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226) 티 없이 깨끗한

스크랩 인쇄

이순의 [leejeano]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8792

2004년12월22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 ㅡ사무엘 상권1,24-28;루가1,46-56ㅡ

 

                티 없이 깨끗한

                                    이순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가까워지면서 복음서는 온통 마리아의 행적과 신앙과 찬미로 도배를 하고 있다. 또 탄생 후에도 당분간은 아기 예수의 길을 따라 마리아의 행적이 동행 할 것이다. 분명히 믿음의 신은 아버지 하느님이시며 구원의 승리자는 예수이시고 우리가 그 신앙을 따라 함께하는 분은 성령의 절대적인 도우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완전성은 완전성을 남용하시기 보다는 보조자적 배필로 지극히 깨끗한 인간 마리아의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의 덕으로 인간 구원을 완성하시기에 이른다.

 

마리아는 순종으로 아기 예수의 잉태를 허락했지만 아들 예수의 죽음 보다 오래 이 땅에 살아 있었다. 인간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마리아는 이 땅에 있었고, 인간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도 이 땅에 존재한 인간인 것이다. 즉 우리 사람의 존속성의 대표적 인물이며 그 안에 신께서 머물다 부활하신 순종의 극치이며, 또한 믿음의 약속을 증거해 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본보기가 되신 것이다. 우리는 결코 마리아를 믿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마리아를 믿는 교회가 아니다.

 

우리 교회는 마리아 처럼 신앙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교회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 역사상 마리아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마더 데레사의 성덕이 높았다해도 마리아의 인류구원에 순종한 성덕을 능가할 수 없으며, 성 프란치스코의 신앙이 깨끗하다해도 마리아의 순결한 신앙을 능가 할 수 없고, 소화 데레사가 아무리 정결했다고 해도 마리아의 정결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많은 성인들이 마리아의 신앙을 본 받고져 얼마나 많이 간구했는가?!

 

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마리아라는 인물의 사실들을 부정 할 수는 없다. 구원자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렇게 성스러운 시기에 만삭의 마리아를 생각하지 않고 덩그러니 아기만을 기다리는 신앙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리아의 순종하는 신앙을 본 받아 오시는 아기께서 나에게 오실 때는 티 없이 깨끗한 나로 돌아가야한다고 결심할 것이다. 마리아 처럼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오실 응답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표본의 대상인 것이다.

 

간혹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성서의 기록조차도 삭제를 해서 마리아에 관한 행적을 말살하고 싶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을 삭제 한다고 해서 또는 온갖 이유를 대서 회피한다고 해서 오신 아기께서 어머니의 태반을 빌리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지를 않는가?! 그렇다면 신께서 인간이 되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인 어머니의 순종을 요구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대림 4주간에 봉독되는 복음서의 내용들은 마리아를 믿는 이유가 아니라 아기께서 만삭의 어머니 뱃속에 앉아 계시기에 그 감동을 찬미하고 있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오시는 아기께서 잉태 되신 태몽으로 천사의 소식을 나누고, 아버지 요셉 가문의 족적을 살피며, 예수라는 이름을 받고, 사촌인 엘리사벳을 만나서 또 기뻐하고, 급기야 오늘은 마리아께서 찬미가를 부른다. 이스라엘에 구원자로 오실분께 찬미의 노래를 모친께서 친히 부르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종의 미덕으로 구원의 반열에 선 사람들이 마리아를 신으로 내몰아서 탄압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지금 마리아의 뱃속에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아기를 담고 있는 만삭의 산모를 결코 배척하지 않는다.

 

