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510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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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경 [chiara0] 쪽지 캡슐

2000-02-13 ㅣ No.516

글세요...

전 510님이 하시는 말씀 이해하기가 힘이 듬니다.

세상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30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인간의 힘으로은 바꾸고 싶어도 바꿀수 없다는것이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렇듯이 하나의 인간들이 많들어놓은 공동체적인 삶 안에서도

결코 바꾸어서는 아니될 것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 건설회사에 다닙니다.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합니다.

요즘 많이 바쁘지만 인간이 살기 위하여 하나의 건물을 지으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 공사를 얼마전에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바닥의 흙을 다지고 철 골조를 입히면서

뼈대를 만드는 일 우리 인간의 몸도 모든 기관들이 중요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튼튼한 뼈대가 아닐까요.

우리가 많든 것이라고 하여서 "그래 불편하니까 조금은 빠꿔도 상관을 없을 것이다."란

생각으로 조금씩 바꾸면 결국은 무엇이 남을 까요.

원 공동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그 취지와는 전혀다른 것을이 남아서

혼돈을 야기시킬 것입니다.

전 신학을 공부하면서 루터라는 아저씨가 중세 시대의 성직자의 나쁜 모습을 고발하고

그것을 어떻해서든지 좋은 쪽으로 바꿔 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는 충분히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어떻합니까.

새로운 소위 우리가 말하는 개신교 체계를 조금씩 벗어난 종교관으로 인하여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않게 사회와 가정 안에서 발생되고 있습니다.

우리집에도 예외는 아니죠.

저희는 모두가 성당을 다닙니다. 그러나 2번재 큰집은 교회에 나갑니다.

우리는 명절에 조상님께 기리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지만 저희 2번째 큰집은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도 아니하고 큰집에 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렇수도 있지요. 또 먹는 음식인데 왜 무당이 굿을한 음식이나 제사를

지낸 음식을 먹으면 아니 됩니까. 전 가끔 친하게 지내는 박수무당의 오빠네 놀러를 갑니다. 그럼 부처님 상이 놓여있는 과일을 먹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오빠가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본인이 껄끄러워 했지만 지금은 저의 이러한 행동으로 제가 놀러가면 너무 잘 먹는 다고 방문을 열어주지 않고 (넌 사이비 가톨릭 인이다.) 놀리면서 웃습니다.

또 부모에 의하여 강제로 믿게된 종교인 만큼 초등학교 졸업하고 10년 넘게 냉담을 하다가

다시금 신앙 생활을 찿아준 분도 신부님 입니다.(발산동 게시판에 들어가 보셔요. 요즘 제가 kfc의 사랑 이야기로 꾸미고 있습니다.)

본당이나 교구의 활동으로 조금은 그래도 알고 지내는 신부님이나 수사님, 수녀님들이 괘 됩니다. 제가 거기서 이야기 한 부분은 결코 그분들을 외면해서가 아닙니다.

그분들의 삶...

어찌보면 우리가 무진장 많은 기도를 드리고 도와 주어야 하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은 사제가 되면 그분들은 결코 자신 혼자만의 삶이 아닙니다. 자신이 선택하여 입은

그 복장으로 하여 책임져야하는 언행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잠깐 오늘 피정을 다녀 왔습니다. 수녀님이 부르신다고 합니다. 성당에 갈다와서 다시 쓸께요.)  

피정을 다녀온 사람들 끼리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왜냐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사제나 수도자에 대하여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어떠한  고정 관념적인 틀을 만들어 그 틀안에다가 그들을 가두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들도 사람입니다. 다만 살아가는 삶들이 우리와 조금은 색다란 삶일 뿐이지요.

실수를 통하여 우리가 조금씩 성장을 하듯이 그들도 함께 조금씩 성장을 합니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또 얼마전 이상한 종교로 인하여 방송국이 상처를 입고 약한 사람들이 피해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들 이러한 현실을 중에서 그래도 사회의 양심으로 자리를

지키는 가톨릭이란 종교를 생각하여 봅시다.

제가 신학교 1학년때 유교와 불교에 관하여 공부를 할 때입니다. 저희 불교를 가리키시는

성대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조계종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할 때입니다.)

"내가 아무리 불교란 학문을 기르키고 불교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나 스스로 인정을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마지막 인간의 양심을 지킬수 있는것은 가톨릭 뿐이란것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그 교수님의  심정 참으로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일까요. 전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들을 하나로 역어주는 체계적인 무엇인가가 없어서라고... 인간은 가끔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여 자기 편하게 말하며 살아 가는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그런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며 언행을 지적하는 기본틀 그것이 도덕과 윤리가 아닐까요.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이 살듯이 가톨릭도 가톨릭 나름대로의 변하지 않아야 하는 틀이 있습니다. 그런 틀안에서 본인이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이면 나름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순명하며 조활르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여 봅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자꾸만 빠꾸려고하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순명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까지도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왜 남에게 피해를 주어야 할 까요.

가톨릭은 우리의 문화가 아니라 서양의 문화 입니다. 그런 문화를 살펴 보면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황이 여자를 2이상 거느리는 것도 별 이상한 것이 아닌 성직자로서 세속적인 퇴폐의 삶을 살아온 성직자가 많지요.

그러나 그 뒤면에는 그러한 시대에 조용히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나 그외의 여러 성인들이 배출이 됩니다. 전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많약 아프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럼 그 병을 이겨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 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약을 먹거나 아닙 병원에 가든지 처음부터 아프지 않기 위하여 건강을 돌보든지 합니다.

가톨릭도 그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곳이 병들기 시작하면 그곳을 치유가고 정상으로

돌리기 위하여 움직임니다. 서로가 문제에 관하여 타협을 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며 성장을

지금것 이만큼 하면서 살아 온 신앙이 가톨릭 신앙이 아닐까요.

절대로 가톨릭 신앙은 이기적이지 아니 합니다. 언제나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우리 가톨릭이 이닐까란

생각을 하여 봅니다.

전 이러한 문제가 우리 젊은 청년들이 자신이 믿는 신앙의 교리에 관하여 너무나 무지하여

생기는 의견의 충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 본당의 청년 그외 타 본당의 청년 및 타 종교의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우리 가톨릭 청년들의 교리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여

속직히 쪽팔릴때가 많습니다. 괜히 타 종교화의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어 할 말을 잃어서 소리만 지르고 식식 거리거나 아님 얼굴 벌게져 아무소리 못하는 청년을 바라보면서 그 씁쓸함 이루 말하기 힘듭니다. (가장 기본적인 말싸움거리 "너희는 성모마리아를 섬기는 것이지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서"란 말입니다.)

전 이런 토론의 문화가 우리 안에서 열심히 성장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 사람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전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예의를 배우지 못한것 같습니다.  또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튼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갑시다. 서로가 서로의 일에서 충실히 살아 가듯이...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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