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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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원공스님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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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미 [sukmaria] 쪽지 캡슐

2000-09-05 ㅣ No.1701

도봉산 원공스님을 만나고

 

 

 

어제는 동무들과 함께 도봉산 천축사에 갔습니다. 원공스님을 만나 뵈었지요.  백두대간 종주 끝나면 저희가 사는 과천에 꼭 놀러 오신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이치 않아 못 오시고 계시다가 오늘 천축사로 놀러 오라고 며칠 전에 동무한테 전화를 하셨지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산에도 오를겸 저도 함께 갔습니다.

 

원공스님이 계신 곳은 천축사 곁에 있는 수도원 3층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게 만들어 진 곳이었지요. 정말 말 그대로 ’무소유’로 살고 계셨습니다. 전기도 안 사용하십니다. 반핵운동을 하시는 분이라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난방은 연탄을 이용하신다고 합니다. 직접 산사까지 연탄을 지고 올라오신다고 하네요.

 

다섯달이 넘는 동안 백두대간을 종주 하시고 국토 순례를 하시다 오셨습니다. 걷고 또 걷는 날들을 보내시고 오신 거지요. 원공스님은 절대 차를 안 타신다고 합니다. 걸어서만 다닙니다. 그렇게 걷고 걸어 남한 땅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지리책, 살아있는 역사책 같은 분이셨지요.

 

얼마나 말씀을 잘 하시는지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정숙이 말로는 욕도 진짜 잘 하는 괴짜 스님이라고 해요. 화끈하시더라구요.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또렷하게, 스님 나름의 개성과 색깔로 표현하시는데 얼마나 웃기고 재밌는지 진짜 달변가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김영식 신부님과 아주 친하다고 해요. 김영식 신부님 소개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의 수녀님들을 지도하며 함께 일주일동안 걷는 피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종신서원 받은지 20년된 수녀님들이 한달 특별 피정을 하는데 일주일은 원공 스님을 따라 걷는 피정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네요. 그래서 일주일동안 함께 걸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 이야기하는 것은 녹음을 해서 들려 드려야지 제 부족한 글 솜씨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해요. 열번 읽는 것보다 스님 이야기 한번 듣는 게 더 재밌지요. 수녀님과 함께 한 피정의 간단한 일정을 말하자면, 걷고, 먹고, 싸고, 자고 또 걷는 것 이것이 다였다고 합니다. 계속 걸으면 사람은 단순해진다고 하시네요. 걷고 있는 것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고...

 

원공 스님의 백두대간 종주와 국토 순례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민족통일"입니다.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글씨를 새긴 은반지를 우리 모두한테 끼워주셨습니다. 점심도 얻어먹고 은반지도 받고 가난한 스님한테 너무 많은 것을 얻어오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원공 스님은 마당발이신지 아는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많이 알고 계셨고 친분도 두터운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어떤 절의 주지 스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요. 원공 스님과 아주 절친한 분인데 사찰 일을 너무 열심히 돌보시다 과로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절에서 원공 스님도 모르는 사이에 원공 스님을 주지 스님으로 정해 놓아다고 하네요. 그래서 스님은 절 재정과 관리는 모두 신도들 대표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수도하는 스님들은 스님들의 본래 일만 잘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수도자가 돈을 만지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앞으로 사찰 재정이 모두 투명화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주지 자리를 사양하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남녀평등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게 이야기 하셨는데 요즘같이 여자들이 살만한 세상도 없다시며 진정한 남녀평등이 되기 위해선 종교 안에서부터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종교는 기존 체제와 의식을 그래도 재생산하는 곳이라 그만큼 남녀평등도 잘 되지 않는 곳이라며 종교가 남녀평등이 되면 진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 하셨지요.

 

장애인에 대해서는 잠깐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곧게 뻗은 나무만 보다 옆으로 구불구불 이상하게 자란 나무를 보면 특별한 나무라며 귀하게 여기면서, 유독 사람이 좀 이상하면 천대를 한다며 특별하고 색다른 것을 사람들은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셨지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참 멋진 비유시다 싶었습니다. 정말 다들 귀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희귀하게 자란 나무나 장애인이나 희귀하긴 마찬가진데 나무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인간은 천시를 받으니 사람들 눈이 정말 한참 잘못되었구나 싶습니다.

 

스님께서 저보고 그러셨지요.

 

"아! 니가 그 친구가? 그래 몸은 어떠냐? 하나도 아픈 사람같지 않네. 많이 좋아진 모양이네? 니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 고맙다. "

 

작별 인사 드리고 방문을 나설 때

 

"자신감만 있으면 돼. 어때 자신 있지?"

 

"예"

 

"그래!"

 

"스님 과천에 한번 오세요."   

 

"그래 한번 가야지"

 

천축사 부처님께 공손하게 인사 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도봉산을 내려왔습니다. 스님이 도봉산에서 관악산 아래에 있는 과천 저희 아파트까지 오시려면 얼마를 걸어야 오실 수 있을까요? 다시 수도원에서 수행하는 때가 되기 전에 과천에 한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채나물에 잡곡밥으로 정성껏 점심 대접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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