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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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하느님의 모습을 아예 상상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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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3-11-08 ㅣ No.7366

1. 신약의 하느님이시자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럼 여기에서 구약의 하느님이 이 변모 현장에 함께한 모세와 엘리야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성경을 통해 묵상해 보자.

2.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모습이다.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1-6)‘

3. 그 한참 후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1-14)’

4. 어떤가? 삼위일체이신 그 하느님께서 구약의 그 위대한 두 인물에게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그들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모세는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고 엘리야는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감히 볼 수가 있었을까? 그 위대한 인물마저도 그러할 진데 감히 우리가 하느님 모습을 이렇게 쉽게 논한다는 게 철 없는 짓이렸다.

5. 하느님은 분명히 저 창세기에서 마지막으로 한창 천지 창조시 우리를 만드실 때 당신 모습대로 만드셨다고 호언 장담하셨다. 그 내용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6-28)’

6. 그 하느님께서 당신께서 만드신 우리가 죄를 하도 많이 범하기에 그 죄를 사하시고자 우리에게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 예수님이라는 명함을 가지시고 동정 마리아를 통해 나타나셨다. 아무도 그분을 뿔 달린 이로 외면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무시무시한 외계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다. 그게 예수님의 모습이시고 우리가 지금 멋대로 짜 맞추려는 하느님의 모습이시다. 삼위일체이시니까. 이게 전지전능하신 분의 모습이시다.

7. 그렇지만 구약의 하느님은 어떤 모습인지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아니 보질 않았다. 모세도 엘리야도 성경의 그 어떤 누구도 보았다는 그 구체적인 고백이 없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나 만나야할 저 세상 저 하느님이신데 우리는 그분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다. 다만 천지창조시의 그분 말씀으로, 당신 외아들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 만으로만 당신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8.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분 모습을 그려 본다. 흰머리를 가졌다느니 하면서. 그리고 그분 모습이 어떻다느니 하는 그 이해도 되질 않는 언어를 남발하면서 표현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이다. 굳이 하느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때가 오면 알게 될 것을. 어쩜 이건 하느님과 함께할 속셈이 다분하다. 연약한 인간이 그분과 대적하겠는 것일 게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막무가내 부를 수도 없었단다. 그런 분을 우리가 모습이라도 그려본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9. 분명히 사도 바오로는 때가오면 하느님 모습을 자연 알 수 있다고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1-13)’

10. 그렇다. 때가오면 우리는 자동 그분을 만나게 될 거고, 지상에서의 모든 걸 주저 없이 고백해야만 될 게다. 그러니 성급히 그분 모습을 속단하지를 말자. 그저 그분을 확실히 만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모든 걸 사랑하자. 그것만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려야 할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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