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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 을 전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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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3-05-07 ㅣ No.6810

신성 모독죄와 성령 모독죄가 가끔 회자한다. 그 말이 그 말일 것 같은데 가끔은 그 뜻을 달리하는 것 같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그 뜻의 차이를 관련 내용을 참조로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루카 12,2-12). 신앙인의 본분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우리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면서 그분 말씀을 전하는 것일 것이다. 이 복음 선포가 우리 신앙인의 사명이다. 따라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선교 복음화에 앞장을 서자.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니까.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신성 모독과 성령을 모독하는 성령 모독에 관한 주된 의미를 관련 복음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음미해 보자. 결국은 신성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 모독’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임을 성경은 확실히 강조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점을 명심해서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복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도록 하자. 참고적으로 아래 내용은 ‘주석 성경’을 참조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감사합니다.

번호

장절

내용

1

마태

12,

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1].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2].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3].

2

마르

3,

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4]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5]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

루카

12,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6].

참조

1. 이 말을 직역하면 ‘ 어떠한 죄든, 하느님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이든 사람들에게 다 용서될 것이다.’이다. 

2. 이 어려운 말씀을 성경의 문맥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신다(22절). 이 기적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의 힘으로 일으키신다(28절). 이러한 사실은 바리사이들에게도 명백하였을 것이다(27절).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이 하신 이 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악의로 그것을 사탄의 일로 돌린다. 이로써 그들은 진리를,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악의에 찬 거부는 용서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용서를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3. 이 절의 강조점은 후반부에 있다. 이 절은 곧 앞 절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아직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분에 관한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일으키는 기적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은 오해받을 수가 없다(앞의 #2 참조). 그래서 그분에 관한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 전반부를 예수님의 부활 이전, 후반부를 성령께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부활 이후와 관련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부활 이후 곧 성령의 시대가 결정적인 때로서 회개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아무튼 31-32절에 되풀이되는 ‘용서받다’라는 동사의 수동태는 용서의 주체이신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표현 방식이다. 용서의 주님은 하느님뿐이시라는 것이다. 

4. 좁은 의미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은 직접적으로는 하느님이나 그분의 이름(탈출 22,27; 레위 24,11-16), 또는 그분의 권능이나 특권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2,7과 병행구; 13,64와 병행구; 요한 10,33-36). 신성 모독은 또한 하느님에게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나(사도 6,11), 거룩한 제도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에제 35,12; 1마카 7,38). 그래서 복음서들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분이신 예수님에 대한 독설과 관련해서 ‘(하느님을) 모독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다(15,29와 병행구; 루카 22,64-65; 23,39).  

5.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직접적인 문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시는 일들을 사탄의 것으로 돌려, 예수님을 통하여 활동하시는 권능의 주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거부는 용서에 직접적으로 배치된다(#1, #2, #3 참조). 

6. 이 말씀에 관해서는 #3 참조할 것. 루카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용서 가능한 모욕과 ‘성령’에 대한 용서 불가능한 모독을 구분하여,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명을 수행하는 시기와(이때는 예수님을 죽인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23,34; 사도 3,17; 13,27),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교의 시기를 대조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사도 2,28; 3,19; 13,46; 18,6; 2826-28 참조). 마태 12,32와 마르 3,22-29에서는 이 말씀이 다른 맥락에 배치되기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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