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묻고답하기 천주교 ㅣ 성경 ㅣ 7성사 통합게시판입니다.

q 지혜의 전부이며 율법의 완성이 ...

인쇄

이정임 [kr3217] 쪽지 캡슐

2013-08-30 ㅣ No.7255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십계명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또 우상을 섬기지 마라.

이런 계명이 있는데요. 어떤 게 더 중요한가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심에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왜 우상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그러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도 안 된다고 하는 그와 같은 계명이 모든 계명의 제일 앞 부분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그 계명의 순서로만 보자면은 살인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인데 그와 같은

일이, 그와 같은 계명의 우선 순위가 그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을까요?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최승정 신부님의 탈출기 강의를 들으면서 신부님께서 묵상해 보라고 화두를 주셨다.

뭔가 아주 의미 심장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십계명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또 우상을 섬기지 마라.

이런 계명이 있는데요. 어떤 게 더 중요한가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심에 있는 것인가요?

 

그 답을 하느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함에서 찾아 보았다.

"주님을 두려워함은 지혜의 전부이며 율법의 완성이 그 속에 있다.

또 주인의 전능을 아는 것도 그 속에 있다.

어떤 하인이 자기 주인에게

'나는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소.' 하고 말했다면

설사 그가 후에 그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를 먹여 살리는

주인은 노할 것이다."(공동번역 집회 19,20-21)

 

"주님을 두려워함이 주님을 사랑함의 시작이며,

주님에 대한 사랑의 시작은 믿음이다."(공동번역 집회 25,12)

 

"주님을 두려워함은 축복의 낙원과 같아서

사람에게 어떤 영광보다도 더 큰 보호가 된다."(공동번역 집회 40,27)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심에 있는 것인가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이 계명이 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계명보다 더 중심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이름은 어쩌면 바로 그 사람과 동일시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분을 함부로 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이름의 주인을 함부로 하지 않고

섬기는 것과 동일시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의미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과 같다고 볼 때,

위의 인용된 집회서의 말씀 그대로,

"주님을 두려워함은 지혜의 전부이며 율법의 완성이 그 속에 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과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사람은 나머지 계명도 자연스레 잘 지키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됨도 알았다.

  

아래 내용은 평화방송 최승정 신부님의 성서백주간 제10회 강의 중에서 옮겨온 내용입니다.

 

예, 하느님의 이름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장소, 이름과 장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장소에 관해서도 우리들이 좀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하느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장소는 엄격하게, 아주 밀접하게 붙어 있는 경향

입니다.

 

* 신명 12,5: 야훼 너희 엘로힘이 그의 이름을 두고 그의 거쳐를 삼으려고,

                   너희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선택하는 곳ㅡ

신앙 성소를 설명합니다.

 

* 신명 12,11: "야훼 너희 엘로힘이 당신의 이름을 머무르게 하시려고 선택한

                    곳"이라고 표현한다.

 

* 예례 7,10-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따라서 구약 성경 안에서는 히브리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어떤 존재와 그 사람의 이름과 그 사람이 머무는 그 집을 동일시 합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다 뭐라고 그럽니까?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라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를 얘기하는 겁니다.

 

따라서 야훼라는 이름이 머무는 집, 그 야훼의 집, 아니면 야훼라는 이름,

야훼라는 하느님의 존재, 이 모든 것들이 동일시 된다는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574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