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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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하느님께서 되찾은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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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3-09-15 ㅣ No.7285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결국은 그분 사랑의 기쁨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라는 거다. 이 비유의 실제 가르침은 당신께 오는 죄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그 넓은 마음을 당신께서 선택한 우리 모두도 기꺼이 따르라는 권고일 게다.  

이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예수님 부활 후 하느님 백성으로 돌아 온 다른 민족 그리스도인으로 이해되고, 큰 아들은 하느님의 명령은 잘 지키지만 예수님과는 적대 관계에 있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들은 율법과 유다의 그 어떤 규정도 지켜 본 적이 없는 다른 민족, 즉 작은 아들이 아무 대가 없이 자신들과 함께 교회에 속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다른 민족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니 그들이 돌아오는 걸 기뻐하라고 가르치는 거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공평히 사랑함을 일깨우는 비유이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ㄴ)’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 곁으로 모여드는 죄인과 세리들을 보시면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준엄하게 꾸짖는 내용이다. ‘하느님은 큰 아들격인 너희 유다 혈통인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였고 또 너희를 위해 내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선물을 하였다.’라고.  

그 큰 아들이 멸시하는 그의 동생 ‘저 아들’을 하느님은 ‘너의 아우’로 바로 잡으셨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방인이라도 한 형제라며 ‘너의 저 아우는 다시 살아났고 내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라고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답하셨다. 외아들마저 보내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이다.  

사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단순히 하느님의 자비로만 생각을 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 아니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그 큰 선물인 예수님을 보냈다.’라는 큰 틀로서 다시 다가온다. 큰 아들이 느끼는 시기나 질투 따위가 이 비유에 담긴 건 아니다.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본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자비가 ‘예수님 오심’이라는 이 엄청난 기쁨으로 다가오면서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 스민다. 정의와 진리가 담긴 성경의 한계는 참으로 그 속을 모르겠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되찾은 아들’인 영광된 자녀로 남기위해서는 항상 그분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세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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