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평화대행진] 김갑득·이영자 씨 부부, “우리가 무사() 빨갱이꽈(빨갱이에요?)”

 

   
▲ 강정마을 초입, 어느 집 울타리에 핀 무궁화 꽃은 왜 그토록 푸른지. ‘일편단심’이라는 무궁화 꽃말은 ‘일강정’을 아끼는 강정사람들의 마음을 빼어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6년 모진세월에 해군기지 반대 노란색 깃발이 해질 대로 해졌지만 여전히 그 푯대가 꼿꼿하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지독히도 더운 여름날이다. 태양은 모든 걸 녹여버릴 듯 열을 뿜어낸다. 땅 위에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꾸역꾸역 그늘을 찾아 본능처럼 제 몸을 숨길 제, 불붙는 태양과 맞선 푯대 위의 노란 깃발들은 여전히 쉴 새 없이 마을 지붕들 위로 펄럭이고 있었다.

6년 세월의 풍파에 해질 대로 해진 채였지만 여전히 ‘소리 없는 아우성’을 바람을 빌려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있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민주주의의 외침’이고 누군가에게는 ‘국책사업에 대한 역모’다. 

어제(27일), 일강정(一江汀) 강정마을을 찾았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구름도 새하얗다. 그런 하늘과 구름을 향해 희망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해 보라색 꽃을 틔운 무궁화 꽃이 마을초입에서 노란깃발들과 벗을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를 흑백과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이들에겐 시나브로 ‘종북좌파’ 마을로 낙인 찍혀버린 강정마을에도, 그렇게 무궁화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 남편 김갑득(74) 어르신은 마을 이장을 지낸 원로다. 부인 이영자(64)씨는 충북 영동이 고향으로 46년전 시집와서 강정마을에 정착한 '외지인 1호'가 됐다. 부부는 나란히 평생을 백년해로하자고 약속했고, 말년에 다시 고향마을을 부당하게 결정된 해군기지로부터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  연애할 때 집사람이 대단한 미녀였다는 김갑득 어르신의 자랑에 웃음보가 터졌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우리가 왜 빨갱이야?, 우린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야!"  김갑득.이영자 씨 부부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마을이장 출신 남편과 46년전 시집와 강정 정착한 ‘외지인 1호’ 부인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농사지으며 평생을 살아 온 김갑득(73) 어르신과,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천리타향 제주까지 시집와 5대 독자인 남편 김갑득 씨의 아내로, 다섯 아들의 어머니로, 벌써 46년을 강정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영자(64) 씨, 그 내외를 만났다. 특별한 분들이라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잘못된 국가결정으로부터 강정을 지켜내려는 수많은 강정사람들 중에 그들 부부도 서있기 때문이다. 남편 김갑득 씨는 한때 마을이장을 지낸 강정 마을의 원로이고, 부인 이영자 씨는 ‘일강정 민속보존회’ 회장을 맡아 지금도 마을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인다.

6년째 해군기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평화를 바라는 1만명 '강정평화대행진' 준비가 한창인 27일, 마을에서 만난 김갑득 어르신 내외는 “지난 6년간 잘못된 해군기지 유치와 싸우면서 10년은 훨씬 더 늙고 병들어 버린 것 같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강정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곪고, 쉬이 아물지 않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 저저 범국민대책위 오는 30일, 마을에서 열리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8월4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의 ‘전국 집중행동의 날’까지 총 1만명이 참여하는 '강정평화대행진'을 마련했다. 평화를 염원하는 1만명이 모여 제주역사·문화·생태 기행을 하며 제주가 진정한 ‘생명평화의 섬’으로 거듭나야함을 알리고 제주해군기지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염원하는 자리다.

김갑득·이영자 씨 부부는 ‘왜, 이토록 힘든 싸움을 6년이나 하고 있나’는 물음에 “정부와 김태환 전임 제주도정이 주민들 동의도 제대로 묻지 않고, 오직 기만과 속임수로 해군기지를 밀어붙였는데, 마을사람들이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를 하루아침에 잃게 생겼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 기자양반 같으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며, “민군복합항을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도, 윈윈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우근민 제주도정도 강정주민들을 기만하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냐”고 반문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5대 독자인 김갑득 씨는 이영자 씨를 20대에 만나 아들 오형제를 낳았다. 뭐 그런 것을 묻느냐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아마도 김갑득 어르신이 대전·광주 등에서 보낸 육군 군대시절에 부인 이영자 씨를 만나 연애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고향 강정마을로 돌아와 농사지으며, 부자는 아니지만 5대 독자라는 숙명을 단박에 풀어내며 오형제를 낳아 어엿이 공부시켰고 장성시켰다.

