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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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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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6-21 ㅣ No.6620

 

 

지난 여름엔 고향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와 모처럼 단 둘이 보냈습니다. 집안을 정리하다가 창고에서 오그라진 양은 밥그릇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밥그릇입니다.

 

남편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남겨진 3남매를 불편한 몸을 이끌고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마 구걸은 할 수 없어 옷 보따리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옷을 팔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는 돈 대신 받은, 옷 보따리보다 더 큰 곡식 보따리를 이고 왔습니다. 그러나 곡식의 대부분은 다시 시장으로 이고 나가 팔아야 했습니다.

 

남은 곡식으로 3남매가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여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는 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밥을 반 그릇씩 남겼습니다.

"나는 아랫동네에서 묵고 왔응께, 너그덜 째까씩 더 나눠 묵어라잉~" 하면서 밥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남은 밥을 그냥 부엌으로 가지고 가셨습니다. 늘 배가 고팠으므로 우리 3남매는 그 밥을 노리기도 하였지만, 어머니가 부엌에서 남은 밥을 드시려니 생각하고 입맛만 다셨습니다.

 

그날도 어머니는 밥을 반 그릇 남겨 부엌으로 가지고 가셨는데, 저는 우연히 어머니의 밥그릇 속을 살짝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밥그릇 밑바닥에는 커다란 배추 뿌리가 깔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밥그릇 바닥에 배추꽁지를 넣고 그 위에 밥을 살짝 덮고는, 자식들에게 그걸 감추기 위해 밥을 반만 드셨던 것입니다.

 

벌써 25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 그 밥그릇은 없어졌지만(창고에서 나온 것은 그 후에 쓰던 밥그릇 입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그때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 생각하니, 지금은 늙어버린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휴가 기간 내내 가까운 광주에 나가 하루에 한 가지씩 먹을 것을 사 날랐습니다.

피자, 치킨, 팥빙수 같은 패스트푸드와 찹쌀떡, 떡볶이도 사와서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며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따아~ 머시 요로코롬 시콤하고 맛나다냐."  

 

 

- 샘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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