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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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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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kr3217] 쪽지 캡슐

2013-12-20 ㅣ No.744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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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그린 작가의 어떤 의도가 보이는 작품이네요.

 

루카는 어떻게 생각해서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라고 단정할 수가 있나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루카 1,7)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왜 루카 복음사가는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단정지어 표현하고

있는가? 이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표현은 아주 중요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 한 여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한 여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산력, 곧 창조력을

잃었다는 것은 완전 희망이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루카 복음을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묵상해 봅니다. 한 여인과 한 남자가 함께 살기는 하나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구요.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땅과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땅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땅을 가꿀 후손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그 후손이 없는 것입니다.

그 후손은 누가 줍니까? 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후손이 둘 사이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의 의미는 이미 하느님의 은총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았는데 왜 이러한 은총이 끊어졌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어떤 영적인 상태와 맞물려 묵상해 보시면 어떨까 싶군요.

사실 이스라엘 민족만큼 의롭다고 자신할 만한 민족이 있었겠는지요?

그 의로운 민족에게 후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이스라엘이 이미 생산력을 잃어버린 그런 영적인 상태...

 

이러한 때에 하느님의 개입이 시작되고 있음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를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이지요. 기쁜 소식의 서막이 되는 것이지요. 기쁜 소식의 첫 나팔

이라고 할까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이를 주신다는 기쁜

소식... 후손을 주시겠다는 기쁜 소식...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단어는 둘 다 나이가 많다는 표현입니다.

정확한 나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이가 많다는 표현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부부 관계로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인간적인 어떤 힘으로는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지요. 아마 그때까지 뭐 남자는 짚단 하나 들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여인은 어느 시기가 되면 폐경에 이르러 아무리 남자가

생산 능력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지요.

 

둘 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하니...

즈카르야가 소실(?)을 두어 아이를 낳을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 둘은 후손이 없어 아주 극단적인 표현으로 보면

희망이 전혀 없는 캄캄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개입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루카 복음사가는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 저는 묵상하고 있습니다.

 

둘 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다라는 표현으로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후손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아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 순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주님께서 주시지 않는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으시다고 여기며 순명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뒷부분에 보면 아시겠지만 즈카르야는 이러한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보면 이미 나이가 많아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했듯이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이지만 하느님께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아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루카 1,13 참조) 

 

천사의 말씀을 통해보면 분명 즈카르야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은 어떤 능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지만 하느님의

어떤 자비하심에 의지해 기도해온 즈카르야...

아마 그 믿음과 희망이 후손을 얻은 비결은 아니었을까요?

 

아마 이 믿음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고백일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라는 한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어떤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를 고대했는지요?

 

어둡고 캄캄하고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 오심을

열망했습니다. 인간적인 어떤 힘으로는 불가능한 그 때에 하느님만 바라봤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영적인 표현이 즈카르야라는 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 루카는 어떻게 생각해서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라고 단정할 수가 있나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까지 되었으니 그 결과를 보고 그렇게 단정지어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었으면

벌써 낳았겠지요. 그러나 이미 할머니(?)가 되었다면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 내용은 저의 개인적인 묵상 내용이므로 맞고 틀리고 다른 의견은

사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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