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평화대행진] 메가폰 대신 마이크 잡고 평화 부르짖는 여균동 영화감독

 

   
▲ 여균동 영화감독.  그는 요즘 제주 강정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다. 스스로를 평화유배자라 부른다. 마을주민이 내어준 어느 다락방에서 외지인이 아닌 강정주민으로 살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그를 영화감독으로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감독 이전에 이미 1980년대 ‘창작과비평사’의 기자였고, 서슬 퍼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시절(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긴급조치9호 위반과 계엄령 위반으로 세 차례나 옥살이를 겪으며 학교보다 감옥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다.  

창비 기자 시절인 1985년 미등록으로 서울대에서 제적(3학년 중퇴)된 그는 극단과 춤패 등에서도 ‘광대’의 삶을 살았고, 그 연장선으로 1989년부터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은 뒤는 영화감독으로, 때때로 영화배우의 삶도 산다. 한때 상업주의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지만, 늘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철저한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불러야 맞을 성 싶다. 서울미술관 큐레이터(1982~1983), 사회사진연구소 창립(1986~1987), 노동자문화연합 지역문화위원회 소장(1987~1988) 등 그가 걸어온 행보와 가리킨 시선은 늘 ‘사람 사는 세상’, 그리고 ‘문화적인 삶’과 단 한 번도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균동(54)이다.

# 서울대 제적생에서 문학잡지 기자출신, 영화감독서 배우까지...지금은 평화 유배인 

여균동 감독이 29일 저녁 7시30분 강정포구에서는 열리는 ‘1만인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 행사에서 메가폰 대신 마이크를 잡는다. 1986년 고(故) 이한열 장례식 문화행사를 총진행했던 그가, 지난해 어느 날 누가 부르지도 않은 제주 강정마을에 스스로 ‘유배’와, 어느 강정 주민집 다락방에 거처하는 ‘평화유배인’이 된 후로는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평화문화제의 진행을 자청(?)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의 횡포에 맞서 5년을 온전히 싸워온 강정 민초들의 목소리가 그를 강정마을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행사 참석차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을 향하는 여균동 감독을 제주국제공항 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울 토박이인 그에게 던진 ‘서울은 무슨 일로?’라는 질문이채 끝나기도 전에 우문임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먼저 답했다.

 “이젠 저도 강정사람이 됐단 뜻이죠? 지난해 7월 강정마을에 처음 내려올 때는 어딜 가면 ‘서울에서 왔습니다’라 인사했지만, 지금은 ‘강정에서 왔습니다’로 인사를 바꿨습니다. 서울에서 강정으로 스탠스(stance)가 바뀐거죠. 저도 이젠 강정사람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하하.”

그와 인터뷰를 나눈지 채 몇분도 지나지 않아 영화 스크린이나 TV 속에서 보던 그의 ‘가벼움’(사람이 가볍단 얘기가 아니라, 명랑 쾌활한 이미지 때문에 진중한 얘기는 어색할 것 같은 캐릭터)은 단박에 무너졌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에게 가벼움이라는 단어가 도리어 어색한 것이었다.  여균동 감독의 말이 이어진다.

“강정,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마을중 하나지만, 강정에서부터 우리나라의 평화가 시작될 겁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직 (싸움은)절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정은 지지 않을 것이고, 강정은 그리고 구럼비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 여균동 영화감독은 '1만인 강정평화대행진'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선물하자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강정사람으로, 평화유배자로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여균동 감독이 지난 27일 1박2일 서울나들이에 나서면서 '강정평화대행진' 티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간절한 기원이 강정주민들 마음과 맞닿아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그는 20대에 창작과비평사 기자(1983~1985년)로 일했다. 당시 ‘제주4.3사건’을 다뤄 금서였던 ‘순이 삼촌’의 저자인 작가 현기영 선생과 술자리를 자주 가지면서 ‘제주도’에 처음 눈을 두게 됐다. 그러나 강정마을을 오기 전까지는 관광지나 영화 헌팅지 이상의 제주도를 알지 못했고, 진짜 ‘제주’를 몰랐다. 강정마을을 통해 탐라국에서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후 4.3사건에 이르기까지 뭍으로부터의 침략사, 거기에서 비롯되며 누대에 걸쳐 형성됐을 소위 ‘괸당문화’…. 여균동 감독은 “이제야 비로소 강정마을에서 진짜 제주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 국가도 실수할수 있어…, 국민을 이기려는 정부는 가장 어리석은 정부

해군기지 찬반 갈등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강정사람들의 삶이 마치 영화 같단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균동 감독은 “지난 5년간 강정사람들은 많이 울고 있습니다. 가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숙부와 조카 사이에도 해군기지로 인해 눈물이 끊이지 않고 있죠. 영화로도 다 보여줄 수 없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이라며 ‘울컥’했는지 목이 멘 듯 냉커피 한잔을 금세 비웠다.    

2002년 대통령 선거시절, 여균동은 배우 문성근과 함께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원한 대표적인 영화계의 ‘친노 인사’다. 그런 그에게 참여정부에서 결정된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묻는 것은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것일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의 생각이 궁금했고, 굳이 질문을 빼고 싶지 않았다. 

