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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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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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희 [kohthea] 쪽지 캡슐

2012-04-10 ㅣ No.584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강압은 우리를 분열과 다툼, 시기와 질투, 경쟁과 승리 같은 세속의 법칙 아래 묶어두려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것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재촉한다. (2코린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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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의 고통이 우리를 재촉하도다
                                                      - 월간  사목정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

 농촌의 저녁은 어둡다.  밤에도 눈부신 도시의 화려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그날도 농사를 마치고 기분 좋은 피로에 물든 마을 사람들은, 누구는 이른 잠을 청하고 또 누구는 끼리끼리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을 테다. 할 일없이 TV를 틀어놓고 청소며 설거지 같은 집안일들을 마무리 하는 것은 그날도 농촌 아낙들의 몫이었을까.

 노란색 가로등 빛살들이 마을 구석구석까지 가 닿지는 못하던 그 어둑한 길을 가로질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을 회관으로 모여들었다. 평소의 마을 분위기와는 다르게 약간의 긴장감마저 흘렀다. 회관 밖에는 아까부터 기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출입이 허락되지는 않았다. 닫힌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비밀의 냄새는 그들의 취재 기질을 더욱 자극했으리라.


 86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었다. 제시된 주요 안건은 ‘해군기지 관계의 건’(결코 ‘해군기지 유치의 건’이 아니다!). 제주도에 살면서 2002년 해군기지 최적지로 선정된 화순항이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3년 뒤 위미마을에서조차 반대에 부딪쳐 해군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귀머거리에 눈 봉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 해군기지가 어쨌다는 말일까? 다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두고 무슨 별나게 할 말이 있어서 임시총회까지 열고 사람들을 모았을까?

 누구도 그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마을 회장이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생기게 될 이익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했다. 회의는 투표도 하지 않고 ‘해군기지를 유치하자’는 쪽으로 흘러가더니, 난데없이 유치 의견에 대한 동의를 박수로 마무리 짓는 일이 벌어졌다. 사안의 중대함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4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마을 원로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발언할 수조차 없었다. 마을의 상당부분이 상수원 보호구역, 유원지로 묶여서 마을에 발전이 없다는 피해의식이 너무도 강했다. 거기에다 농업 종사자가 대부분인 마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타결이후 생긴 불안이 한 몫 거들었다. 무엇이라도 들어와야 마을의 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걱정 어린 마음들이 제주해군기지 사업을 낚아챈 것이다.

 2007년 4월 26일 저녁 7시 30분부터 1시간 10분여 동안 진행된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임시총회는 그렇게 끝났다. 강정마을에는 1,900여명이 살고 있었고, 유권자는 1,500명가량 되었다. 그들 가운데 기껏해야 86명이 친 박수가 지금 온 나라를 흔들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머릿돌인 셈이다.

 사업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던 해군에게는 기적 같은 돌파구였다. 사업 유치를 빌미로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적극 끌어내려던 제주도정은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을 총회 다음날인 2007년 4월 27일 마을 회장을 비롯한 해군기지 유치 찬성측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공식 발표하자,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김태환 당시 도지사는 5월 3~4일과 11~12일 두 차례의 여론조사를 통해 서둘러 강정 마을을 해군기지 사업부지로 선정했다. 도지사는 ‘민주적으로 도출된 합의사항이자 결정사항’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전체 주민투표가 아닌 도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 그것도 강정마을 주민은 103명밖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로 - 사업추진의 결정적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1억원대 여론조사 비용의 편법운용, 서로 다른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 도의회 사전심의와 여론조사 재위탁 금지 조례 위반, 계약서 없는 용역 위탁, 여론조사 결과 검수 작업 전 요약 보고서를 토대로 한 도지사의 발표 등에 이르기까지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방법과 내용, 절차적 정당성 차원에서 수많은 의혹과 조작 혐의가 제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군 또한 강정마을 찬성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 백 만원 어치 ‘향응’을 수시로 제공하며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공작’을 치밀하게 전개했다. 그들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유치문제에 대해 주민갈등을 해소하고 주민 모두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총회를 열려고 하자 이를 문제에 대해 주민갈등을 해소하고 주민 모두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총회를 열려고 하자 이를 공무원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마치 여기서 밀리면 모든 사업 추진의 동력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듯, 도와 해군은 집요하게 4월 26일의 마을 총회 결정과 5월 14일의 여론조사 발표만을 타당한 것으로 삼으려 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지난 2002년부터 불거졌던 문제를 단 20여일 만에 마무리 지으려 온갖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토론과 협상의 문을 그들이 먼저 닫아버렸다. 아주 굳건하게.


