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제주대학교 '열린문화광장'에서 시인 고은이 '공간과 언어'에 대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그는, 강연 말미 '제주해군기지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정에는, 강정만 있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변상희 기자 yellow003@

[제주도민일보 변상희 기자] 분통에 가까운 호통이었다. 시인 고은은 제주와, 또 다른 그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강정에는, 강정만 있어야 한다!”

지난 2일 오후 2시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마련된 ‘열린 문화광장’에서 시인 고은은 강연 말미, 기자의 해군기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말할 필요가 없다. 제주도가 입에 달고 다니는 평화라는 그 말은 의미가 없다”며 제주해군기지 사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갑자기 터져나온 그의 격앙된 목소리는 강당을 채우며, 일순간 정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인 고은은, 강정의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듯 눈을 치켜세우며 “평화라는 말은 외톨이가 아니다. 그것은 온 몸을 바쳐야 이룰지 말지 하는 그런 것이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제주도는 적어도 (해군기지가 있는 일본의) 오끼나와의 현실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며 “제주도의 운명은, 지금 당장의 이익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정마을에 몰아친 지금의 사태를 꼬집었다.

제주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제주도는 4.3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자신들의 삶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며 “제주의 앞바다 뒷바다에 핵잠수함 같은 그런 것이 오면은 (4.3의 상징인) 동백꽃이 진다”고 깊고 침통한 목소리를 울렸다.

또 그는 “이 사태가 악화되면, (제주에 몰려오고 있는) 중국손님들 동남아로 가버릴 것”이라며 제주도가 좀 더 큰 안목을 갖고 제주해군기지 사태를 해결하기를 주문했다.

한편 이날 시인 고은은 제주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간과 언어’에 대한 강의를 전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언어의 의미, 그리고 언어가 분단과 분열의 공간을 어떻게 합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9년 연속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강연 시작 전, 대기실에서 지었다며 ‘한라산’ 제목의 시를 읊기도 했다.

-한라산 (고은)
한라산은 제주도 밖에서 제주도에 건너온 사람들이 바라본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사람.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
제주도 흙에 묻히는 사람은,
한라산을 바라보지 않는다.
제주도 사람이라면
한라산은 저기에 있지 않고
제 마음 속에 있다.

제 마음 속에 깊이 깊이
한라산은 잠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