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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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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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희 [kohthea] 쪽지 캡슐

2012-04-05 ㅣ No.532

구럼비, 우리의 심장    - 시인 진은영 -

 

 

 저는 심장병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이 수술하자고 하셨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지니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자구요. 오래 믿고 다닌 병원이고 전문가의 의견이니까 수술을 지금 꼭 받아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의를 하고 다음 번 진료에 수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한 친구가 어머니가 심장수술 후에 더 힘들어 하신다고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그 병원 의사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할 필요는 없고 조심해서 살면 된다, 그리고 꼭 수술이 필요한 때가 오더라도 그때는 훨씬 좋은 치료방법이 발견될 수 있으니까 일단 아껴 써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그게 십년 전쯤의 일이고 아직 수술 안 받고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술을 받을지 말지 제주에 군사기지를 건설해야 할지 말지 결정을 하긴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들마다 숙고해야 하는 정도는 다릅니다. 코감기에 걸렸는데 전국 병원을 돌아다니며 세컨트 오피니언, 써드 오피니언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중병으로 수술을 받거나 치료방법을 결정할 때, 생명과 삶의 소중한 질이 달린 문제를 결정할 때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또 당사자의 조건과 고민들을 종합하고 고심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구럼비를 폭파하고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지을지 결정하는 일은 많은 숙고가 필요한 일입니다. 다른 전문적 의견을 들어보니 쉽게 훼손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자연환경일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삶에 피해를 주고 평화를 지키기는커녕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더 큰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일단 이 계획을 중지하고 더 좋은 선택이 있는지 숙고해 보려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에 정부와 해군은 결정된 사안을 번복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합니다. 그 결정은 한 쪽의 의견만 듣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심각한 우려를 담은 또 다른 전문적 견해들이 무수히 들려오는데 그대로 일을 강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결정되었다고 해서, 강정 사람들과 다른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일은 저에게는 마치 지난번 진료때 수술 받기로 하고 이제 와서 왜 딴 소리냐고 환자를 잡아다가 수술실로 끌고 들어가는 미친 의사의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런 의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와 군대는 우리의 사회적 신체를 바로 그런 얼빠지고 정신 나간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 구럼비가 동북아 평화의 심장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워서 보존이 필요한 장소라는 점을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제 몸을 사랑하고 제 심장을 가장 건강한 상태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심장을 아무렇게나 내어주는 사람은 없듯이 우리는 구럼비를 아무렇게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것인지 2차, 3차, 4차, 5차 이어지는 무수한 전문적 검토와 치밀한 준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신중함과 전문가적 겸손함 없이 처음에 그러기로 했으니까, 민주주의 운운하며 자르고 부수는 정권은 사회적 신체를 관리하고 보살필 능력의 ABC가 안된 정권입니다. 우리의 심장, 구럼비야, 너를 그런 돌팔이들에게 절대 맡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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