 2007년 5월 17일 공식 출범한 강정마을해군기지 유치반대대책위원회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들을 무턱대고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대책위는 국가의 주요사업을 여론조사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① 해군기지 유치 찬반에 대한 제주도 전체 주민투표와 ②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는 마을 전체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제주 도민들 역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초반 여론은 찬성 쪽이 많았지만, 절차적으로는 주민 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훨씬 더 우세했다. 그러나 김태환 전 도지사는 “도의 방침은 이미 5월 14일에 결정됐다. 추호의 변화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해군측 또한 반대대책위의 정당한 이의제기를 “일부 반대 주민들의 무책임한 방해”로 매도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권력자들이 일방적으로 빼앗아간 자신들의 미래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마을 총회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 결의를 주도한 마을 이장을 해임시키고 2007년 8월 10일 신임 마을 회장으로 강동균 회장을 추대했다. 그리고 2007년 8월 20일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마을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주민 725명이 참석한 가운데 94%인 680명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면서 강정주민들의 삶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해군과 정부는 법과 절차를 무시하거나 자기들 입맛대로 바꿔가면서 기어이 공사를 강행했다. 제주도지사가 무단으로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해버리고, 공사 중 별견된 역사 유물들이 수두룩한데도 문화재청의 묵인 아래 매장문화재보호법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2009년 4월 제주도가 국방부 및 국토해양부와 제목이 다른 업무 협약서를 이중으로 체결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해군기지 반대의견을 무마시킬 요량으로 해군측이 제시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설계 역시 검증 T/F의 활동 보고서를 통해 치명적인 오류를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2011년 4월 29일 국방부가 대양 해군정책을 스스로 폐기하고, 북한의 국지도발 등 현존 위협에 대응하는 쪽으로 대폭 국방정책을 선회한 결과, 해군기지를 건설할 국가 안보상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은 공권력의 든든한 비호를 받으며 계속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투쟁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10월 말까지 4년을 훌쩍 넘기는 투쟁은 강정마을을 통째로 갈등과 반목의 회오리 속으로 집어넣었다. 마을은 갈라지고 이웃은 원수가 되었으며, 수많은 마을사람들과 평화 활동가들이 정신적·육체적 손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수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고 심지어 구속되기까지 했다. 올해 초에 이르러서야 환경과 평화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에 공감하는 움직임이 제주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 온 나라에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상처와 아픔이 너무나 크다.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2002년), 세계 자연유산 등재(2007년), 세계 지질공원 인증(2010)이라는, 전 세계에는 유일하다는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의 영광은 공권력의 엄청난 폭력 앞에서 아무런 방패도 되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제주 4·3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승화시켜 전 세계적 평화와 인권의 반석으로 삼기 위해 2005년 1월 27일 지정한 ‘ 세계 평화의 섬’ 또한 유행 지난 브랜드 네임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고통은 때로 가장 큰 배움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로 시작된 싸움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 선택의 문제로 넓어졌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적대국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려고 애쓸 것인가, 아니면 기본적은 방어 능력위에 성숙한 문화와 품위 있는 외교력을 키워나갈 것인가, 이웃과 함께 자율적이고 소박한 환대와 우애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것인가, 아니면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의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개발의 자원으로서 자연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원과 함께 누리는 삶의 아름다움이 더 소중한가.


 교회는 믿는 이들의 양심으로 이러한 본질적인 물음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제주교구장이자 한국주교회의 의장이신 강우일(베드로) 주교님은 해군기지 문제로 인한 갈등이 초반부터 단지 국책사업에 대한 반대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안간 삶 전체의 복음화를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선포해 왔다. 제주지역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지속적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2010년 7월호 <경향잡지>에 실린 ‘가톨릭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성경과 가톨릭교회의 전통, 특히 역대 교황님들의 가르침에 충실히 기대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새롭게 환기시켰다.

 이후 ‘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인터넷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01.22.),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경향잡지>2011년 7월호), ‘제주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등 이른바 ‘그리스도인의 성찰 시리즈 3편’을 통해 교회의 관심이 현실적 이권이 걸린 문제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머문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해군기지 문제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찬반을 떠나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문제가 더 이상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평화롭게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 변방의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본질을 분명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강압은 우리를 분열과 다툼, 시기와 질투, 경쟁과 승리 같은 세속의 법칙 아래 묶어두려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것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재촉한다. (2코린 5,14)그리고 강정의 고통이 우리의 선택을 재촉한다.


-‘사목정보에’ 게재된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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