침탈의 역사를 반복적으로 겪어온 섬사람들이라면 다 그렇듯, 처음엔 강정마을에서도 ‘육지 것’인 이영자 씨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 설고 물 선 타향에 시집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할 때 이웃들은 그를 쉽게 강정사람으로 받아주질 않은 것이다. ‘단 일 년도 못살고 떠날 것’이라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더 억척스럽게 강정사람이 되려고 다가섰다. 그렇게 이영자 씨는 46년째 강정마을에 정착한 ‘육지사람 1호’가 됐다. 

   
▲ 벌써 6년째다. 강정마을의 나즈막한 지붕들 위로 노란 깃발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여름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7월 하순, 강정마을은 집집마다 세운 푯대 위의 노란 깃발들이 구럼비 바위를 해군기지로부터 지켜달라 절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칠십 평생 경찰서 구경도 못한 사람이 아들하고 나란히 법정에…”

지켜보던 김갑득 어르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난 6년 동안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다가 이 촌 동네에서 500여명이 경찰에 연행돼 범법자가 됐수다. 기가 막히다 해야 할까, 뭐라 해야 할까, 저하고 집사람하고 큰아들도 모두 범법자가 된겁주. 특히 큰아들하고는 부자가 나란히 법정에 서봤는데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됩디다. 칠십 평생 살면서 저나, 집사람이나, 큰아들이나 평생 경찰서에 한번 구경 못해보고 산 사람들인데 처음으로 경찰서 유치장에도 붙잡혀가 하룻밤을 보내봤고, 검찰청에도 불려가고, 법원 재판장 앞에도 서보고…. 우리가 무슨 죄를 경 하영(그렇게 많이) 진 사람들이꽈?”

마을주민 집회 과정에서 해군기지사업장안에 항의 표시로 무단 침입한 게 화근이었다. 김갑득 어르신은 이어, “그런데 이상한 건, 저 스스로 죄의식이라는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수다. 도리어 내 자신이 떳떳하고, 경찰서에 잡혀와 있는 게 부끄러움이 전혀 없습디다. 제가 나쁜 짓을 하다가 큰 죄를 지어 왔다면 얼굴을 들지 못했겠지만, 도리어 저는 마을을 위하고 잘못된 국가공권력에 항의하다 붙잡혀 왔기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십주. 육체는 붙잡혀 있을지언정, 제 마음까진 절대 붙잡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습디다”

김갑득 어르신은 또, “그래도 전 아들 다섯이 모두 해군기지 반대하는데 뜻을 같이 해주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꽈. 강정마을에는 죽마고우끼리, 아니면 부모자식 간에, 집안 친족 간에 해군기지 찬성 반대를 놓고 서로 원수가 되어 버린 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마씨. 이 무슨 불행이꽈.”

부인 이영자 씨가 남편 말을 이었다. “이 모든 게 다 해군기지 때문이고, 무책임한 국가 때문이우다. 해군도 경찰도 다 마찬가지우다. 마을에 해군기지 문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이고 우리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이라고 생각했수다. 그런데 강정에서 만난 경찰들은 다릅디다. 경찰이 주민들을 짓밟고, 우리에겐 법을 지키라 하면서도 그들은 오히려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았수다. 이게 무슨 일이우꽈. 세상은 정말 바뀌어야 됩니다”

가녀리고 왜소한 60대 초로의 그녀가, 언제부턴가 ‘해군기지’ 네 글자만 나오면 ‘악’부터 나오는 투사가 됐다. 그것이 미용실이든, 버스 안이든, 시장 통이든. “사람들이 가끔 그럽디다. 강정사람들은 보상금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데모하는 거라고. 억장이 무너질 소리우다. 그런 소리 들으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강정사람들이 왜 (해군기지를)반대하는지,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속임수 없이 주민들의 의사를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물어봐달라는 거지, 돈 몇푼 더 달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꼭 알도록 헙주”

이념 문제가 나오자 김갑득 어르신은 우리가 왜 빨갱이이고 종북좌파냐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어느 언론에선 우리보고 종북좌파다 하고, 해군 중엔 우리보고 빨갱이냐고 묻는 몰상식한 사람도 있습디다. 강정사람들도 모두 국방의무를 다 했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우다. 국가가 국책사업을 하면서 당연히 주민동의를 제대로 구했으면 이런 하자가 없었을 텐데, 속된 말로 농사짓는 사람들이라고 잡초 제거하듯 밀어붙이면 끝끝내 투쟁할 수 밖에 없수다.”라고 말했다.

