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누가 누굴 보고 ‘폭력’이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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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21 ㅣ No.6484

 

누가 누굴 보고 ‘폭력’이라 하나



의사가 환자의 몸을 수술하는 것도 그 행위 자체는 상해(傷害)에 해당한다. 강도가 행인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강도의 상해는 형사처벌을 받는 반면 의사의 수술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치료를 위해 의사가 칼을 대는 것은 합법적이고 업무상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군인이 전쟁에서 적군을 살상(殺傷)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행위자가 누구냐,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냐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불법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의 공권력 행사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경찰관이 개인적으로 총기 등 무력을 사용하면 불법이지만 범인 체포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선 허용된다. ‘힘’이란 면에서 경찰의 공권력과 시위대의 폭력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공(公)을 위해 쓰느냐, 사(私)를 위해 쓰느냐에 따라 둘은 대비된다. 물론 공권력도 지나치면 ‘과잉진압’이 되어 사회적 비판과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두 달 이상 계속되면서 공권력과 폭력을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시위 주도 단체와 시위대는 처음부터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폭력’이라며 시비했다. 촛불시위를 조장 선동해온 일부 신문 방송 역시 시위대의 폭력은 감추고 경찰의 대응만을 의도적으로 클로즈업했다. 국민의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생활과 사회질서를 깨는 불법시위에 대해 무력진압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불법 집회 시위로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천주교 일부 사제들의 촛불시위 참여와 경찰의 도심 점거 원천봉쇄로 한때 주춤하던 폭력시위가 지난 주말부터 다시 살아날 조짐이다. 쇠파이프와 각목, 망치가 다시 등장하고 차도 점거, 전경 폭행, 경찰버스 파손 등 과격 행동이 재연됐다. 경고방송과 물대포 사용에 그친 경찰에 대해 시위대는 물대포에 최루탄이 섞였다고 트집 잡아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됐다. 이를 굳이 아니라고 해명한 경찰도 구차스럽다. 물대포와 최루탄 사용은 불법도 폭력도 아니라고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쏴 시위 참가자를 붙잡겠다는 방침은 또 어디 갔나.


그동안 경찰은 460여 명이 다치고 전경수송 버스 170여 대가 파손됐다. 차도점거 시위로 수많은 시민들에게 끼친 차량통행 불편과 치솟기만 하는 유가(油價)의 추가 부담은 어찌할 건가. 인근 기업 및 상점들도 영업에 지장을 받아 아우성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의 잔디가 시위대의 발에 짓밟혀 거의 죽는 바람에 서울시는 시민 세금을 들여 최근 다시 잔디를 깔았다.


이런 반(反)사회적 행동에 대해 끝까지 법적,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시위대의 정권퇴진 운동을 위해 국민 다수가 피해를 참고 견딜 수만은 없다. 그들은 대의(大義)를 위한 행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들만이 애국을 하고 있는 양 착각하는 오만의 극치일 뿐이다. 더욱이 폭력시위로 정권 퇴진을 관철하겠다는 발상은 혁명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말 다수 국민이 이 정권의 퇴진을 원한다고 믿는다면 평화적 시위를 통해 지지를 넓혀가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폭력시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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