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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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큰 아들을 위해 태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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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3-09-11 ㅣ No.7276

예수님의 유명한 세 비유를 든 이 루카 복음의 15장은 문제의 제시(1-2절)인 예수님 가까이 모여드는 세리와 죄인, 투덜거리는 바리사이와와 율법학자를 연상하면서 마지막 32절까지 큰 틀 속에서 묵상을 해야 한다.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두 부분(11-24절, 25-32절)이다. 이 두 부분의 ‘아버지’는 하느님으로 ‘자비로운 자세’를 보여주며 그분의 기쁨에 동참하라는 당신의 결론적 권고로 두 부분(24, 32 절)에 잘 나타나 있다.

첫 부분의 문제의 답으로 마무리를 하는 둘째 부분이 이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실제 가르침을 잘 보여준다. 바리사이들에게 하느님의 기쁨에 동참하라는, 당신께 오는 죄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그 넓은 마음을 닮으라는 권고이다.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 비유를 ‘아버지 사랑의 비유’라고 부를 수 있다. 이상이 이 내용의 주석 성경의 요약 부분이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예수님 부활 후 하느님 백성으로 돌아 온 다른 민족 그리스도인으로 비유되고 큰 아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적대 관계에 있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은 율법과 유다의 조상 전통에 따른 그 어떤 규정도 지켜 본 적이 없는 다른 민족이 아무 대가 없이 자신들과 함께 교회에 속하게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이 비유는 다른 민족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니 그들이 돌아오는 걸 기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공평히 사랑함을 일깨우는 비유이다.

 

따라서 31절의 예수님의 이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개별보다는 연결해서 이해되어야 할 게다.

즉, ‘하느님은 언제나 유대 혈통의 큰 아들인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며, 너희를 위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선물을 하였다.’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주석 성경’의 해석대로 ‘31절의 이 내용’은 유산, 상속 등과 같은 큰 아들 작은 아들 같은 속 좁은 가정적인 영역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영역까지로 ‘큰 사랑에 마음을 열라.’라는 촉구이기도 하다.

 

마지막 32절에서 큰 아들이 30절에서 아우를 멸시하는 ‘저 아들’을 하느님은 ‘너의 아우’로 바로 잡으시면서 이방인이라도 유대인과 한 형제임을 밝히시면서 15장의 6, 9, 24절에서 준비된 이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32절)’라는 이 결론이 바리사이들이 투덜거림에 대한(1-2절) 예수님의 대답이다.

 

이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결론은 이방인들도 내가 보낸 예수님 곁으로 모여 따르는데 하물며 내가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인 너희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는 내용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는 이 내용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큰 아들)을 위해 큰 선물인 예수님을 보냈다.’라고 큰 틀의 이해를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외아드님마저 보내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사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단순히 하느님의 자비로만 생각을 하였지만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예수님과 하느님, 죄인과 율법학자,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초대 교회들의 여러 관계를 큰 방향으로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기쁨’을 체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성경의 깊이는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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