김갑득 어르신은 또, “여기 와 있는 활동가들에게도 종북좌파라는 사람들이 있습디다. 거기엔 신부님들도 있고 스님도 있수다. 박사도 있고 교수도 학생도 직장인도 다 있습니다. 그들은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종북좌파라니 당치도 않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회장 김정민(75, 왼쪽) 어르신도 “촛불도 많이 모이면 그 어떤 권력보다도 더 힘이 세다는 걸 국가가 알아야 한다”며 강정평화대행진을 앞둔 심정을 담담히 밝혔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해군기지, 절차를 다 거쳤다고? 거쳤다면 그건 오직 기만과 속임수

다시 이어진다. “마을에 핀 무궁화 꽃은 예전에도 피었고, 앞으로도 필거우다. 우린 예전에도 대한민국의 성실한 국민이었고, 앞으로도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될거우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우다. 10년이 걸리든 얼마가 걸리든 잘못된 국가결정과 맞서서 우린 끝까지 싸울거우다. 이길 자신도 있수다. 왜? 당연히 국가가 처음부터 잘못한거니까.”

‘밖에서는 절차를 다 거쳤다고 하질 않느냐’는 질문에 김갑득·이영자 씨의 목청이 한껏 더 높아졌다.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 주장은 국방부와 해군이 하는 소리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처음부터 주민동의 절차를 기만과 속임수로 얼렁뚱땅한 거 아닙니까. 당시 마을대표 몇 사람만 쉬쉬해서 추진하고, 마을총회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향약 위반 등) 결정해놓고, 이 작은 마을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육지부 경찰까지 수천명 투입시켜도 절대 정부 뜻대로 되지 않을거우다.”란다.

김갑득·이영자 씨는 정치권에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어 ‘나랏님’이 되겠다고 하는 대선주자들에게 진심을 다해 강정을 바라봐달라고 당부했다.

“마을사람들이 정말 힘겹게 지난 6년을 싸워 왔수다. 대선주자들이건, 정치인들이건, 모두 제주해군기지가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었음을 빨리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선 나라가 바로 서질 않읍주.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 작은 마을 ‘강정마을’과 타협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대통령이고 장관·국회의원이우꽈. 힘으로 풀려고 하면 반대하는 힘도 맞서게 되는거우다. 원점에서 강정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아줍써. 꼭 필요한 국책사어이라면서 주민설득도 못하는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우다”

마을에서 만난 노인회장 김정민(75) 어르신도 “우리가 들고 있는 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다. 그러나 촛불도 많이 모이면 그 어떤 권력보다도 더 힘이 세다는 걸 국가가 알아야 한다”면서, “농부들보고 밭을 내놓고 땅을 떠나라하니, 별 달고 있는 국방부 장성들보고 별 떼어놓고 집에 가라면 가겠는가. 제일 천한 게 농부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촛불 들고 치고 박고 싸우지 않는다. 촛불은 가장 평화적인 목소리다. 거기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폭력이고 공권력 남용이다. 생명의 근본이 농사이니, 농사꾼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열라”고 하신다.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지만, 마디마디에 강단이 밴 위엄이 느껴진다.

마을을 빠져나오기 전, 차를 돌려세워 한참을 걸었다. 해군기지 찬반으로 나뉜 마을초입 사거리의 나들가게와 코사마트, 중덕삼거리, 삼엄한 해군기지사업장 출입구, 멈춰 선 강정포구…. 평온으로 감춰진 전쟁터였다. 지나는 주민들끼리 피아를 구분하는 매서운 눈초리. 길 가는 올레꾼들의 거동까지도 감시하는 경찰병력들. 그 사이 구럼비 바위는 깨지고 으스러지고 있었다. 강정마을에 핀 무궁화 꽃은 왜 그토록 푸른지. ‘일편단심’이라는 무궁화 꽃말은 ‘일강정’을 아끼는 강정사람들의 마음을 빼어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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