구유에 누우실 아기만 있다면 나약하디 나약하게 오실 아기께서 어떻게 살아나며, 호구조사는 또 어떻게 피해 갈 것고, 어린 소년이 설은셋의 장정이 될 때까지는 또 어떻게 돌보아질 것인가?! 분명히 성서는 예수님의 행적에 탄생 이전부터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락방의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성모의 행적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성모를 배척하려고만 하는가? 가톨릭 교회는 결코 성모 마리아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모 마리아와 같은 성덕의 신앙을 따라 낳고 살고 죽기까지 아들 예수와 함께 하셨던 지극히 순결하신 신앙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 보다 더 완전한 본보기의 신앙이 존재할 것인가? 신께서 마리아의 배를 빌려 친히 사람으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신께서 친히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면? 신께서 친히 사람으로 죽지 않았다면? 그리고 친히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것도 약속받을 수가 없다. 말씀이 우리에게 티없이 깨끗하게 순종한 마리아와 같은 신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십시요.> 그리고 또 말씀이 찬미가를 요구하고 계신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 교회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대림시기라는 전례동안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4천 년 역사를 독서로 봉독했고, 잉태되신 마리아의 배를 보며 마지막 대림 4주의 기다림에 설레이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가톨릭 교회를 부정하고 싶은 사심 때문에 마리아의 뱃 속에 아기 예수가 들어 있음을 기분나빠 하실 그리스도인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이야말로 뱃속의 아기는 보지 않고 배부른 마리아만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가 공경받는 이유는 그의 태중에 아들 예수가 있기 때문이며, 아들 예수 친히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맡기신 이유 또한 죽으시고 부활 하시고 성령께서 오시는 그 자리에 마리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의 본을 받아 신앙의 덕을 쌓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간순간에, 아니면 필요에 따라, 혹자는 자기 신앙에 심취하여,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 답게 믿지 못 하고 있는가?! 그러나 마리아는 단 한 번도 의심이 없었고, 고통을 거절하지 않았고, 하늘로 올라가버린 아들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또한 주님의 명을 따라 성령께서 오시는 그 다락방에 제자들과 함께 앉아 순종의 끝을 장식하신다. 이러한데 누가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이라고 말 하였는가? 마리아가 믿음의 우상이 되는 것은 그렇게 말 하는 사람의 우상일 뿐이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이라고 결코 말 한 적이 없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라고 시작한 복음서의 기록부터 순종하는 신앙인이었으며. 성령이 오시는 그 다락방의 모임까지 아들 예수를 따라 살으신 완전한 신앙인인 것이다.

 

그 신앙의 극치를 닮아 주 예수님 곁에 죽기까지 충실한 신앙의 모범을 살고자 하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정신인 것이다. 기도로서 주님과 바로 통교하고, 믿음으로 주님의 대전에 섰으며, 구원의 약속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마리아의 순결한 신앙의 은총은 왜 부정을 하는가? 지극히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배를 빌려 아기예수님이 탄생 하셨거늘, 주님을 믿어서 얻는다는 복락을, 믿음만으로도 천국이 도래 한다고 확신 하면서도 마리아의 천상 특혜를 부정하려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러나 대림이라는 지극한 준비의 때에 출산을 앞둔 마리아께서 구유가 아니라 내 집 안방에 오셔서 출산하시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여염집에서도 출산이 다가오면 준비가 많고, 정성이 많으며, 정갈한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아기께서는 인간들의 악심에 떨며 갈 곳이 없어서 동물의 밥 그릇에 누우셨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고통의 마리아를 얼마나 정성되게 내 집에서 출산하시도록 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 성찰 해 본다. 차라리 나의 성찰이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는 구유가 훨씬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마리아를 내 집으로 모시고 싶다. 그런 나에게 마리아를 믿는다고 말 할 것인가? 마리아께서 내 집에 오셔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이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태중에 담으셨으니 내 집에 오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기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배척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셔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얼마 남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곡해를 하든지. 우리 교우들이 무지해서 말 주변이 없든지. 주님께서는 누구도 가리지 않고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가리지 않고 오신다. 믿는이나 믿지 않는 이나 인류구원의 완성을 위해 오신 것이다. 의인 보다는 죄인을 구하러 오셨으며, 병든자와 고통받는 자와 가난한 자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다. 우리는 마리아 처럼 주님의 곁에 항상 항구히 믿고 의지하며 머물러야 할 것이다. <주님의 뜻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 라고 한 때부터 성령이 오시어 제자들의 머리 위에 내리시는 그 자리에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아무리 나의 신앙이 두텁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 처럼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본 받아야한다. 마리아는 단 한 번도 신앙을 확신하지 않았다. 그냥 티 없이 깨끗하게 순종하셨을 뿐이다.

 

ㅡ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루가1,48ㄴ-49그   

 

 

 

 

 

 



873 8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