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글이야 어쨋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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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totoro] 쪽지 캡슐

2000-04-19 ㅣ No.681

뭐...  성염교수님의 글(표현된 단어들)에 문제가 많은 것은 여러분들이 다 앞서 지적했고...

 

그 내용을 보자면...  공감할 부분도 있는데...  반박할 부분도 있다는 것...

 

우선 아시아의 선교에 있어서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라는 책이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제사문제는 잘못된 선교지침때문에 벌어진 것이였다기보다는 당시의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이 탈 신화화되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어려우니까 쉽게 풀어애기하자면...

마테오 릿치가 천주실의를 저술하기 위해서 받아들였던 유교의 신관은 인격적인 ’천’ 사상 즉 ’상제’ 혹은 ’상제천’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인격신으로 드러나는 야훼와 비견될 수 있는- 신관이었습니다(이것은 상고시대 -하,은,주- 의 천관입니다. 옛날 이야기죠...).

그러나 당대에 있어서는 하늘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기보다는 역리천(태극에 의해서 이해되는 우주로서의 천)인 동시에 자연천(유물론적인 이해로서의 천)인 존재로 보려는 경향이 짙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교의 제례는 사람이 하늘의 신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내어맞긴다는 뜻보다는 자연에 합치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땅이 워낙 넓다보니 다양한 종교적 행위들이 상존합니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도 유교를 종교로써 보기도 하고 철학으로써 보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에 눈에는 그 모든 제례적 행위들이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교의 제사와 종교성의 문제는 지금도 유교 자체 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야기하면 어지러우니까...  핵심만을 말하면...  그리스도교는 유교라는 문화에 토착화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천 이외에 역리천, 자연천 등은 지금의 신학에서도 토착화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사문제가 잘못된 선교정책에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제 매우 희박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것이 제1원인으로써 작용한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유교 자체의 복잡다단성에서 기인했다고 하는 점이 더 옳습니다.

 

뭐 예수님의 자의식부분의 설명이 잘못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구요...

(불트만의 신학이 실패한것 다 아시죠?  아직까지 그런...  뭐 그런 접근이 아니셨을수도 있습니다만...)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성이 매우 특수하시다는 것 아시죠?

일제 강점기, 미군 군정기, 군사독재기,

이 모든 것들에 교회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대조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의회 이전 옛 교리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완전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순례자로서 사회적 실재 안에 여전히 매여있는 존재로서의 교회입니다.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때 실랄한 비판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교회는 세속에 있는 동시에 세속을 초월해 하느님 나라를 지향한다.

물론 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 발전에 끼쳐온 긍정적인 부분도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세는 암흑기라 칭해졌습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야만 게르만족에게서 지켜낸 것은 중세 수도원이었습니다.

십자군 원정이 없었다면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대신 유럽대륙은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겠지요...  또한 아라비아의 앞선 문물이 교류되지 못했겠고...  지금의 문화보다 훨씬 뒤떨어진 모습으로 있게 되겠지요...

교회법이 없었다면 로마법의 위대한 체계는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분명 천상적 실재와 지상적 실재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는 분명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언제나 강조하지만...

믿음이 빠진 채인 순수 역사비판의 신학은 실패합니다.

학자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이지요.

우리가 사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학에 믿음이 없다면

신학은 그저 종잇장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모든 잘못과 한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다가오셨다는 것을 잊지 않길 빕니다.

 

물론 성염 교수님 글의 논지는 교회가 반성할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성숙되지 못한 관심끌기식이였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수님의 글이 매도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희년을 맞아 시기 적절한 제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학자다운 날카로운 지적을 잊지 않으신것 같습니다.

성염교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충분히 전달된듯 합니다.

아울러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교회가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도 적절한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비겁자 나 자신 역시 심판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문책이 아니라 자아비판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로 나가는 화해의 대희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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