ‘뽕나무에 말갈기 나면, 집 주인이 왕이 되리라’는 동요가 있었고, 정여립이 의연과 몰래 집 동산의 뽕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갈기를 메워 넣었다가 날짜가 흘러 껍질이 아물자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는 발설하지 말도록 하고 곧 없애버렸다는 데 이르면 교묘한 대중조작 기법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인간적 신뢰가 탄탄한 주위의 친한 사람들에게만 알리는 방법이 아니었거나 발설하지 못하도록 당부하지 않았다면 정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싹트지도, 강력한 힘을 띠고 퍼져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언비어가 이처럼 번질 수 있었던 데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조정에 대한 불신이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지만, 유언비어가 정치적 의미를 띠고, 그 전파로 이득을 누릴 세력이 있다면 ‘의도적 생산’ 또한 의심해 마땅하다. 쇠고기 파동 이후 인터넷을 통해 마구 퍼지고 있는 각종 ‘괴담’에 대한 수사당국의 의심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독도 괴담’은 특히 악의적이다. 5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포기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돌다가 잠잠해졌다. 그것이 일본 언론의 엉뚱한 보도를 빌미로 다시 힘을 얻었다.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게임사이트의 대화방까지 ‘친일파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넘겼다’는 마구잡이 주장으로 도배되고 있다. 일본 언론의 보도는 잠시만 생각해도 사실 여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는데도, 정부와 일본측의 설명이 나온 뒤에도 괴담이 끊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이미 ‘괴담’이 아니라 오로지 비방하기 위한 참언(讒言)일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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