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남의 글을 비하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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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선 [lbs] 쪽지 캡슐

2000-07-31 ㅣ No.962

 

†찬미 예수님

 

토론실에서 토론을 하기로 서니 뭐가 잘못된 걸까요.

토론을 지적 싸움쯤으로 여기거나, 토론하는 사람을 자신의 앎을 자랑하는 사람들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길"을 걷는 길일진대, 우리는 모두 그 길을 함께 걷는 도반이지요.

그 길을 걷는데 있어서 늦게 시작한 이도 있을테고 일찍 나선이도 있을것입니다.

묵묵히 벗과 걷는이도, 이런 저런 얘기 하며 걷는이도...다양할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한도내에서 남을 바라본다면 그처럼 갑갑한 일도 없을거구요.

 

모처럼 이 토론실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보면서 내가 모르던것도 알 수 있었고,

깊은 영성으로의 끊임없는 정진을 보며 부럽기까지 하답니다.

어떤 부분은 이론으로 흐르는 감을 지울 수 없었구요.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재라고 하죠)

그러나 그 모든것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길을 가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 모든것이 `선’으로 이끌어질 것이기에 굳이 자신의 잣대와 맞지 않는다고 거부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흘러가는 말 한마디의 영감으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서 나올수도 있겠기 때문 입니다.

 

성모님 호칭에 대해...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5단에 보면 성모님을 `성령의 짝’으로 호칭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루가복음 1장 35절을 보면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것이다" 라는 말씀을 볼 수있는데, 전에 수녀님과 함께 성서 공부할 때  이 부분을 "성모님"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주님"과의 관계로 설명해 주신것이 생각 납니다.

 

예수님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던 고향사람들 앞에선 기적을 베풀수 없었던것을 보면

안다는 것과 믿고 의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믿지 않는 자 앞에서는 어떠한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던 까닭이라고 합니다.

나의 생활속에서 얼마나 그 분을 신뢰하고 부르고 의탁하는가에 따라 그 분은 나에게 그 "어떤 존재"로 살아계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론 성모님을 참 사랑합니다.

삶에 있어서 중대한 고비마다 그 분이  함께 해주셨음을 알기에 ...

어떤 분의 글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나, 성모님은 우리의 부족하고 보잘것 없는 기도와 희생, 극기등을 그 분의 금쟁반에 올려 주님께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성모님의 역할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더 확실한 것은 성모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모님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마리아교가 되겠지요.) 주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인인 제겐 위안과 희망이 됩니다.

 

성교회에서 선포한 성모님의 호칭은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마구 붙인게 아니고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한 평생을 살아가며, 그 분을 체험하고 만나면서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게 되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좋은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듯,

성모님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 아무것도 아닐 것 입니다. 성조들도 성교회도 마찬가지구요.

 

항상 그 분의 은총안에 살 수 있도록 자신을 조심스레이 되돌아 보는 일, 그것이 우리 신앙인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주님안에 기쁜 나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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