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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예수는 제관 아닌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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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희 [iris2005] 쪽지 캡슐

2012-04-12 ㅣ No.592


강우일 주교 “예수는 제관 아닌 예언자.. 제사보다 공평과 자비를 찾아야”

제주교구 사제의 날 성유축성미사에서 ‘사제는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물어
 
2012년 04월 10일 (화) 16:59:24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강우일 주교는 지난 4월 5일 사제의 날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면서, 사제의 신원에 대해 물으며, “예수는 제관이 아닌 예언자였다”면서, 그럴듯한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보다 “제주 강정 같은 곳에서 드리는 길바닥 미사에 먼저 찾아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사 중에 강우일 주교는 강론을 하기 전에 사순절 동안 수고한 교구 사제들의 노고를 감사드린 뒤, 사제의 날을 맞이해 “사제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묻기 시작했다.


강 주교는 예수가 제자를 부를 때 “한 번도 '사제'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면서, 그들은 그저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형제’라 불렀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예수를 ‘사제’라고 부른 이도 없었다고 전했다. 다만, 예수가 나자렛 고향 회당에서 가르쳤을 때에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예수가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한 말을 상시시켰다.


실제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었을 때에도 제자들은 에수가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로 불리웠으며, 언젠가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고, 과부의 외아들을 살렸을 때 사람들이 그를 두고 “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말했고,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전했다.


강우일 주교는 결국 예수가 ‘예언자의 반열’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성전에서 일하는 제관’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성전정화 사건을 통해 성전에서 이뤄지는 경신례와 제사에 예수님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으며, 그분이 바라는 것은 오직 ’자비'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예수에게 ‘사제’라는 칭호가 적용한 유일한 문헌인 히브리서의 경우에도 “끊임없이 동물을 잡아바치는 제사를 지낸 옛 계약의 사제들과 달리, 예수님은 오직 십자가에서 단 한번 당신 몸을 제물로 바친 대사제이시고, 레위지파가 아닌 하느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멜키세덱과 같은 등급의 대사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강우일 주교는 “왜 주교님은 강정 길바닥에서 자꾸 미사를 드리십니까. 고귀한 미사를 아무데서나 품위 없이 지내게 하십니까?”라는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소개하며, 미사를 시위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제관이기보다 예언자였던 예수는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길거리미사를 외면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진 성당에서 장엄하게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이 즐겨 받으시고 공소도, 신자도 별로 없는 강정에서 주민들,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하고 평화와 생명과 정의를 위해서 외롭게 싸우면서 힘들게 버티는 이들과 길바닥에서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이 마다 하실까? 오늘 예수님이 오시면, 어느 쪽 미사를 더 즐겨 받으실까? 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희망해온 예수님은 분명 길바닥에 모인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실 것이라는 소리가 제 영혼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야말로 십자가에서 봉헌되신 예수님의 단 한번 제사와 가장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강 주교는 이사야 예언서 1장의 말씀을 빌어 “제사보다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고, 고아의 권리를 찾아주고, 과부를 두둔해주는 자비 행위”가 하느님께 더욱 가치가 있는 봉헌임을 강조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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