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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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만 그 자리를 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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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7-23 ㅣ No.122330

 

나이 60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신이 아무리 마음을 젊게 가지고 또 젊게 살려고 노력해도 내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차츰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젊어서는 아무렇게나 걸쳐도 흉스럽지 않더니 이제는 옷 하나 입는 것도 구두 한 켤레 사 신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신경이 쓰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메이커니 명품이니 어쩌고 하면

“까짓것 메이커면 어떻고 시장물건이면 어떠냐? 명품? 그거 뭔 소용이냐? 값만 비쌀 뿐이지. 나는 그저 실용적인 게 좋다.” 하며 고사하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백화점 물건이나 메이커가 아니면 거들떠 볼 생각조차 안 하니 이것 또한 내가 늙어간다는 징조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매일아침 출근하는 사무실이 있고, 또한 행사를 기획하고 또 준비해서 행사를 개최한 후에 그 결산, 또한 강좌운영 등 등 내가 맡은 업무가 있고, 과외로 몇 개 지면에 꼬박꼬박 원고를 보내야 하고, 여러 단체의 위원, 임원으로서 회의에도 참석해야하고, 비록 가뭄에 콩 나기지만 강의도 나가야 하는 등등의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근래 들어서는 내 나이에 맞추고자 조금씩 활동범위와 활동량을 줄이고 있다.

작년과 올해 들어서만도 민주평통자문위원, 구 선거관리위원, 청소년 선도위원, 소식지 편집위원, 공적심의위원 등 무려 10여개의 직책을 정리를 했다.

개중에는 큰 돈은 아니지만 회의참석비, 교통비, 위원수당 등 제법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는 것도 있었지만 나이를 핑계로 사양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만 나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만은 아직도 발을 빼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도 금년 중에 어르신들께 상의를 드려서 함께 물러나면 어떨까 싶은데 아직은 그 어르신들 뜻을 내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께서도 하고 계신 일을 내가 나이 핑계를 대며 못 하겠습니다 하면 그 어르신들에게 욕을 뵈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이 차지하고 앉았던 자리를 보다 젊은 후배에게 내 주는 것이 남 보기에도 좋고 또 반드시 그렇게 후배를 키워야만 단체나 사회가 발전을 하는 것이다.


늙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든가?

나이 들어 하나씩 비우는 것만큼 홀가분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말임에도 정작 나 자신이 바로 그 나이가 돼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내놓기까지에는 솔직히 말해서 심중에 부대낌이 많았다.

홀가분하리라 여겼던 것이 홀가분한 게 아니라 서글픔이 되기도 하고, 아직도 나는 아닌데 하며 팔 굽혀펴기도 몇 번 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젊은 녀석들 속에 섞여서 밤새도록 함께 놀아보기도 하고....

그러나 결국은 그렇게 안간 힘을 써본들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사실임을 실감하고 버둥질 쳐봤자 헛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나서야 내가 승복을 했다고나 할까....

이제는 차츰 차츰 나를 비우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비우는 것은 곧 끊음과 통한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그 인연을 하나씩 끊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것 또한 비움이리라.

그 비운 자리에 내가 추구하는 영원한 생명의 귀한 말씀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죄에 대한 미련, 욕심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 게다.

 

아직 내게는 활동능력이 있는 데, 내가 애써 차지한 권리와 이익이 있는 내 자리를 남한테 물려주고 나를 비운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체력이며 정열이 내게 남아있는데 사는 재미와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하는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이들도 저렇게 활동하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도 저렇게 인연을 엮어 사는데 왜 내가 벌써 그래야 되지? 하는 미련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명품을 찾고 메이커를 찾는 심정도 명품이나 메이커 제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로열티가 아니고 그와 같은 늙음과 비움, 끊음의 반발심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영원한 오빠라고 하는 송해 씨가 전국노래자랑 프로에 사회를 보는 것을 보다 말고

“저 양반도 이제는 좀 물러나고 가족오락관의 허참씨 한테 인계하지. 허참씨도 가족오락관 그 프로는 좀더 젊은 MC에게 넘겨주고 그래야만 세대교체가 자연스레 되는 건데...” 라고 내 혼잣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소철을 키워보면 아래쪽에 먼저 난 잎이 누렇게 되면 위쪽에 또 새로운 순이 나서 참빗 같은 잎이 되어 자라고 또 아래쪽 잎이 누렇게 영잎이 되어 밑으로 처지면 위쪽으로 새 순이 나와 빗살모양 잎으로 자라게 되고.....그게 자연의 이치이거늘...


겨울이 올 무렵 딴 잎들은 나무에서 다 떨어졌는데 가지 끝에 매달려 버둥거리며 남아있는 낙엽처럼 초라하고 서글픈 게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욕심이나 미련 때문에 때를 놓쳐 노추의 모습을 보이지 말고 박수칠 때 당당하게 물러나 주는 것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싶은 것이 비록 약간은 서글프긴 하지만 요즈음의 내 일상이며 내가 느끼는 소회이다.


“이젠 고만 그 자리를 내 주시죠?” 하는 소리를 어쩌다가 듣게 된다면 아무리 그가 성공한 사람이라 하드라도 그 인생이 얼마나 허망하고 슬프겠는가?

주님, 나이 든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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