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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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신달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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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9-05-28 ㅣ No.372

[가톨릭신문(5월 30일) 방주의 창에서 옮김]  

아버지의 유산

신달자(엘리사벳.시인.명지전문대 교수)

 

아버지의 병상은 초라했다. 그러나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초라함보다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몇몇 자식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삶에 발목이 붙들려 그 병상을 자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자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무슨 법문항처럼 마음 속으로 외우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기만 하면 서둘러 그 외우고 있는 당당한 이유를 외치기라도 할 것처럼…

 

나도 그 중의 한 자식이였다.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나는 다른 자식보다 조금은 더 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형편없는 자만심까지 가슴에 품고서 죄 지은 사람이 늘 그렇듯이 주변을 슬슬 눈치보면서 이 정도면 적어도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계산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초라한 아버지의 병상

그러나 그런 겉모양 갖추기의 아버지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날 박살난 듯 깨어지고 말았다. 한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급히 응급실로 모시게 되었고 하반신마비를 확인하기 위해 촬영을 하게 된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의사선생님이 양말을 벗기라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 양말을 벗긴 그 순간 주변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둔탁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의 두 발이 지금 막 연탄 위를 걸어 온 것처럼 시커먼 때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무엇인가로 두 발을 가리고 싶은 본능이 일었지만 나는 입술을 물고 두 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무관심 우리들의 이기심 우리들이 방치했던 인륜의 비도덕성이 눈을 부라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똑히 보아라 잊지도 말고 똑똑히 기억하라 나는 나에게 외치고 있었고 미치광이처럼 그 순간 울고 싶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긴 내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이마에 달고 다닌 자신에게 실망했고 환멸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허전하시다고 양말을 벗지 않고 주무시는 버릇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에 발담그시는 것을 싫어하시는 아버지였다고 돌려 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 발에 낀 시커먼 때는 우리들의 마음의 자화상이었다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된 일이었다. 그후 아버지는 영구 입원하시게 되었고 자식들이 조금씩 모아 입원비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조금의 입원비를 각출하게 되면서 오래된 아버지의 과거를 들추어 내기도 했다.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난 ‘울리오’

그 많은 재산을 자신 스스로 탕진하고 자식들에게 유산하나 남기지도 못했지만 아버지는 부자였으므로 한 번쯤은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 말은 심장에 총을 겨누는 일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주 눈물을 흘렸고 지난날을 후회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과 서서히 이승의 뿌리가 삭아가는 듯한 눈을 보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께 선물하나를 하고 싶었다. 교리공부를 하시다 누우신 아버지를 위해 병원에 신부님을 모시고 가 영세를 받게 해 드리는 일이었다. 나의 희망은 감사하게 이루어졌다. 좥신 울리오좦 아버지는 거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눈감기 두어달 전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신 것이다. 아! 그 순간 아버지는 아름다웠다. 주머니가 두둑한 40대의 늠름한 모습보다 50대의 자신감 넘치는 활기찬 모습보다 육탈한 앙상한 뼈의 모습 그대로인 눈빛은 아버지를 본 그 어느날 보다 빛나고 따뜻하였다. 평화로웠다. 그리고 지루하고 한많았던 아버지의 88세의 생은 마감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힘겨운 야간 수업을 끝내고 어두운 골목을 휘돌아 나올 때 내 자동차 앞에 희미하게 다가오는 빛,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 들 수 없는 삶의 짐을 끙끙거리며 들려는 내 손 위에 얹히는 그 크고 부드러운 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

 

빛이 되어오신 아버지

얘야 일어나라 얘야 일어나라 그래 일어나야지, 귀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빛이었다. 아버지는 현금이나 현물로 유산을 주시기도 하지만 결코 죽지 않고 힘겨운 자식 앞에 빛으로 오시고 자신의 맨 몸으로 자식의 인생 앞에 널려있는 사금파리를 치우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보다 큰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5월 가정의 달에 이 부끄러운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내 사랑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녹아 든 그 빛의 이야기를 너희는 늙어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 너희를 업어 살리리라.(이사 4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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