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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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도 좋은 아저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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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7-09-15 ㅣ No.30045

재주도 좋은 아저씨 신부


   두 달 전부터 아이들과 주일 산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니 벌써 꽤 여러 산을 올랐습니다.  관악산, 북한산 수리산, 구름산,마니산 등등.


   두 달 전에만 해도 "신부님과 산에 갈사람?" 하고 회원 모집을 하면 고작 두세 명만 모였는데, 요즘은 12인승 승합차가 꽉 찰 정도로 등산부는 인기가 좋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등산이 제게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 라기보다는 다른 데로 새는 아이들이 없는지 시시각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중노동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올라 아이들이 뿌듯해하는 표정이나, 하산 길에 들려  오는 아이들의 콧노래, 한결 가까이 다가서는 아이들의 모습에 다시금 저는 기쁜 마음으로 산을 오릅니다.


   한번은 하산이 늦어져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 했기에 아이들과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떡라면을 네 그릇 시켰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제가 분식점 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짠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떡라면 보통''을 시켰는데 곱빼기에 곱빼기는 더 돼 보이는 떡라면 대접을 우리 앞에 내놓았습니다. 거기다 시키지도 않은 공기 밥까지.


   식사하는 동안 앞에서 내내 안됐다는 표정을 짓던 주인아주머니는 기어이 제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워매, 참말로 아저씨는 재주도 좋소. 스트레트로 쫙 아들만 셋이요? 아그들 엄마는 어짜고?"


   한두 번 듣는 말이 아니었기에 저는 습관처럼 대답했습니다. "보면 모르시오? 아그들 엄마 도망가서 지금 찾으러 다니는 중이오." 정신없이 떡라면 먹는 데만 열중하고 있던 아이들도 아주머니와 저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죽는다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전에는 "아저씨가 애들 아버지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벌써 그 나이가 됐나?  벌써 그렇게 삭아 보이나?'' 싶어 못마땅했는데, 요즘은 그 소리처럼 듣기 좋은 말이 또 없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수도회의 설립자인 돈 보스코 성인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그 가치가 빛나는 예방교육의 창시자요 위대한 교육자였지만 그보다 먼저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분은 당장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공간마저 기꺼이 아이들에게 내주었던 버림받은 청소년들의 진정한 아버지였습니다.


   저희 회원들은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진정한 아버지로 살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뿌리이고 싶습니다.


   저희의 열정과 사랑을 마음껏 먹고 자란 아이들이 보란 듯이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날마다 노심초사하는 아이들의 ''친아버지'' 이고 싶습니다.



          ▒ 살레시오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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