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새누리당 대권후보인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강정마을을 찾았다

[제주도민일보 이상민 기자] 지난 26일 새누리당 대권후보인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강정마을을 찾았다. 현 정부 들어 여당 대권 후보가 강정마을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정주민들은 “찾아줘서 고맙다" 또는 "왜 이제야 왔냐” 등등 반가움과 원망 섞인 하소연으로 그를 맞았다. 간담회에서는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 전 실장은 “기가 막히다, 죄송하다”는 말로 심경을 전했다.

△ 우린 진보도 보수도 모른다
임 전 실장은 26일 오후 1시20분 강정마을회관을 찾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강동균 마을회장, 고권일 반대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마을주민 30여명이 참석했다. 임 전 실장은 마을에서 제작한 해군기지 동영상을 시청한 뒤 고권일 위원장으로부터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논란들을 전해들었다. 어어진 주민들과 대화시간에선 지난 5년간의 섭섭함과 울분이 터져나왔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다”며 “국책사업을 하려면 지역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정부측에서) 누구 하나 와봤냐, 공식적으로 우리 주민들에게 얘기해주는 사람 한번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어 “(해군기지 부지를) 처음에는 화순으로 정해놓고 화순 지역사람들이 반대하니까 위미로 바꿨다가 또 다시 강정으로 바꿨다. 이게 말이 되느냐”며 입지 선정이 졸속으로 치러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강 회장은 정부의 소통 부재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청와대에 우리얘기가 한번 전달됐나. 그냥 해군에서 작성한 보고서만 올라와있는 거 아니냐”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주민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공사를 진행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정주민들이 종북좌파로 매도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선 노기 어린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주민 K씨는 “좌파세력이 있는 곳에 해군기지 만들어도 되나”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 강정을 방문한 것이 상당히 섭섭하다”고 말문을 연 주민 H씨는 “왜 우리가 종북좌파로 비춰져야 하나. 우린 진보, 우파 모른다. 김일성 추종자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한스럽다”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주에 왔을 때 기대했었다. 한번이라도 강정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 줄 알았다”며 “마을엔 오지도 않은채 해군기지가 감귤산업과 맞먹는 신성장동력산업이 될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해군기지가 감귤산업처럼 한해 7000억원을 벌어다 줄 수 있나. 대권주자로서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고 가버렸다”고 꼬집었다.

H씨는 “국가권력이 왜 강정주민 1000여명을 설득하지 못하냐. 정부는 해군기지 찬성하는 주민들이 더 많다고 얘기하는 데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하라”며 “찬성 비율이 51%만 나오면 반대 투쟁 바로 그만 둔다. 그런데 왜 정부는 주민투표 안하나. 말이 안된다”고 쏘아붙였다. 이밖에 주민들은 “강정마을이 전과자 마을이 돼버렸다” “부모 형제도 등돌린고 산다” 등등 그동안 마음에 쌓였던 한(恨)을 실타래처럼 풀어놨다.

△“기가 막히다”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왜 일이 여기까지 왔나. 기가 막히다”며 “여러분들의 마음이 정말 상하셨을 꺼라 생각된다”고 공감을 표했다.

임 전 실장은 “현직에 있을 때 세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마 장관들도 (주민들의 이야기) 모를거다”며 “여기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 확답은 못하지만, 대통령과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 여러분의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해군기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주민들의 지적을 수용했다.
그는 “미항이 됐든 해군기지가 됐든 정부에서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쳐서 죄송하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애국심을 발휘해달라’고 설득하고 또 충분한 피해대책을 제시했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는 것에 대해 정말 깜짝놀랐다. 불신이 이어진데는 해군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부 찬성세력에서 주민들을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등 색깔공세를 펼치고 있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임 전 실장은 “앞으로 종북좌파 이야기만 나오면 제가 분명히 해결하겠다”며 “이 문제는 니편 내편 가릴 게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필요하면 다시 강정마을을 찾겠다”고 말한 뒤 2시간 가량 이어진 해군기지 반대주민과의 대화를 마쳤다. 임 전 실장은 이후 찬성측 주민과의 간담회를 가졌지만, 찬성측에서 취재 거부의사를 밝혀 이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찬반 양측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 실장은 이후 제주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공사중지를 해야되지 않냐는 질문에 임 전 실장은 “국책사업에 대해 중단이냐 아니냐가 이슈가 되면 또 다른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갈등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좀더 논의해야 한다"고 밝혀, 공사 중지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