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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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 나쁜(?)분, 이상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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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8-03 ㅣ No.122626

 

만약에 말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것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그래도 종교라는 게 필요할까?

물론 필요가 있을 게다. 좀더 잘 살게 해 달라, 좀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해 달라, 아들 낳게 해 달라. 뭐 좀 해 달라...뭐 좀 해 달라 빌어재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 때문에라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종교가 없으면 큰 나무나 돌덩이한테 가서도 그들은 빌어재키면서 그것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만들어 세울 것이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절대로 종교를 가지지 않을 생각이다.

예의 도덕 지키며 세상 법 지키며 사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버겁고 귀찮아 죽겠는데 그 어렵고 힘들고 무서운 하늘나라 법까지 내가 뭐 하려고 지키고 따르려 하겠는가?


아직도 초보 수준이지만 내 믿음이 겨우 여기까지 오는데도 참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다섯 살 때 천자문을 뗀 좋은 머리도 전혀 소용없었고, 10년이나 다녔던 밋션스쿨도 결코

지름길이 되진 못했다.

어릴 때, 내가 예배당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친구들이 가니까 호기심에 따라 간 것이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그냥 학교에서 가르치고 시험치는 과목이니까 배운 것일 뿐이고,

대학 때는 채플시간에 빠지면 따로 종교학 과목 2학점을 취득해야만 졸업장을 준다니까

마지못해 참석한 것이지 아멘, 아멘 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 사이 고등학생 면려회나 기독청년모임 등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몇 차례 마지못해 한 기도는 여기저기에서 얻어들은 풍월로 그저 남의 흉내나 낸 것이고, 끝에 가서는 무조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만 갖다 붙이면 남들이 아멘, 아멘 해주니까 기도라고 생각한 것이지, 그 기도를 통해 나에게 뭐가 이루어진 것도 없었고 이루어지리라고 바라거나 이루어진다는 생각조차도 해 본 사실이 없었으니 그게 뭔 기도인가.


보르네오에 가 있을 때 한국인직원들을 독려하며 모슬렘의 나라에서는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교회 신축허가를 내서 150명이 들어가는 멋진 예배당을 지었을 때도 남들이 못하는 일을 내가 한다는 것과, 내 신명 때문에 한 일이지, 내가 진정 예수님을 느껴서 예수님의 영광을 이방인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40초반에 천주교 개종을 하면서 새로 영세를 했을 때도 입으로는 끊어버립니다. 믿습니다. 대답 하나는 남보다 큰소리로 씩씩하게 잘했지만 그 당시도 말짱 입발림이었을 뿐이었다.

끊기는 뭘 끊어? 믿기는 뭘 믿어? 그때도 내 할 짓은 다했는데.....


그러던 내가 열심히 성당에 다니면서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처럼 내가 갑자기 은총을 받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내 스스로 순전히 남의 눈, 즉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부터였다.

내 행동을 본 다른 사람들이 내가 다니는 천주교회를 욕할까 싶어서 스스로의 행동거지를 조심하면서부터 내가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설령 내가 올바르지 않아서 남들한테서 욕을 얻어먹더라도 나 혼자 먹어야지 가부시끼로 교회와 교우들 욕을 먹일 것 같아서 말과 행동, 매사를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도 내 마음 속에 하느님 눈은 전혀 의식되지 않았고 그저 다른 사람들 눈만 의식했으니 내 믿습니다가 제대로 된 믿습니다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견진성사를 받고 레지오에 입단하면서 굳게 결심한 바가 몇 가지 있었다.

앞으로 주일미사만큼은 절대로 궐하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미사는 참석한다.

또한 주일날만은 가급적 거룩하게 보낸다. 무슨 수가 있어도 주일날에는 십계명에 나오는 죄는 절대로 짓지 않는다는 결심이었다.


그 후 9년 동안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단 한번도 주일미사를 궐한 적이 없었다.

업무 차 자카르타에 갔을 때도, 토쿄오에 갔을 때도, 상을 당하여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도,

아들 면회하러 전방에 갔을 때도, 여름휴가로 피서지에 갔을 때도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서 생쥐 꼴을 해서 참석했어도 주일미사만은 한번도 궐하지 않고 만9년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1년만 더해서 10년을 채우려 했는데 처음으로 중국연변을 가서 그날이 하필이면 처음으로 백두산 올라가는 날이어서 그만 땡이었지만 만9년 7개월...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 때부터인가 확실치 않지만 내 부족한 믿음이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 믿음은 두려움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그 말씀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된 것이었다.

남들은 성경말씀이 귀에 들어오면서부터 기쁨이 찾아온다던데 나는 원칸 죄를 많이 지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른 사람하고는 전혀 다가오는 방법이 달랐다.

경외심.....두려움......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오묘함 속에서 하느님 손길을 느끼면 그 순간 내 몸이 오싹하거나 부르르 떨렸지 누구처럼 찬미하고 노래하고 나는 안 그랬다.

