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독자 칼럼] 납골당 설치 반대 시위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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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cosma] 쪽지 캡슐

2007-09-21 ㅣ No.4095

[독자 칼럼] 납골당 설치 반대 시위를 보고… 

  • 아이들 교육 때문에 들어서선 안 된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성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교육적 효과 있다 
  •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입력 : 2007.09.20 22:47
    •  
    •  한병선 교육평론가
    • 성당 지하에 납골시설을 만들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다. 납골당은 망자(亡者)가 이승에서 머물 수 있는 마지막 휴식공간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이런 공간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온통 산 자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태릉성당 얘기다. 지역 주민들이 납골시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절대불가를 외치고 있다. 심지어 정진석 추기경에게 계란세례를 퍼부었다. 사단(事端)을 떠나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추기경은 한 교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다. 존경의 대상이자 종교적 권위를 의미한다. 외국에 나가면 국빈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더욱이 추기경은 이 성당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온 손님이었다. 이는 분명 상식의 경계를 넘어선 행위이다.

      납골당 반대 이유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란다.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죽음을 보는 것이 그렇게 비교육적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죽음을 가까이 접할수록 그것은 더 교육적이다.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 죽음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살게 된다. 인류 역사상 그런 예는 수없이 많다. 너무 많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 나와 관련성이 없다고 느낄 때 세상은 건조해진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이 죽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그 자체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교육적 효과를 갖는다.

      현실적으로 묘지문제는 심각하다. 매년 20만 기의 묘지가 필요하다. 이는 여의도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넓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나 사찰 내의 납골당 설치는 합리적 대안의 하나다. 또 결과적으로는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죽음을 잊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태도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들이야말로 비교육적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집값 문제다. 집값이 상승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하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것도 아니라면 망자들이 유죄다. 망자들을 탓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왜 목숨을 내려놓아 납골당을 만들게 하는지를 탓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납골당을 만들게 하는 장본인이 될 역설을 안고 있다.

      서울 양정중·고등학교는 장례식장과 이웃하고 있다. 그것도 대형 장례식장이다. 또 그 바로 앞은 경인초등학교다. 학생들은 매일 등굣길에 장례행렬을 만난다. 이들은 학교 공부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또 다른 마음공부를 한다. 때론 죽음을 본다는 것이 훗날 이들에게 삶을 비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조선일보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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