“국가라고 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국가도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강정을 통해 국가도 실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 강정마을 해군기지 입지 결정이 났습니다. 지금의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첫 책임은 참여정부에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인정해야 합니다”

 

   
▲ 지난해 9월 3일 강정마을에서 열린 1회 강정평화 콘서트 사회를 보고 있는 여균동 감독. 사진 = 오마이뉴스 제공
   
▲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행사에 '강정마을'도 함께 했다. (왼쪽부터) 영화배우 김꽃비, 영화감독 김조광수, 여균동이 한진중공업 사태와 강정마을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취재진 앞에 섰다. <출처=여균동 감독 트위터>여균동 영화감독.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여균동 감독의 말끝이 더욱 예리해졌다.

“그러나 당시 강정마을 입지결정 과정이 석연치 않습니다. 단언할 순 없지만 노무현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당시 국방부의 속임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유치결정 과정에 대해 처음부터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국방부와 해군이 이를 무시하고…. 노 대통령도 국방부의 농간에 놀아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더라도 지금이라도 절차에 문제가 있었으면 정부도 솔직히 인정하고 털고 가야할 건 털고 가야합니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제주해군기지 투쟁을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자꾸 조작을 합니다. 그렇지 않음을 우리 스스로 밝혀야 한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동안 해군기지를 온 몸으로 막아내는 과정에서 400~500명이 연행되고 다수의 전과자가 나오고 벌금만 수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마다 주민들은 모여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저는 정부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강정주민들은 정부의 잘못을 확신하고 있고, 잘못된 국책사업 결정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자신합니다. 국민을 이기려는 정부는 어리석은 정붑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여균동 감독은 그동안 강정에서 ‘트윗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벌써 두 편의 영화를 제작·개봉(?)했다. ‘강정 로맨스’와 ‘강정 85 크레인’이다. 둘다 런닝타임 5분 이내의 눈 깜짝 할 사이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다. 그러나 그 어떤 대작이나 장편영화보다도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감독 특유의 풍자적 미학은 강렬하다.

 

“이제 3편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소득이 없네요. 하하하. 1편에선 구럼비가 나오고, 구럼비의 평화와 낭만이 보입니다. 2편은 구럼비를 가둔 벽을 넘어서자 였습니다. 3편은 아직 구상을 못했습니다만,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과정에서 ‘강정 김씨’로 성을 바꾼 분도 있고, 강정주민이 된 분들도 많습니다. 또 여기서 만들어진 러브라인으로 커플이 된 분들도 있습니다. 그게 소재가 될 것 같습니다. 뭐 말하자면 ‘강정에 살어리랏다’ 그런 거죠. 하하.” 

# 강정 평화대행진, 오시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거기에 평화와 치유까지!

다시 ‘1만명 강정 평화대행진’ 이야기도 돌아왔다. 29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30일부터 강정마을을 출발해 하루에 약 20여km 안팎을 걸어 제주도를 동·서진, 8월4일 저녁 제주시 탑동에서 열리는 ‘강정 평화콘서트’로 마무리하는 평화순례 행사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고 강정마을의 평화를 염원하는 일주일간의 평화대행진에 연인원 1만명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만명은 기계적인 수치가 아니라 실제 수치여야 합니다. 29일 전야제부터 8월4일 탑동광장에서의 평화콘서트까지 강정마을의 평화를 염원하는 분들이 전국에서 많이 와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특히 많은 제주도민들이 와주셔야 합니다. 이번 1만명 평화대행진은 우근민 도지사가 어느 사석에서 만명이 모이면 해군기지 공사중단 명령을 생각해보겠다는 얘기를 했다는 말이 있어서 그것이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디다. 그러지 않아도 올 여름 도보순례를 계획했던 것으로 아는데 역설적이게도 우 지사의 ‘말’이 촉발이 된 거죠. 제주에서 만명이 모이는 것은 서울시청 앞에 50만명 이상 모이는 집회와 다름없습니다. 거기에다 이번 평화대행진에는 참가하시면 그냥 먹여주고 재워주니, 거기에다 수준 높은 공연까지 보여주니 세상에 이런 행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하하.”

 

   
▲ "서울 잘 다녀올게요"  비행기 탑승구를 들어서는 그가 환하게 웃는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초면임에도 여균동 감독과의 인터뷰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그가 비행기에 탑승해야할 시간이 됐다. 다시 보자며 일어서던 그가 가방에서 큼지막한 노란색 티를 꺼내들었다. 이번 평화대행진 공식 티셔츠다. 이걸 입고 비행기에 타야 한다며 화장실서 갈아입고 나오면서 하는 말. “여기 제주공항에 모인 사람만도 천명은 될 거 같은데, 저 사람들이 모두 이 강정 평화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란다.

여균동 감독이 비행기 탑승장 안으로 들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올 1월 위암수술까지 받은 그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맑다. 강정 물이 좋아서란다.

“저, 어제 밤도 강정천에서 목욕하고 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물 제일 좋은 곳이 제주도이고, 제주도에서 가장 물 좋은 곳이 강정천인데 올 여름 휴가는 가족들과 함께 강정천에서 발 한번 담가보고, 구럼비 해안을 따라 강정마을을 걸어보시죠. 마을에 내걸린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는 글귀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겁니다. 아직 강정은, 그리고 구럼비는 살아있습니다. 서울 갖다 와서 봅시다”

한편 ‘1만인 강정평화대행진’은 29일 강정마을 전야제를 시작으로, 30일부터 두 무리로 나뉜 순례단은 마을을 출발해 각각 동·서진해 8월4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열리는 ‘강정, 평화로 노래하라!’란 주제의 평화콘서트에서 만나게 된다. 방송인 김미화 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평화콘서트는 전설의 록밴드 들국화, 민중가요계의 상징 안치환 등이 찾아온다. 참가문의 = 강정마을회(064)739-0778번.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