솔직히 말해서 겁부터 덜컥 났다. 소름이 끼칠 때도 많았다.

하느님 앞에 벌거벗은 내 모습, 내 마음 속까지도 다 보시는 하느님이 불쑥 나타나는 것 같아 그분 앞에서 나는 늘 속이려 만 하고 심지어 고백성사 드린다고 고백실에 들어가서까지도 내 죄를 감추거나 거짓말을 해재킨 내가 겁을 안 먹으래야 안 먹을 수 없는 처지였으리라.

그 순간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두 눈 딱 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거나 앉아서 침묵하면서 하느님 현존을 느낄 때마다

‘네가 비록 개망나니 짓을 해도 나는 너를 보호해 주려고 항상 네놈을 지켜보았다 이놈아! 예이 나쁜 놈아!’하시는 음성이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 같아서 나는 더욱 더 겁을 먹었다.


그때부터 나는 텅 빈 성당, 성체 앞에 혼자, 또는 남들이 안 보는 숲 속에 혼자, 때로는 기차를 타거나 승용차로 달려가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혼자, 철저히 혼자일 때 내게 다가와 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아내와 처제(?)를 따라 꽃동네에 가서 남들은 모두 철야기도에 들어가고 나 혼자 차에 남아 초롱초롱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도 그런 경험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차츰 그런 느낌에 맛을 들여가면서 때로는 그런 순간이 갑자기 그리워질 때 나는 과감히 일상을 떨쳐버리고 철저히 혼자가 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부터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레지오를 하면서 연도를 다니면서 걸핏하면 연도에 나오는 말인 “심판 날에” “심판 날에” 그 말을, 골백번을 더 되뇌었어도 ‘심판 날’을 실감치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죽음과 나의 심판 날이 눈 앞에 떠올랐던 것이다.


죽음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애벌레가 자라서 성충이 되었다가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는 것 그것이 죽음이란 것일까?

내 호흡이 끊어지고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길. 반드시 죽음 뒤에 오는 것이 또 있을 것이다.

그 애벌레가, 제가 자라서 나방이가 되어 날개 짓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 죽음, 내 영혼, 내 부활..........어렴풋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들의 실체는 아직도 미궁 속이고, 지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영혼만의 세계, 영계가 있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그때부터 나는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성경말씀, 이 말씀 진짜 건성으로 들을 말씀이 아니다. 악쎄서리 걸치듯 할 신앙이 아니다. 내가 달라져야 한다. 정말로 내가 이런 식으로 잘못 살다가는 어느 순간에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 육신이 죽고 내 영혼이 저 지옥 불구덩이에서 아무리 울며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회개도 육신으로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그런 깨우침이랄까 그런 느낌이 오는 것이었다.

죽음을 느끼고 심판 날을 느끼면서부터 내 신앙이 차츰 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내 나이 탓도 있으리라.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이 너무 짧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욕심을 부려본들 허탕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 체험하면서 내 욕심을 줄인 것도 내 믿음을 바로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사에 참석하면 다만 편안함만을 느낄 뿐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내 믿음은 다른 이에 비해 많이 부족한 믿음일 뿐이다.

그래도 때로는 신부님 좋은 말씀에 눈물이 글썽거려지고, 아멘, 아멘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내 입속에서 저절로 튀어 나올 때,

“이렇게나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하는 생각은 들어도 아직까지도 그 행복감이 커다란 희열로 뜨겁게 다가오지 못한다.

아마도 나에게는 아직도 두려움의 존재가 더 커서일 것이고, 그 두려움의 원천은 내 욕심이요 내 욕심 때문에 파생되는 죄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쩌겠나, 부족한 걸, 태생이 그런 것을.....

다만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속에 그저 열심히 신자로서의 내가 할 도리를 다하며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동안 굿뉴스에 제법 그럴 듯한 글을 써왔기에 남들이 이처럼 부족한 고백을 내게서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에 비하면 비록 많이 부족한 믿음일지라도 이만큼이나마 믿음의 맛을 들이는 데도 나에게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남들은 쉽게도 믿고, 쉽게도 그 믿음에 심취해서 

“믿음이란 은총이며 축복이다. 내가 그분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다.”하며 오히려 오래 된 나를 설득하려 들던데 왜 나는 이런 식으로 다가올까....??

마치 남들은 지름길로 가는 것 같은데 나는 미련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남산공원 계단을 걸어 올라가듯 아주 어렵고 힘든 걸음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

 

내 교만 때문이리라, 내 위선 때문이리라, 때로는 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때로는 주님마저도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특히 나를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왕년의 동서울터미널 소매치기 두목 H란 녀석이 갑자기 신자가 돼서 제 몸뚱이를 나한테 내 보이며 간증을 했을 때,

내가 그때 얼마나 주님을 원망했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세상에, 남의 주머니를 터는 상습소매치기한테도 그렇게 쉽게 오시는 분이 내가 평소에 뭔 잘못을 그렇게 크게 했다고 나한테는 왜 그렇게 오시지 않느냐고.........

