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하면 다 ‘좌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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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12-05-24 ㅣ No.876

                                                반대하면 다 ‘좌익’인가






<태안신문> 10일치(1026호) 19면 ‘백화춘추’난에 게재된 최문환 시인의 <좌익(左翼)>이라는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반론 성격의 글을 쓰기는 좀 부담스럽지만, 최 시인의 글이 중대한 오류를 지니고 있고, 또 3일치(1025호)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내 글 <‘마법의 성’ 안에 갇힌 사람들> 안의 제주해군기지건설 관련 부분에 대한 ‘반론’인 것도 같아서 굳이 몇 자 적기로 한다.    

최 시인이 새의 양 날개 중 한쪽인 ‘좌익’을 굳이 글의 제목으로 설정한 것은 대칭적 개념, 즉 우익의 시각으로 좌익을 논한다는 점을 노출시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양 날개의 필요불가결한 균형을 강조하는 논법은 아무런 무리가 없다.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보편적인 일반론이다.

일찍이 리영희 선생의 저서 <새는 양족 날개로 난다>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이후 양 날개로써만 가능한 균형과 중심과 조화에 대한 고찰은 건강한 사회상식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을뿐더러 보수와 진보 따위 용어도 옳게 보지 않는다. 그런 용어들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하고, 때로는 혐오감을 갖기도 한다. 내가 그런 말들을 사용하는 순간 ‘편 가름’의 시각이 작동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 내 안에는 보수적인 가치관과 진보적인 가치관이 혼재해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보수적인 시각과 진보적인 시각을 융통성 있게 취할 수 있으므로, 어느 사안에 대해서도 대칭적인 용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적인 가치관을 불온시하거나 적대적인 눈으로 보는 것에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더욱이 민족을 배반하고 박해했던 친일세력과 독재 권력에 봉사했던 반민주세력이 보수 또는 우익의 탈을 쓰고, 자신들의 출세가도와 입지를 위해 대칭적인 용어 사용과 적대감 따위를 극대화시키는 현상에는 큰 우려와 슬픔을 느낀다.

이 기회에 또 한 번 천명하건대 나는 늘 진실과 정의를 중시하며, 작가적인 양심과 상식과 합리의 기반 위에서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 한다. 또 천주교 신자로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제시한 바대로 나는 좌도 우도 아닌, 그리스도 측 사람으로 살고자 할 따름이다.



 ▲ 강우일 주교 / 제주 강정마을 해군(미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하며 강론을 하고 있다.  
ⓒ 천주교 제주교구청 - 제주 해군기지

그래서 제주해군(미군)기지 건설 문제도 그리스도 신앙의 눈으로 보고자 한다. 최문환 시인은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분별없는 좌익의 일방적 반대”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너무 일방적인 생각이고 자의적인 용어 사용이다. 제주도 해군(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들은 결코 막무가내도 아니고, 분별없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것도 아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한정된 지면에 수많은 이유들을 일일이 제시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 최 시인이 거론한 한 가지만 말해보자.

최 시인은 “원유 수입통로인 제주도”라는 표현을 썼다. 원유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논법이다. 그렇다면, 원유수송로가 제주도 해역뿐인가. 우리 영해에 속한 원유수송로를 외국(중국) 해군이 침범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우리 영해 밖의 원유수송로까지 우리 해군이 출동하여 엄호해야 한다는 말인가.

가령 중국 영해 혹은 공해상의 원유수송로를 어떤 분쟁에 의해 중국이 봉쇄하기라도 한다면 우리 해군이 출동하여 전투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 중국과 전쟁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바람직한 일이며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가.

매우 협소한 시야와 단견을 노출하고 있는 최 시인의 글 맥락 속에는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좌익이고, 좌익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말해두고자 한다. 좌익이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고 무조건 좌익인 것은 결코 아니다.


*<태안신문> 2012년 5월 24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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