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 15만톤급 크루즈 입출항 선박시뮬레이션 결과 검증이 끝날 때까지 공사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해군이 지난 28일에 이어 31일에도 서귀포시 강정 구럼비 바위에 대한 발파를 강행하자 이날 해군기지 백지화 전국시민행동에 참여한 주민과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제주해군기지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는 강정마을회, 제주군사기지 저지 범도민대책위원회와 함께 31일 오후 3시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앞에서 '제10차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전국시민행동' 행사를 가졌다.

'비극의 섬 제주를 생명평화의 섬으로'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200여명의 시민과 제주도민들이 함께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권미혁 한국여성연합 공동대표와 김선수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배종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대표,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이광석 전국농민화 총연명 의장, 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최헌국 목사와 유인식 목사, 정연길 목사, 문정현 신부 등 각 단체 대표자 등도 참여했다.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30분가량 사업단 앞에서 문화제를 가진 행사 참가자들은 이날 해군의 구럼비 발파 강행에 항의하기 위해 오후 4시 30분 강정포구로 향하는 평화대행진을 진행했다.

약 30분 가량 걸어 강정포구에 도착한 행사 참가자들은 포구 동쪽길을 이용해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앞서 강정포구에 배치됐던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경찰은 이날 대형버스 2대와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강정포구에서 동방파제로 이동하는 길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다.

행사 참가자들은 "왜 주민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길을 막아서느냐"고 항의하며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강정포구 동방파제 지역은 집회허가가 이뤄진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의 통제로 인해 길이 막히자 행사 참가자들은 "왜 주민들이 합법적으로 행진하는 것을 방해하느냐. 해군의 불법공사나 막아라"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 행사 참가자들은 방파제 밑으로 내려가 벽에 매달리듯 이동해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자칫 잘못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찰이 '경찰이 통제하는 폴리스라인을 파손할 시에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방송을 내보내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행사참가자들과 경찰의 대치상황이 길어지고 분위기가 점점 악화되자 이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과 직원들이 중재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강정포구 봉쇄 조치를 지시한 책임자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 행사 참가자들의 보호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측에서는 앞서 설명했던 집회허가 부분을 강조하면서 길을 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약 1시간여 동안 경찰과 대치를 이어가던 행사 참가자들은 나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이동권 제한 조치에 대한 진정을 제기키로 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행사 참가자들은 경찰이 통제하지 않은 강정포구 서방파제로 이동해 멀리서나마 구럼비 바위를 바라보며 직접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 강동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구럼비 깨지지 않아..반드시 지켜낼 것"

평화대행진에 앞서 진행된 문화제에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해군측의 구럼비 발파 강행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면서 이날 행사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구럼비 지키기에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지난 5년간 싸워오면서 우리가 진다고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말문을 연 강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으나 구럼비 바위는 그렇게 폭약 몇톤으로 부서질 정도의 바위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바위"라고 말했다.

이어 "무력으로 모든 것을 진압하려는 자들은 더 큰 무력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무력이 아닌 생명평화의 길을 지켜야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구럼비는 깨지지 않는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으면 구럼비는 천년만년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과 함께 시민단체와 종교계 관계자들이 해군기지의 부당성을 바로잡고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강정을 찾아오면서 희망이 보이고 있다"며 "우리가 외치는 평화의 염원이 전세계로 퍼질 수 있도록 힘을 내자"고 말했다.

# 이강실 "안보장사꾼이 제주해군기지 추진...제주도민이 나서서 막아야"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제주해군기지는 '안보 장사꾼'들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제주도민들이 나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제주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역사적 아픔을 남겼던 제주4.3 64주년 추모일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안보 장사꾼들로 인해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북이 분단된 후 통일이 되지 않고 있음에 따라 전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지금 강정에서 추진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를 막아낸다면 대한민국에 드리워 진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지금 제주도민들이 해군기지의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4.3에 대한 아픈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 아픔을 떨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전국적으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마음은 함께하지만 제주에 오기 힘들어 안타까워 하는 이들도 있다"면서 "이들과 함께 오는 총선 이후 강정에서 대규모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펼쳐 해군기지를 막아내자"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국시민행동이 진행되는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옆 강정체육공원에서는 오후 3시부터 북파공작특수임무유공자 UDU동지회 등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측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집중적 규탄행사를 가졌다.

UDU동지회 회원 35명은 규탄행사를 통해 "국토방위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책사업으로 건설중이 해군기지를 합리적이지 못하고 애국적인 마인드도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세력들이 사회갈등과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UDU동지회의 거친 발언에 격분한 일부 마을주민들이 "왜 남의 마을에 와서 소리를 지르느냐"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거친 말이 오가며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으나 전국시민행동 참가자와 UDU회원들이 각자의 행사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김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