더구나 그 녀석을 내가 너무 잘 알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전에도 굿뉴스에 한번 올린 적이 있지만 그는 동서울터미널을 무대로 한 소매치기두목이었다.

그녀석이 가래침에 피가 섞여 나와 병원에 갔다가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방황하다가 당시 동서울호텔 맞은편 공터에서 어떤 전도사가 하는 부흥회에서 쿵짝쿵짝 하는 노래 소리에 이끌려서 구경삼아 거기를 갔는데(그것도 일(소매치기)도 겸해서 갔다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가난한 시골집에서 가출을 하여 험한 인생길을 살아온 자신의 지난 과거사를 돌아보며 회한에 젖어 눈물이 나는 순간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빛이 번쩍하며 자기 몸속으로 팍! 들어왔다 나가면서 잠깐 동안 혼절을 했다고 했다.


나중에 깨어나서 가슴이 쓰라려 옷을 걷어붙이고 보니까 앞가슴에 커다란 검은 원이 그려져 있었고, 뒷등다리에 또 까만 작은 원으로 반점이 나 있어 빛이 앞으로 들왔다 뒤로 나가면서 폐암이 말끔히 나았다고 하며 위 셔츠를 벗어 자랑스레 앞 뒤 맨몸을 틀며 그 흔적을 보여주고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여 나를 살리시고 내게 믿음의 은총을 주셨다”고........ 내게도 여러 사람에게도 큰소리로 간증을 하며 다녔던 녀석이다.

처음 그 말을 듣고 그 상처(흔적)을 보면서 내가 하느님한테 얼마나 성질이 나든지

“야. 짜샤, 구라 치지 말어. 넌 군대도 안 갔다 왔냐? 총알이 들어갈 때는 작게 들어가서 나올 때 크게 나오는 거야, 이 상처는 앞구멍이 크고 뒷구멍이 작잖아? 넌 빛이 앞으로 쾅 들와서 뒤로 나갔댔잖아? 거짓말을 해도 짜식아. 좀 이치에 맞게 해라 응?”하며 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하며 안 받아들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병이 나았고 지청장이 그에게 상을 주었을 정도로 그 후부터는 동서울터미널에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그곳에만은 소매치기 범죄가 얼씬 못하도록 하는데 앞장을 섰던 전설적인물이다.

녀석이 의리도 있고 본판은 좋은 눔이긴 하지만 그런 나쁜 짓을 한 녀석한테는 한 순간에 쾅 하고 오신 주님이 내게는 이렇게도 오랜 기간 뜸을 들이며 오시다니.....!!


그러나 주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내 머리속에는 다섯 살 때부터 할머니 손을 붙잡고 절에 다니며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며 우리가족 우리형제 이름을 줄줄이 불러주었던 기억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꼭 그래서 만이 아니겠지만 내 씨앗은 비옥한 땅에 떨어진 씨앗이 아니라 길바닥에 떨어졌거나 자갈밭에 떨어졌거나 원죄의 앙금이 질펀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었다.

오히려 이나마, 나를 그곳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또한 씨를 발아시켜 자라게 해주시고, 항상 포기하지 않으시면서 빛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신 나의 주님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일생동안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이시고 찬미를 드려 마땅하실 분이시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지 못하였으며 하느님이 진짜로 계실까, 죽음 뒤에 저 세상이 과연 있을까 그런 의심이나 했으며, 또한 살아오면서 시기와 중상, 음탕, 도박, 다시 말해서 온갖 죄종에서, 또한 온갖 유혹에서 멋모르고 빠져 헤맸다.

어쩌면 소매치기 그 아우보다도 내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내가 더 악하고, 더 미련하고, 더 게으르고, 더 의심이 많아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너무 오래 지켜주시노라 오히려 더 힘겨워 하시며 더 굇씸하게 여기셨을지 모른다.

 

씨앗이 먼저 떨어졌다고 해서 발아가 쉽게 된 것이 아니었으니 이 모든 잘못은 주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 반성하며 또한 내 씨앗이 바람에 날아가거나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적당히 썩어 내 믿음의 생명이 발아가 된 것만 해도 큰 은총이요, 이토록 자라게 해주셨으니 더욱더 큰 은총을 베푸셨음이라 여기며 나는 오늘도 거북이걸음으로 한 발짝 두 발짝 주님께로 차츰 다가갈 뿐이다.

 

아빠 아버지 하느님은 내 평생을 통하여 좋은 분이셨다. 그러나 때로는 나한테 대따 나쁜 분, 때로는 대따 이상한 분으로 여겨지셨다는 것을 그분께서도 소상히 알고 계실 것이다.

주님. 이 불쌍한 죄인이 하루하루, 더욱 주님 가까이 나아가도록 보살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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