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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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공부보다 더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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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1-25 ㅣ No.5548

아.. 배 고파. 엄마, 뭐 먹을 것 좀 없어요?"

오늘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교에서 돌아온 지연이는

책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어 젖히며 수선을 피웠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먹으면 뭐든지 살로 간댄다. 좀 참지 그러니?"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지연이는 결국 커다란 양푼에 밥을

한 가득 담아 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참기름에 김 부스러기까지 얹어 완성된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 갈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너나 많이 먹으렴..."

딸아이의 저녁 만찬이 계속된 지 벌써 두 달째이다.

전에는 매일 두 개씩 가져가는 도시락도 남겨와서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싹싹 비워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매일 저녁,

한 끼의 식사를 더 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오후 여섯시 이후에는 사과 한 조각 안 먹으려

했던 아이였기에 그런 변화가 더욱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만큼 공부가 고된 것일까.

한창 싱그러워야 할 나이에 밤 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딱딱한

수학공식과 지겨운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딸아이가 애처로워

가슴 한 구석에 뜨거운 것이 밀려들었다.

"엄마, 왜 그래요?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연이가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아, 아니야. 잠시 네 생각을 했어."

나는 얼른 일어나며 딸아이의 가방에서 빈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도시락의 뚜껑을 여는 순간,

작은 쪽지 하나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어머니, 고맙습니다."

쪽지 겉면에 쓰여져 있는 꼭꼭 눌러 쓴 글씨.

분명 딸애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쪽지를 펼쳐 보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지연이 친구인 희정입니다.

그 동안 제 도시락까지 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는 걸

용서해 주세요. 처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저도 언젠가는 나누면서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지연이가 하루에 네 끼를 먹으면서도 오히려

핼쑥해져 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랑스런 내 딸은 학교에서 수학공식과 영어단어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더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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