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눈 쌓인 저잣거리 다시 찾았네 ♬ ~ 32처 (춘천 교구/홍인 레오 순교터 1차/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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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3-02-17 ㅣ No.102163

2021.09.02...첫 번째 (지금은 썰렁한 저잣거리로세~)


이미 지난주부터 "형님! 토요일 오후엔 꼭 시간을 비워서

식사라도 해야한다"며 여러 벗들이 이구동성으로 축일 잔치에

초대를 한다고 코로나 시대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약속을

잡았다고 하는 할배의 왔다갔다 하는 마음에...

 

"그라모~ 그날은 가까운 성지라도 다녀오입시더~"

하고 오늘 토요일 아침엔 포천성당과 구포천성당~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홍인(레오) 두 부자 복자순교자의

순교터와 일동의 이벽(요한 세례자)의 묘와~ 장흥의 남종삼(요한)

장흥의 황사영(알렉시오)의 묘 까지 두루두루 순례의 기도를

마치고 5시경 집에 도착했다.

 

60-80킬로 의 편도거리 밖에 안되고, 근처근처의 성지자리라서

그런지 약속 시간에 얼추맞게 돌아올수 있어 또한 감사드린다.

성지순례를 시작하던 6개월 전만해도 이름있고, 우리모두에게

잘 익혀진 성지만 순례해도 시간이 모자랄것 같아 ***의 묘.

***성당. 의 성지명은 별반 관심도 없이 통과~ 통과! 했었는데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여섯달이 지나가는 지금에는

산골짝 산골짝, 외딴곳에 이름없는 무명의 주검이 되어 잠든,

신앙을 위해 초개같은 목숨을 바친 순교성인들의 묘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드리는 기도야 말로 참 영혼의 기도임을 알아 가게 되었다.

 

하여, 지금은 통과 통과로 가벼이 넘긴 그분들의 묘를 찾아

산골짝 기슭 언덕을 오르고 오른다.

 

홍교만. 홍인의 순교현양비와 묫자리가 있는 그옛날의 저자거리는

지금은 옆으로 포천경찰서와 포천 소방서가 자리하고 있다.

 

권일신, 권철신과 고종사촌간의 홍교만(프,하비에르)는 자연히

천주교리를 먼저 알게되었고, 또한 정약종의 아들 정철상은 사위였다.한다.

교리는 아버지가 앞서 알게되었지만 아들 홍인.레오가 먼저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했다한다.

또한 주저하는 아버지를 입교시켜 두 부자는 주문모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포천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신앙을 널리 전파했다 한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아버지 홍교만은 체포되어 서울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당하고

아들 홍인은 10개월간의 온갖 고초와 고문을 당하다가 포천 저자거리(지금의 묫자리)

에서 참수되었다 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광화문 시복식에서 두사람 모두 복자로 시성되어

포천 믿음의 후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선조로 남아있기에..

오늘 포천성당 안 높이높이 벽에 걸린 두사람의 초상은 믿음의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준비된 하늘나라를 안내라도 하는듯 하다.



 

2022.12.31.두 번째 (눈 쌓인 저잣거리 다시 찾았네)

 

의정부 주교좌성당을 출발하여 11시 45분에 도착한 포천순교성지엔 아직도

녹지않아 사방이 하얀 눈밭을 이룬가운데 길손하나 없이 썰렁하게 섧웁다.

이 분들이 살았던 그 시절엔 이곳이 온 고을 사람들이 들끓는 저자거리였으며

가까이 살던 고향집에서 두루미 엮듯이 끌려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쌓인 버선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 시절 조선의 박해속에 머무신 성령께선 어떤 모습의 기운으로 이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까지 내놓으며 천주님을 그리워하게 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성령의 기운도 등급이 있을까나?... 의문스런 초보의 믿음 사람이 되어버린다.


포천 한내천 순교터... 포천시내를 가로지르는 한내천..

그 주변으론 포천현 관아가 있었고 현재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서와 소방서 들

관청이 밀집해 있다.


신유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다른 지방의 신자들이 포천 지방으로 옮겨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복자 홍인레오의 집안은 한양의 이름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부친인 복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경기도 포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성장했다.




아들 홍인 레오는 1801 부친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당시 부자를 함께 처형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홍인 레오는 포천으로 이감되어 약 10개월 뒤에 포천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잣거리에서 순교하였다.

부친인 홍교만은 이미 먼저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뒤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까지도 담장도없는 길가의 순교터로 남아 아직도 오다가다 지나쳐

가버릴 듯한 곁눈질 장소로 남아있는게 많이 미안스럽고 죄송하다.

발 시리고 추운 바쁜 일정을 핑계로 빠른 걸음으로 돌아나올수 밖에 없는 아직도 한심한 ?

리노할매 이다.




이벽순교자의 묘를 찾아 달리던 중 "잠깐~ 잠깐!" 할배의 급정거에 살펴보니

저어쪽 귀퉁이 작은 글씨로 달려있는 '레오감옥터' 라는 팻말.

"뭐꼬?....각본에도 없던 감옥터는 .... 눈밝은 리노할배의 눈에 딱 걸려버린

작은 팻말 하나가 또 우리의 발걸음을 좁은골목 산길로 오르게 한다.




고향땅 저잣거리에서 참수당하기전 얼마동안을 갇혀있던 감옥터가 바로 근처

관아터라고 표시된 곳에 역사의 한 증거로 앉아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기다리며 그날의 레오 순교복자의 심경을 헤아려 보며 두려워 하지마라~

신 주님의 말을 떠올린다.






역시 두번째로 순례길 다니니까 세세하게 전에 놓쳤던 것들을 다 보고 깨달을수

있게 묵상과 감사의 은총을 열어가시는 우리 성령님께 오늘도

감사의 마음 전하며.....



 + 주님! 오늘도 본향을 향하여 가는 길,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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